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민사고라는 브랜드

민사고 엄마 이야기

by 최수진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시는 거대한 카지노 판이다. 수능이라는 강을 건너본 학부모나 수험생들이 아니라면, 왜 카지노판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랜 전통의 명문고등학교의 브랜드는 편법과 특혜로 얼룩진 수시전형과 시험 기술자 양성시험인 정시전형이라는 대학입시에 비해 순수하고 신성하다 시피 하다. 민사고라는 브랜드는 그렇게 만들어진 네임밸류이다. 적어도 횡성 산골짜기에서 3년을 보낸 아이들을 주변에서 만나신다면 그렇게 우주인을 보는 기분이 드실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부모들이 보내고 싶은 고등학교 1위


아들에게 이런말을 하면, 어머니 도대체 왜그러시냐고 입틀막을 하려 할것 같다. 민사고 글을 쓰는것을 아들은 모르고 있지만, 적어도 이 학교가 자신에게 뿐 아니라 부모들에게도 특별하다는 것은 인정하는 듯 하다. 그도 그럴것이, 3년전 무언가에 홀린듯이, 이 학교가 그냥 좋았던건 아들만큼이나 나와 남편이었다는걸 고백한다.


많은 대한민국 부모들이 희망하는 고등학교 1순위, 민족사관 고등학교인 것은 거부할 수 없는 팩트다, 여전히 그렇다. 필자가 민사고 엄마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한지 수년이 지났지만, 꾸준히 민사고를 꿈꾸는 부모님들이 조언을 구하는 이메일을 읽는 것이 하루의 일과이다. 문의주신 부모님들중 대부분은 학원이름을 물어오시지만, 이런 질문에는 답변을 드리지 않고 있다. 예상하시는 그 두개의 학원이 맞다고 글에도 여러번 썼고, 사실 학원을 어디로 다니든, 민사고에 합격하는 아이들은 '민사고 스러운 아이들' 이기 때문에 결국 학원이 키우는건 아니었다. 다듬어 지지 않은 원석과 같은 아이들이 유리하다. 문의 주신 분들중 몇명이나 실제로 민사고 지원을 하셨을지, 작년에 문의주셨던 구독자분의 자녀분은 지금 민사고를 다니고 계실지 알길이 없지만, 내 글을 읽고, 지레 포기를 하셨을 수도, 혹은 독하게 이 불구덩이속을 뛰어 드셨을 부모님이 계실수도 있을지 모른다. 전자라면 죄송하고, 후자의 경우라면, 참 잘하셨다 칭찬해드리고 싶다. 내가 칭찬을 해드리지 않아도 그분들은 이제부터 어떻게 민사고를 다녀야 할지 깊은 생각을 하고 계실거라 믿는다.


마약이 들끓고 소년 범죄와 학교 폭력이 난무하는 바깥세상(?)과는 왠지 동떨어져 있는 횡성 첩첩 산중. 개량한복을 입고, 가야금과 대금을 불고, 국궁장에서 활 사위를 당기는 아이들을 상상해보면 지금도 입가에 웃음만 지어진다. 환상이라고 실제와는 다르다고 하겠지만, 알고 있다. 전부의 모습은 아니지만, 적어도 다른 학교에는 없는 그런 모습을 지닌 학교다. 하루종일 교정을 돌아다니며 벌레사진을 찍고, 학교 뒷산 중턱으로 조금만 올라가도 고라니, 사슴, 삵, 담비, 하늘 다람쥐 등 2,700여종의 동식물들이 살아서 자연과학 프로젝트를 하는 신입생들의 과제영상들이 내 유투브 알고리즘에 잡히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자에 앉아서 바람을 쐬고 시험을 끝내고는 한껏 기지개를 펴며 교정 풀밭에 드러누운 아이들도 자주 보인다. 참 예쁜 아이들이다.



이게 고등학교인가 대학교인가?


수강신청서가 1학년 1학기에 날아왔는데, 200개가 넘게 개설된 수업들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이것이 고등학교인가 대학교인가 싶었다. 1학년 1학기는 공통과목으로만 구성되기 때문에 2과목정도 전공관련 선택이 가능하다. 문이과가 통합된 시기라 과목선택을 진작부터 대학전공의 방향성을 두고 선택해야하기 때문에 저학년때 선수과목을 잘 챙겨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아예 전공을 정하지 않고 다양한 탐구과목들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많다. 부모님들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들여다 보며 무엇을 배울까를 의논하는 일도 즐거웠다. 과목 담당 선생님과 과목소개 자료도 영어로 되어있어서 역시 민사고 답다싶어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우리도 배울만큼 배웟는데 결국 네가 알아서 잘 선택해봐라. 로 하고, 이제부터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엄마의 선은 넘었구나 싶었다.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실은 충무관, 다산관, 영어교육관, 민족교육관 그리고 예체능을 위한 수업들은 다양한 야외교실과 국궁장, 골프장, 축구장과 체육관에서 벌어진다.


K-t5Gq9WpfGmUniMECawRk5YKJEoZtb5fSHGlsd3KA3mz2CDrs3j5Nx2SM8h7fF6BsRXGR04_l6ZYf_AHaR7zw.webp

명문고 브랜드가 만드는 아이들


여러번 썼지만, 이 학교는 일반 고등학교와 입시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 N수생의 해당 학년도 정시결과와 합산된 입결이기 때문에 서연고 진학이 50%를 웃도는 화려한 결과물에 현혹되어 민사고에 오지 말길 바란다.


'~학교 출신' 이라는 네임택을 그전에는 신봉하지 않았다. 과거 내 부모님세대에 서울고, 경기상고 ,휘문고 등의 명문고 이름들이 존재할 당시 대학진학은 장식품 같은 거였다고 들었다. 경제적 여유가 되는 학생들은 대학진학을 선택적으로 했고, 모두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명문고를 가기 위해 중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당시에는 명문 고등학교 진학이 지금의 대학진학보다 힘들었다고.


밀레니엄 세대인 부모를 둔 아이들은 하지만 명문고는 생소하다.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에 바쁘다. 그 학교의 건학이념, 자부심, 가슴에 달고 다니는 뱃지를 뿌듯하게 내보이고, 가방에 적힌 이름과 한껏 교복을 뽐내고 싶은 마음이 뭣이 그리 중요할까 ?


하지만, 명문고를 다닌다는 순수한 아이들의 행복감과 자부심, 부모들과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인 민사고 입학식때 우리 모두는 가슴벅찼고, 그랬다. 우리 모두가 가슴뿌듯한 자랑스러움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교장선생님이 입학식 연설을 하시면서 우리들을 향해, 지금 이순간의 행복지수가 최고조인 순간일 것이다. 마음껏 행복감을 만끽하셔도 좋고 서로에게 자축하시라고 하셨다.


'가치의 부재'의 시대를 산다고들 한다. 물질적인 가치로 매겨지는 사회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민사고 아이들은 지금 느끼는 행복감을 기억하며, 나 자신에게 '넌 그럴만한 사람'이라고 칭찬해줄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곳에서 큰 성공을 기록하라는 주문을 누구도 하지 않는다. 그런 압박감으로는 성공적인 3년을 버티기 힘들다. 민사고라는 브랜드가 주는 자부심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사회 곳곳에서 민사인으로서 빛날 수 있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묵묵히 지원했던 훌륭한 부모님들은 그 가치가 무엇인지 잘 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민사고의 평범해진 천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