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지금 많이 위태로우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 이 전화를 마지막으로 내 세상은 무너진다. 꿈을 향한 나의 시간,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 모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은 부모님을 위해 쓰던 악보 위로 떨어진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나의 서투른 꿈도, 부모님께 전하고 싶었던 나의 진심도, 그 모든 것이...
과거의 내가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 나가고, 텅 빈 방엔 현재의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관리자의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 울린다.
'자기 자신을 낮춰야만 인정할 수 있어.'
무엇을. 도대체 무엇을 인정하라는 것인가. 부모님께 바치려던 노래가 주인을 잃어버린 이 잔인한 현실 앞에서. 억울함과 분노가 다시금 치밀어 오른다. 나는 부모님의 죽음이 내 모든 것을 앗아갔다고 믿어왔다. 이 비극 때문에 나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실패자가 되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았다.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모든 이들의 동정을 받으며, 실패했다는 사실을 비겁하게 도망치며 살아왔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저 도망치는 인생이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난다.
그리고 그 눈물이 떨어진다.
악보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악보가 눈에 들어온다.
맞다.
부모님을 위한 나의 마지막 노래.
순간,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진실의 파편이 심장을 찌른다.
모든 것이 내가 만들어낸 거대한 거짓말이었음을 인정한다.
나는 알았다. 이미.
사고가 있기 훨씬 전부터, 내 재능의 한계를. 이 길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을.
부모님을 위한 노래를 완성하지 못했던 것도, 실력이 부족해서이기도 했지만 그 마음을 온전히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단지, 나의 모든 실패와 나약함을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 뒤에 숨겨 합리화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니야.."
나지막이 흘러나온 나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악보를 지긋이 바라본다. 그리고 악보를 향해 걸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처럼 무겁다.
나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다. 구겨진 악보를 조심스럽게 줍는다.
먼지가 많이 쌓여 가사가 보이지 않아 먼지를 터어내자, 내가 꾹꾹 눌러썼던 서툰 가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사)
'... 이제야 말하네요, 서툴렀던 내 고백을... 사랑합니다...'
마지막 가사를 보는 순간, 참아왔던 모든 것이 터진다. 나는 악보를 가슴에 품고 어린아이처럼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목 놓아 운다.
"내가 미안해 아빠.. 엄마... 내가 너무 늦었지...
내가 너무 늦었어.. 엄마.. 아빠... 너무 오래 기다렸지...?
왜 기다린 거야... 왜...
그냥 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건데 왜 엄마아빠를 미워했을까...
실패하는 게 두려웠어...
내가 완성할 용기가 없었어..."
힘겹게, 눈물에 잠긴 것처럼 힘들게 말하며 현실을 인정한다.
그 순간, 주변이 환한 빛으로 가득 찬다. 차갑고 어둡던 방안이 따스한 온기로 채워진다.
가슴에 품고 있던 악보에서 환하게 빛이 난다.
"뭐야..."
눈물로 가득 차 빛이 번져 보인다.
그리고 눈앞에 회색 파일이 나타난다. 그리고 파란색으로 변한다.
곧이어 파란 파일에서 맑은 소리가 난다.
"쨍그랑"
깨진 유리 조각이다.
유리 조각 하나가 파란 파일에서 튀어나오더니 저 멀리 하늘 위로 솟아오른다.
깨진 유리조각이 하늘 위로 올라가자,
주위 전체가 밝은 빛으로 가득 찬다.
너무 밝아 눈을 나도 모르게 감는다. 밝은 빛이 서서히 걷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앞엔 파일 관리자가 있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첫 번째 조각이네"
관리자의 목소리다. 관리자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있다. 마치 울고 난 직후인 목소리처럼.
그리고 하늘을 바라본다.
나도 같이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내 손엔 어느새, 빛나는 악보가 들려있다.
"어? 이게 언제 내 손에..."
"축하해. 그리고 잘했어. 인정하기 힘들었을 텐데."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악보는 더 이상 슬픔의 증거가 아닌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의 증표라는 걸.
진원은 관리자를 보며 웃는다. 그리고 부모님의 대한 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