기안의 과거(1)

by 거북이

어둠이 짙게 드리운 한밤중,

세종 외곽의 낡은 컨테이너 창고 단지. 아파트를 짓다 중단한 곳이다.

엔진소리가 꺼지고, 검은 코트를 입은 기안이 차에서 내린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초조함과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다. 약속 장소에는 이미 후드티를 입은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그의 얼굴은 모자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늦었군."


낮고 음산하다.


"상황이... 복잡했어요..."


"그들이 눈치채기 시작했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거 같아."


후드티를 입은 남자는 다급하게 말한다. 그의 손이 재킷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재킷에서 나올 땐 평범해 보이는 USB 하나가 들려있다.


"자. 받아. 만약의 사태는 준비해야잖아."


기안은 망설임 없이 USB를 받아 코트 안주머니 깊숙이 넣는다. 그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는다.

'만약의 사태'라는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차갑고 단단한 USB.


기안의 손으로 직접 문을 열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바로 그날...


세계적인 AI인공지능 기술 전쟁 속에서 한국은 '프로젝트 제네시스'를 통해 단번에 선두 주자로 뛰어오를 야심에 불타올랐다. '신생아의 뇌가 가진 폭발적인 잠재력.' 그것은 판도라 상자였다. 기안 역시 국가 최고의 두뇌 중 한 명으로 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젊고 야망이 넘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프로젝트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부부 과학자. 바로 진원의 부모님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남편인 엄 박사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개척자였고, 아내인 홍 박사는 그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해 내는 섬세한 설계자였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듬직하고 원칙을 중시하는 연구원, 현재 팀장이 있었다. 기안은 그들 모두를 존경했다. 특히, 언제나 자신보다 몇 걸음은 앞서 나가는 듯한 엄 박사를 동경하며, 언젠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래를 꿈꾸며 다짐했다.


연구는 초반부터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신생아의 순수한 뇌는 상상을 초월했다. 기존과 다른 학습 능력을 보여줬다. 모두가 흥분에 휩싸였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프로젝트가 중반에 접어들 무렵, 연구팀은 치명적인 리스크를 발견했다. 신생아의 뇌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만큼 외부의 인위적인 자극에 극도로 취약했다. 데이터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에 영구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인 것이다.


회의실. 차가운 공기뿐. 정부 관계자와 대다수의 연구원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강행을 주장했다.

그때, 엄 박사는 일어났다.


"저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습니다."


단호하고도 날카로운 목소리 었다. 그리고 그를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바라봤다.

그리고 홍 박사와 팀장 그리고 기안을 포함한 몇몇 연구원들이 힘을 더했다. 그날 이후, 프로젝트 팀은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그리고 엄 박사 부부를 중심으로 비밀스러운 반역이 시작됐다.


낮에는 정부의 계획에 따르는 척, 밤에는 텅 빈 연구실에 남아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최악의 경우 아이들의 기억이 손상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보존했다가 다시 되돌려줄 수 있는 아카이브, '기억의 아카이브'라 불린 그 거대한 가상 세계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기안 역시 이 위대한 반역에 기꺼이 동참했다. 엄 박사의 신념과 인간애는 기안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더욱 헌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안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주인도 모르는 검은 삭이 자라고 있었다.

아카이브의 설계가 진행될수록, 기안은 엄 박사의 천재성에 묘한 감정이 생겼다. 기안은 몇 주를 고민해도 풀리지 못한 문제를 엄 박사는 동료들과 짧은 대화 속에서 툭 던진 아이디어 하나로 해결해 버렸다. 팀원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엄 박사에게 향했다. 기안은 어느새 위대한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가 아닌 그저 옆에서 보조 역할 뿐이라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존경심에서 서서히 질투심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어째서 나는 안되는 거야... 노력은 내가 더 하는데.. 왜..'


기안의 마음은 병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 엄 박사 부부에게 아이가 태어났다. 바로 진원이었다. 연구실에 아기 사진을 붙여 놓고 행복하게 웃는 부부를 보며 기안의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자신들의 아이는 소중하고 실험 대상인 다른 아이들은 희생되어도 괜찮은 건가?'


기안은 혼자서 오해하기 시작했고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정적인 날. '기억의 아카이브'는 완성을 코앞에 둔 어느 날 밤이었다.

홀로 연구실에 남아 데이터를 정리하던 기안은 충동적으로 그리고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수신자는


'국가정보원 사이버 안보팀.'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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