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어야 할까?'이다. 김치찌개, 등갈비 김치찜, 김치볶음밥, 김치 부침개, 스팸 볶음밥, 오므라이스, 돈가스, 카레, 짜장, 삼겹살... 머리를 쥐어짜가며 덜 귀찮고 한방에 해결 가능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영양 가득한 음식을 해줄까'라고 고민한 적이 도대체 언제였나 싶다.
"엄마! 오늘 저녁 메뉴 뭐야?" 우리 집 성장기 어린이는 매일 저녁 메뉴가 궁금하다. 너는 왜 그렇게 저녁 메뉴가 궁금한 거니?!라고 생각하지만 입 밖으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온다.
"오늘 뭐 먹고 싶어? 우리 아들 먹고 싶은 거 엄마가 다~ 해줄게! 된장찌개? 된장찌개 먹을까?" 내가 하기 편한 요리로 아이가 쉽게 걸려들 수 있도록 된장찌개라는 메뉴를 던졌다.
" 음~ 아니! 된장찌개 말고.... 강. 된. 장!"
엇! 강된장...! 음.. 강된장.
오호라~ 강된장. 강된장이라니 나쁘지 않다. 마침 냉장고 안에 날 좀 제발 꺼내달라는 양배추가 있다. 양배추를 삶아서 쌈으로 만들어 놓고 우렁 강된장 양념을 사다가 끓이면 간단히 해결이 될 것 같았다. 뭔가 차린 듯 하지만 알고 보면 시판양념으로 순식간에 해결되는 '한방 메뉴'를 정하고 나니 걱정이 반으로 줄었다.
아들을 보고 씨익 웃었다.
"그래! 오늘 엄마가 강된장 맛있게 해 줄게~!"
강된장에 넣을 애호박이 남아있는지 냉장고를 열었다. 어랏. 외면했던 친정엄마가 만들어 주신 집된장이 보였다. 진짜배기 집된장과 그 옆에 보리고추장이 떡 하니 나와 마주했다. 냉장고에서 잠들어 있는 집된장과 보리고추장. 저녁 메뉴에 필요한 재료가 냉장고에 다 모여 있었다. 친정 엄마표 된장에 고춧가루, 마늘, 설탕 넣고 멸치육수나 쌀뜨물로 강된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만능양념장에 물 만 부으면 완성되는 요리들에 맛이 들다 보니 이것저것 재료를 꺼내는 게 귀찮았다.
한두 번 먹다 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 온갖 재료를 꺼내 늘어트릴 필요가 없다. 식사 준비 시간도 줄어든다. 먹는 시간에 임박해 사다가 후다닥 조리만 해서 먹으면 그렇게 간편할 수가 없는 것들이 상가에 나가면 수두룩하다. 잔소리 없고 불평불만 없는 남자 셋을 둔 복 많은 나는 불량주부임에 틀림이 없다. 양심에 찔리고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요즘 나의 재미는 다른 곳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정성스러운 식탁을 외면을 해버렸다.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갔다. 두부를 사고, 시판용 우렁 강된장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아이는 에어컨 빵빵한 마트에 들어가니 기분이 좋은지 식재료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엄마, 시금치도 해줘!" 아이가 반달눈을 하고는 나를 쳐다봤다.
"음... 시금치도 먹고 싶어? 근데 강된장과 시금치는 뭔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데..." 아이 앞에서 엄마의 귀찮음을 들키지 않도록 꽁꽁 숨겨두고 시금치는 다음에 먹고 양배추에 싸 먹자고 꼬드겼다. 난 이미 마음의 결정을 했다. 강된장과 양배추쌈. 아! 오늘 옆집 엄마가 준 오이고추까지 있으니 완벽한 조합이다. 아이들은 오이고추를 안 먹으니 혹시 기운이 나면 콩나물만 하나 더 무쳐주겠다고 속으로 나만 들리는 다짐을 한다.
포인트 적립을 하고 물건을 담았다. 갑자기 아이가 계산을 마친 '우렁 강된장 양념'을 집더니 뒷면에 쓰인 조리법을 읽고 내게 한마디 던졌다.
"엄마, 강된장 만들기 너무 쉬운데? 이게 뭐야? 야채 넣고 두부 넣고 끓이면 완성이라는데? 엄~청 쉬운데? 나도 할 수 있겠어"
아이 참.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아이는 간단한 레시피를 두고 한 말인데, 내 귀에는 이렇게 쉬운 요리였어? 엄마가 직접 양념을 만드는 것이 아니네?라고 들리더라.
아이에게 숨기고 싶은 나만의 비밀을 들킨 기분이었다. 대충 양념장 사다가 물만 붓고 끓여 때워야지 생각한 것이 부끄러웠나 보다. 요리의 영역은 엄마의 자존심이랄까.
"엄마만의 레시피가 있어~" 나는 에둘러 말했다.
"엄마 레시피가 아니지~ 백종원 아저씨랑 심방골 아줌마 레시피잖아. 요리할 때 유튜브 틀고 하면서. 크크크"
여기서 한번 더 무서져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이게 뭐라고 아이 앞에서 자존심이 분명 상했다.
초등아이도 할 수 있겠다는 강된장 말고 조금 업그레이드해서 내놓겠다고 나는 흥!! 콧웃음을 쳤다.
1. 애호박, 양파, 감자, 파를 작게 썬다.
2. 들기름에 먼저 파와 감자, 양파를 달달 볶는다. 잠시 후 애호박을 넣고 한번 더 볶는다.
3. 볶아진 야채에 강된장 양념을 넣고 다시 볶는다. 야채가 많아서 강된장 양념이 부족하다 싶으면 집에 있는 된장, 설탕, 고춧가루를 추가해 넣는다. (분명 추가해서 넣었다. 시판양념 + 내 양념이 섞인 강된장이다)
4. 눈대중으로 물이 부족해 보이면 물을 첨가하고, 국물이 자작하다 싶으면 물을 붓지 않고 두부를 넣는다.
5. 보글보글 끓여낸다.
맛은 기가 막혔다. 왜냐고? 시판양념이 요리의 베이스니깐!! 엄마가 모든 요리의 양념을 매번 다 하는 것은 아니다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지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요 몇 달 제육양념, 불고기 양념 다 되어 있는 것을 사다 먹었는데 오늘 아이의 말 한마디가 자극이 되어 돌아왔다. 사실 그랬다.
하아- 그런데 오늘은 또 뭘 해 먹어야 하나. 아이 앞에서 엄마의 꼼수를 들켰는데도 정신이 차려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