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2)

by 거북이

그 순간이었다.

회색 파일의 움직임이 멎었다. 요동치던 모든 그래프가 일순간 수평선이 된다. 시간까지 멈춘 것 같다.

서버 팬 소음조차 들리지 않는 평화로운 정적. 기안은 저도 모르게 숨을 참는다.


"...팀장님"


기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린다. 회색으로 멈춰 있던 파일 아이콘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회색빛이 걷히고 파란색으로 차오르기 시작한다. 동시에, 미친 듯이 요동치던 진원의 생체 신호 그래프가 거짓말처럼 안정적인 파동으로 돌아온다.


"성공이야!"


팀장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는 의자 깊숙이 몸을 묻으며 마른세수를 한다. 기안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두 손으로 힘들게 막으며 삼긴다.


"해냈어요... 팀장님! 진원 씨가.. 스스로, 도움 없이 회색 파일을 열었어요!"


"그래... 역시 그들의 아들이야."


팀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두 사람은 성공의 기쁨에 취해 서로를 마주 보며 몇 년 만인지 모를 희미한 미소를 진다. 아마 그 사건 이후 서로 웃으며 바라본 적이 없을 것이다. 어둡고 차가운 지하 연구실에 아주 잠시나마 따스한 온기가 돈다.


바로 그때다. 두 사람이 감격적인 성공에 취해 미처 확인하지 못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모니터에 시스템 로그창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설명할 수 없는 노이즈가 발생한다. 수만 줄의 코드 속에서 이질적인 데이터 조각 하나가 나타난다.

그것은 정상적인 코드의 형식이 아니다. 검붉은 색을 띤 날카로운 기생충 같기도 하고, 시스템을 오염시키는 악성 코드의 씨앗 같기도 하다. 예상치 못한 오류이다.


그 정체불명의 데이터 조각은 갓 파란색으로 변한 진원의 파일에 진원의 파일에 아주 잠깐 비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0.5초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시스템의 자동 진단 프로그램은 이 현상을 '일시적인 데이터 손실'이라는, 아주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무해한 오류로 판단하고 기록초자 남기지 않는다.


그 어떠한 경고도 울리지 않는다...


"이제 시작이야. 방심하면 안 돼. 다음 파일 열기 전까지 시스템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안정성부터 확인해야 해."


"네! 다음 파일 리스트,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번 성공으로 다음 단계 접근 권한이 열릴 겁니다."


팀장과 기안은 아무것도 눈치재지 못한 채, 다시금 희망에 가득 찬 얼굴로 다음 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등 뒤에서 방금 전 검붉은 데이터 조각이 스쳐 지나갔던 로그 라인의 코드 한 줄.

미세하게 뒤틀려 있다.

누군가의 행동으로 아무도 모르게 심어진 치명적인 균열이 생겼다. 미래의 진원의 정신과 목숨을 위협할 끔찍한 바이러스.


가장 기쁜 순간에, 가장 완벽하게, 아주 조용히 싹을 틔우고 있다.


어두운 그림자가 멀리서 지켜본다. 어두운 그림자만이 정체불명의 데이터 조각을 확인한다.

마치 이런 현상이 일어날지 아는 사람처럼 마냥.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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