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1)

by 거북이

모든 일의 시작은 평범한 사무실 공간, 엄 대리의 책상에서 이루어졌다.


기안은 며칠 전, 진원의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겉보기엔 평범한 시스템 파일이었지만, 그것은 현실과 가상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진원이 마지막으로 컴퓨터를 사용하고 퇴근한 그날 밤, 기안은 게이트를 활성화했다. 사무실의 모든 전원이 꺼진 뒤에도, 진원의 모니터만이 희미하게 빛나며 그의 의식을 거대한 데이터의 세계로 조용히 인도했다.


하지만 그곳은 단지 '입구'인 것이다.


진원의 정신이 표류하고 있는 광활한 가상 세계를 통제하고, 그의 모든 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곳은 전혀 다른 곳에 존재했다. 세종의 잊힌 상가 건물 지하, 전파조차 제대로 터지지 않는 깊숙한 곳.

과거 진원의 부모님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바로 그 비밀 연구실이다.


현재 이곳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기안과 팀장, 단 두 사람뿐.


문을 열고 들어가면 후텁지근한 공기와 함께 수십 개의 구형 서버가 내뿜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곳의 시간은 오래전, 진원의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그날에 멈춰 있다.. 벽에 붙은 화이트보드에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겼을 복잡한 수식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한쪽 책상에는 어린 진원의 사진이 담긴 낡은 액자가 놓여 있다.


기안과 팀장은 그 슬픈 유산의 한가운데서, 그들의 아들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일주일째. 잠은 낡은 간이침대에서 쪽잠으로 해결했고, 식사는 점심은 직장에서 저녁엔 간단한 편의점 음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한 순간도 방심하면 안 되기에 그들에겐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을 걸고 시작한 위험한 도박이다. 그들의 운명과 엄진원이라는 한 남자의 목숨이 스크린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메인 스크린 중앙에는 '소울 다이브 시스템'이라는 문구 아래, '엄 대리'의 상태를 나타내는 복잡한 그래프와 데이터가 쉴 새 없이 변하고 있다. 뇌파, 심박수, 시냅스 반응 속도 등 다양한 생체 신호들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수십 개의 파일 아이콘이 펄처 져 있다.


파일은 대부분이 안정적인 파란색이지만, 유독 하나만이 불안정한 회색빛으로, 마치 심장 발작을 일으키는 환자의 심전도 그래프처럼 위태롭게 깜빡이고 있다. 진원이 지금 막 접속한 그의 첫 번째 과거이자 넘어야 첫 번째 산인 것이다.


"시냅스 저항 수치가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기억 동기화율 89%에서 정체 상태입니다."


기안은 응급 환자를 살리고 있는 의사처럼 간절하면서도 긴장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한다.

이미 땀은 기안의 옷을 점령한 상태이다.


팀장은 기안의 말을 듣곤 아무 말 없이 스크린을 응시한다. 스크린 빛에 반사된 그의 굳게 다문 입술과 관자놀이로 흐르는 땀 한 줄기가 그의 내면이 얼마나 긴장 상태인지를 보여준다. 순간 3년 전 끔찍한 실패가 떠오른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순간, 단 하나의 에러 코드.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그들의 비명. 끔찍한 악몽이다.


"박사님들이 남기신 이곳에서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는 없어..."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모든 것이 끝이다. 진원도, 그의 부모님과의 약속도...


"버티질 못하는 건가... 이렇게 간다면 강제로 끌어내야 할지도 몰라요!"


기안의 목소리엔 초조함이 가득이다. 생체 신호 그래프는 수시로 변하면서 긴장감을 주고 있다.


"아니.. 아니야... 아직.."


팀장은 단호하게 말한다.


"다를 거야. 아니 그는 달라. 그 기억의 본질을 스스로 깨부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어. 강제 개입은 최후의 수단이야."


그 순간이었다.

회색 파일의 움직임이 멎었다. 요동치던 모든 그래프가 일순간 수평선이 된다. 시간까지 멈춘 것 같다.

서버 팬 소음조차 들리지 않는 평화로운 정적. 기안은 저도 모르게 숨을 참는다.


"... 팀장님."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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