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유럽

by 남킹

역사, 진보의 서사인가 순환의 회랑인가: 아시아와 유럽, 두 거인의 대화를 통해 본 문명의 대서사시

서론: 진보라는 거대한 환상에 대한 물음

언젠가 나는 당신에게 역사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얼마나 유유히, 그러나 확실히 진보해 왔는지에 대한 장대한 서사였습니다. 최초의 단순한 생명체가 복잡하고 정교한 동물로 변모하고, 그 정점에서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이 지성의 힘으로 다른 모든 존재를 압도하며 승리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더 나아가, 저는 개인의 생존 투쟁을 넘어 '협력'과 '협업'이라는 고귀한 개념이 어떻게 싹트고 발전해 왔으며, 우리의 궁극적인 이상은 다수의 행복을 위해 힘을 모으는 공동체 정신에 있어야 함을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주제는 단연코 인간이 야만의 상태에서 문명의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라고, 저는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인류가 걸어온 광활한 역사의 풍경을 조망하다 보면, 이러한 진보에 대한 믿음은 송두리째 흔들리곤 합니다.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문명화되었는가? 우리는 정말로 과거보다 나은 존재가 되었는가? 이러한 회의감은 역사의 심연 곳곳에서 짙은 안개처럼 피어오릅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는 여전히 협동의 정신이 짓밟히고 있으며, 오직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억압하는 국가와 민족의 광기가 번뜩이고 있습니다. 한 개인의 삶 속에서도 타인을 착취하고 기만하는 이기심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수백만 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을 거쳐 진화하고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이토록 미숙하고 불완전하다면, 인류가 진정으로 지각 있고 분별 있는 존재로서 행동하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또 얼마나 아득한 세월이 흘러야 할까요?

때때로 우리는 역사책의 갈피 속에서 우리 시대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더 성숙하고, 문화적으로 더 깊이 있으며, 문명의 정점에서 빛나던 시대와 마주하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논했던 정의와 민주주의의 깊이, 송나라 시대의 예술가들이 도달했던 미학적 경지, 또는 이슬람 황금시대의 과학자들이 보여준 지적 개방성을 접할 때, 우리는 '역사란 과연 진보하는 것인가, 아니면 퇴보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물론 우리 민족에게도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월등히 뛰어났던 찬란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인류 문명의 위대한 발상지들, 즉 인도, 이집트, 중국, 그리스와 같은 고대 국가들 역시 저마다 눈부신 황금기를 구가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이 위대한 문명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쇠퇴하고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용기를 꺾지는 못합니다. 세계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한 국가나 문명이 일시적으로 흥하고 망하는 것은 어쩌면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변화'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과거에 변화가 미미했다면, 역사책의 두께 또한 얇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종종 왕조의 연대기나 전쟁의 승패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만, 진정한 역사의 가르침은 그러한 사건들의 이면에서 인류의 정신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했는지를 통찰하는 데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저는 삼엄한 감옥의 벽 안에서야 비로소 역사의 흐름을 더 깊이, 그리고 더 넓게 읽어낼 기회를 얻었고, 부족했던 지식을 채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1장: 문명의 흥망성쇠 - 역사는 진화하는가, 순환하는가?

역사를 진보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마치 거대한 산의 한쪽 능선만을 보고 산 전체의 모습을 단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다스리며, 언어를 발명하고, 국가를 건설한 과정은 분명 경이로운 발전의 서사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수많은 문명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 로마 제국을 보십시오. 그들은 견고한 법률 체계, 실용적인 건축 기술, 그리고 광대한 도로망을 통해 지중해 세계를 하나의 문명권으로 묶었습니다. 그러나 내부의 부패,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 그리고 사회적 분열 속에서 천년 제국은 결국 무너져 내렸고, 유럽은 수백 년간의 '암흑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제국이 멸망한 사건을 넘어,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과 시스템이 얼마나 허무하게 붕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교훈이었습니다.

동쪽으로 눈을 돌려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를 생각해 봅시다. 아소카 대왕의 통치 아래, 인도는 최초의 통일 제국을 이루었고, 불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평화와 관용의 정치를 펼쳤습니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이상적인 군주의 대명사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제국은 급격히 분열되었고, 인도는 다시 수많은 왕국들이 각축하는 시대로 돌아갔습니다. 중국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시황의 통일 이후, 한, 당, 송, 명, 청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왕조들은 저마다의 위대한 문화적, 기술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그 어떤 왕조도 '만세'를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흥망성쇠의 거대한 순환, 즉 '왕조 주기(Dynastic Cycle)'는 중국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법칙처럼 여겨졌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디며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지만, 그것을 건설했던 파라오의 신권 정치는 오래전에 막을 내렸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자유롭게 사상을 논하던 아테네의 아고라는 인류 지성의 요람이었지만, 그들의 폴리스는 마케도니아와 로마의 지배 아래 그 빛을 잃었습니다. 이처럼 역사는 진보의 직선 도로가 아니라,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 번영과 쇠퇴가 반복되는 순환의 회랑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진보'라고 믿는 것조차, 어쩌면 거대한 순환의 한 국면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상승 곡선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며, 현재의 번영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냉엄한 진리를 일깨워줍니다.

제2장: 대륙의 어머니, 아시아 - 유구한 유산과 그 영향력

유럽과 아시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세계 지도를 펼쳐 보십시오. 거대한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유럽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시아 대륙에서 뻗어 나온 하나의 작은 반도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지리적 형태는 두 대륙의 역사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장구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아시아는 문명의 어머니이자 역사의 주도자로서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인류 이동의 원천

아시아는 끊임없이 인류 집단을 키워내 서쪽으로 밀어낸 거대한 자궁과도 같았습니다. 그 움직임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여러 차례 유럽 대륙을 휩쓸었습니다. 기원전 2천년 경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서 시작된 아리아인(인도-유럽어족)의 대이동은 인도와 이란 고원을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오늘날 유럽 민족과 언어의 기층을 형성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영토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화, 언어, 그리고 사회 구조를 전파하며 유럽의 여명기를 열었습니다.

그 후로도 아시아의 물결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4세기 말,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훈족은 '신의 채찍'이라 불리며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고, 그들의 서진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촉발하여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재촉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3세기에는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을 단숨에 석권했습니다. 그들의 기마 군단은 폴란드와 헝가리에까지 이르렀으며, 이는 유럽인들에게 미지의 동방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동시에 심어주었습니다. 이후 오스만 튀르크는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발칸 반도를 장악하며 수백 년간 유럽 세계의 가장 큰 위협으로 군림했습니다.

스키타이인, 아랍인, 투르크인 등 아시아에서 출발한 수많은 민족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유럽의 역사와 혈통 속에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사실상, 오랜 기간 동안 유럽은 아시아의 지정학적, 문화적 영향력 아래 놓인 '식민지'와 같은 존재였으며, 오늘날 유럽의 많은 민족들은 아시아에서 건너온 이주민과 정복자들의 후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신세계의 발원지

아시아의 영향력은 단지 인구나 군사력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깊고 본질적인 영향력은 인류의 정신세계를 형성한 위대한 사상과 종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주요 종교와 철학의 창시자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신적 스승들은 거의 예외 없이 아시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인 힌두교는 인도 아대륙의 다양한 신화와 철학이 수천 년에 걸쳐 융합되어 형성된 장대한 정신 체계입니다. 윤회(Samsara), 업(Karma), 해탈(Moksha)이라는 심오한 개념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 힌두교는 인도인의 삶과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힌두교의 자매 종교라 할 수 있는 불교 역시 인도의 왕자였던 싯다르타 고타마에 의해 창시되었습니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직시하고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그의 가르침은 국경을 넘어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그리고 티베트에까지 전파되어 수억 명의 정신적 귀의처가 되었습니다.

서아시아의 팔레스타인 지역은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의 요람입니다. 유대교는 '선택된 민족'이라는 강렬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유일신 야훼에 대한 신앙을 지켜왔으며, 이는 훗날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이래 유럽 문명의 근간을 이루었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갔습니다. 7세기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예언자 무함마드에 의해 창시된 이슬람교는 유일신 알라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강조하며 단기간에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이슬람 문명권을 형성했습니다.

페르시아(이란)에서 시작된 조로아스터교는 선과 악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통해 후대의 유대교와 기독교 사상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중국에서는 인간 사회의 질서와 도덕적 실천을 강조한 공자(孔子)의 유교와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설파한 노자(老子)의 도교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정신세계의 두 기둥이 되었습니다.

크리슈나, 석가모니, 조로아스터, 아브라함, 예수, 무함마드, 공자, 노자... 인류에게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제시한 위대한 사상가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책 몇 페이지는 금방 채워질 것입니다. 이처럼 아시아는 단순히 인류의 물리적 고향일 뿐만 아니라, 인류 정신의 영원한 고향이기도 합니다.

제3장: 작지만 위대한 대륙, 유럽 - 과학과 예술의 빛

아시아가 육중한 거인처럼 지도 위에 누워 있다면, 유럽은 왜소해 보일 정도로 작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나 국가의 위대함을 재는 데 있어 크기는 가장 미숙한 기준일 뿐입니다. 유럽이 비록 대륙 중에서는 가장 작을지라도, 인류 역사에 기여한 그 위대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유럽은 인류 문명의 발전을 비약적으로 앞당긴 원동력이었습니다.

이성의 시대와 과학 혁명

중세의 긴 잠에서 깨어난 유럽은 르네상스를 통해 인간 중심의 가치를 재발견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화가 부활하면서, 인간의 이성과 창의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인본주의적 토양 위에서 인류 지성사의 가장 극적인 변화인 '과학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을 뒤엎고 태양 중심의 지동설을 주장하며 새로운 우주관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직접 제작한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관측하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입증했고, 종교 재판의 위협 속에서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외치며 과학적 진실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영국의 아이작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여 천상의 운동과 지상의 운동을 하나의 수학적 원리로 통합함으로써, 이 세계가 신의 변덕이 아닌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들은 단순히 지식을 확장시킨 것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인류의 관점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미신과 맹신이 지배하던 세계에 이성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으며, 인류는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하며, 그 원리를 파악하여 인류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합리주의 정신은 계몽주의 시대로 이어져 자유, 평등, 인권과 같은 근대적 가치를 탄생시켰고, 이는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창조성의 폭발

유럽의 위대함은 과학뿐만 아니라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서도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같은 르네상스의 거장들은 인체의 아름다움과 인간 내면의 깊이를 완벽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바흐의 장엄한 종교음악, 모차르트의 천진난만한 선율, 베토벤의 영웅적인 교향곡은 인간 감정의 모든 스펙트럼을 담아낸 인류 공통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희곡을 통해 인간 존재의 희로애락과 실존적 고뇌를 심도 있게 탐구했고,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근대인의 끝없는 욕망과 구원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위대한 작가, 사상가, 미술가, 음악가, 그리고 행동가들이 유럽에서 배출되었습니다. 그들은 발명과 발견을 통해 수억 인구의 삶을 더 안락하고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인간 정신의 지평을 무한히 넓혔습니다. 그러므로 유럽의 위대성을 부인하는 것은 태양의 빛을 가리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제4장: 편견을 넘어 - 위대함의 척도를 다시 생각하다

그러나 유럽이 발하는 눈부신 광채에 눈이 멀어 아시아의 유구한 위대함을 잊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종종 근대 이후 유럽이 세계를 제패했던 짧은 기간을 인류 역사의 전체인 것처럼 착각하는 우를 범합니다. 이는 마치 한낮의 태양만 보고 새벽의 여명과 저녁의 노을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 중심주의(Eurocentrism)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시아는 인류 문명의 젖줄이었으며, 유럽은 그 젖을 먹고 자라난 재능 있는 자녀 중 하나였습니다. 수학에서 '0'의 개념과 아라비아 숫자는 인도에서 발명되어 아랍 세계를 거쳐 유럽에 전해졌으며, 이는 유럽의 과학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인류 3대 발명품으로 꼽히는 종이, 인쇄술, 화약, 나침반은 모두 중국에서 발명되어 실크로드를 통해 서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이 기술들이 없었다면 유럽의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두 대륙의 위대함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류 문명에 기여한 상호보완적인 관계입니다. 아시아가 인류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삶의 의미와 정신적 구원의 길을 제시했다면, 유럽은 '세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여 물질적 풍요와 합리적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하나는 내면세계의 깊이를 탐구했고, 다른 하나는 외부 세계의 질서를 밝혀냈습니다. 인류 문명이라는 거대한 수레는 이 두 개의 바퀴가 함께 굴러왔기에 전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5장: 잠에서 깨어나는 거인, 아시아의 재도약

"어쩌면 이렇게 시대가 변했단 말인가!"

근대 이후 수백 년간 아시아는 서구 열강의 침략과 식민 지배 아래 긴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은 빛이 바래고, 활기 넘치던 노쇠한 대륙은 무력감과 패배감에 젖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우리 눈앞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때때로 급작스러운 폭발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수 세기에 걸쳐 서서히 그 흐름을 바꿉니다.

오늘날, 21세기의 아시아에서는 그 변화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아시아는 다시 한번 소생하고 있습니다. 식민 지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아시아의 국가들은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며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기술력, 중국의 거대한 시장, 인도의 잠재력, 그리고 한국의 역동적인 문화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의 눈길은 다시 아시아로 쏠리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부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시아는 이제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에 대한 자부심을 되찾고,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에 새로운 대안과 목소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의 눈에도 아시아가 세계사 속에서 다시 한번 위대한 역할을 떠맡을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결론: 역사의 거대한 태피스트리 앞에서

결국, 역사는 단순한 진보의 연대기도, 무의미한 순환의 반복도 아닙니다. 그것은 진보와 퇴보, 창조와 파괴, 협력과 갈등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고설켜 짜이는 거대하고 복잡한 태피스트리와 같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은 이 태피스트리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색실이며, 어느 한쪽 없이는 전체 그림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과거를 배우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조망합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문명의 무게 중심은 끊임없이 이동하며, 어제의 변방이 내일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현재의 시련에 좌절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하려는 의지입니다.

잠에서 깨어나는 아시아의 재도약은 유럽과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 문명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두 대륙은 과거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청산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인류가 당면한 공동의 문제(기후 변화, 불평등, 전쟁 등)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해야 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서로의 지혜를 구하고 힘을 합칠 때, 비로소 인류는 진정한 의미의 '진보'를 향한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길고도 숭고한 여정의 기록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써 내려가야 할 미래의 역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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