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와 마르셀 프루스트

by 남킹

침묵의 교향곡: 제임스 조이스와 마르셀 프루스트, 두 거성이 스쳐간 찰나의 영겁에 대한 고찰


서곡: 1922년 파리, 신화가 예비된 밤

때는 1922년 5월 18일,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남긴 상흔 위로 ‘광란의 시대(Années folles)’가 덧칠되던 파리의 밤이었다. 빛의 도시는 낡은 시대의 장막을 걷어내고 피카소의 입체주의, 스트라빈스키의 불협화음, 코코 샤넬의 직선적 실용주의가 뒤섞여 끓어오르는 용광로와 같았다. 예술은 더 이상 현실의 모방이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우주를 창조하는 행위로 격상되었고, 문학이라는 행성에서는 두 개의 거대한 중력장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하나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미로 같은 뒷골목을 하루라는 영겁 속에 압축해낸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였고, 다른 하나는 코르크로 마감된 방 안에서 과거라는 대양의 가장 깊은 심연을 길어 올린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였다.

그들은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성좌의 양극단에 위치한 쌍성이었다. 동시대의 독자들은 물론 후대의 비평가들까지도 이 두 작가를 20세기 소설의 지평을 연 알파와 오메가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조이스가 언어의 원자들을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의식의 표층을 흐르는 혼돈의 강물을 포착했다면, 프루스트는 기억의 가장 미세한 모세혈관을 따라 흘러가 무의식의 지층에 화석처럼 굳어버린 시간을 복원했다. 한 명은 현실의 모든 소음과 악취, 비루함을 끌어안고 그 속에서 인간 정신의 교향악을 발견한 디오니소스적 축제의 사제였고, 다른 한 명은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알레르기처럼 기피하며 자신의 내면이라는 수정궁 안에서 잃어버린 낙원을 재건축한 아폴론적 관조의 건축가였다.

이렇듯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두 거장이, 예술 후원가였던 시드니 쉬프와 바이올렛 쉬프 부부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를 위해 마제스틱 호텔에서 주최한 파티에서 조우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문학사의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운명이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상이한 물리 법칙을 따르는 우주가 충돌하는 순간과도 같았으리라. 사람들은 신들의 만남을 기대했다. 언어의 연금술사와 기억의 고고학자가 만나 어떤 지적인 불꽃을 피워 올릴지, 서로의 작품 세계에 대한 고차원적인 담론이 오가며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의 지평이 열릴 것이라 예견했다. 그러나 역사가 기록한 진실은, 이러한 기대를 무참히 배반하는 한 편의 부조리극에 가까웠다.

제1악장: 육체의 현현(Epiphany) - 질병이라는 갑옷을 입은 두 개의 자아

그날 밤 파티장의 휘황한 샹들리에 아래, 두 작가의 육체는 그들의 문학 세계만큼이나 이질적인 모습으로 현현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유령처럼 나타났다. 그는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자, 파리 사교계의 가장 유명한 은둔자였다. 평생 그를 괴롭힌 천식과 각종 알레르기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그의 존재론적 조건이자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기관 그 자체였다. 그의 육체는 외부 세계의 모든 자극-먼지 한 톨, 한 줄기 외풍, 강렬한 향기-에 고통스럽게 반응하는 극도로 민감한 현악기였다. 그날 밤에도 그는 계절에 맞지 않는 두터운 모피 코트와 여러 겹의 스카프로 중무장한 채였다.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이 감도는 그의 피부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한 자기(瓷器)와 같았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희미한 쇳소리는 그의 생명이 얼마나 위태로운 기반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웅변했다. 그의 몸은 코르크로 틀어막은 방의 연장이었으며, 그의 존재는 속세의 공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필사적인 투쟁의 총체였다.

반면, 제임스 조이스의 육체는 그 투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밖으로 드러내는 전장(戰場)과 같았다. 알코올로 상기된 얼굴, 가난과 망명의 세월이 새겨진 깊은 주름, 그리고 무엇보다도 녹내장으로 인해 두꺼운 렌즈 너머로 희미하게 빛나는 그의 눈은 한때 세상을 꿰뚫어 보던 예리함을 잃고 안으로, 더 안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그는 아일랜드라는 조국을 스스로 등진 추방자였으나, 그의 언어는 단 한 순간도 더블린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육체는 싸구려 백포도주와 끝없는 구술 작업으로 혹사당하고 있었다. 프루스트가 세계를 차단함으로써 자신의 예술을 보존했다면, 조이스는 세계의 모든 오물을 남김없이 섭취하고 그것을 문학적 배설물로 토해냄으로써 자신의 예술을 증명했다. 그의 구부정한 자세와 초조하게 떨리는 손가락은, 현실이라는 부조리에 맞서는 오만한 저항 정신의 육체적 발현이었다. 그는 질병을 갑옷 삼아 안으로 숨은 프루스트와 달리, 가난과 질병을 무기 삼아 세상과 대결하는 망명객이었다.

이 두 개의 육체가 나란히 의자에 앉았을 때, 그 사이에는 어떠한 물리적 접촉이나 화학적 반응도 일어날 수 없는 투명한 장벽이 존재했다. 프루스트의 몸이 내뿜는 섬세하고 병적인 아우라와 조이스의 몸에서 풍기는 알코올과 담배, 그리고 불굴의 의지가 뒤섞인 체취는 서로를 밀어내는 자석의 같은 극처럼 팽팽한 긴장을 형성했다.

제2악장: 공허의 변주곡 - 불통(不通)의 대화

전설에 따르면, 그들의 대화는 문학사상 가장 심오한 허무를 담고 있었다. 한 증언은 그들이 서로의 건강 문제에 대해서만 불평을 늘어놓았다고 전한다. 조이스가 자신의 망가진 눈에 대해 한탄하자, 프루스트는 자신의 위장에 대해 하소연하는 식이었다. 또 다른, 그리고 더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더욱 극적이다. 침묵 끝에 프루스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고 한다. "저는 당신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무슈 조이스." 그러자 조이스가 즉시 응수했다. "저 역시 당신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슈 프루스트."

이 짧은 문답은 단순한 무례함이나 지적 오만의 발로가 아니다. 그것은 두 개의 완결된 우주가 서로의 존재를 인지했지만, 서로의 궤도에 진입하기를 거부하는 장엄한 선언과 같다. 그들의 '읽지 않음'은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 각자의 예술이 지닌 절대적 독자성과 자율성에 대한 무의식적 긍지였다. 조이스에게 프루스트의 문장은 감각의 미세한 떨림을 쫓아 끝없이 이어지는 거미줄처럼 느껴졌을 것이고, 이는 더블린의 거친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날것으로 포착하려는 그의 야수적 충동과 상극이었다. 반대로 프루스트에게 조이스의 언어는 의식의 하수구를 떠도는 온갖 잡다한 파편들의 무질서한 집합체, 즉 그의 예민한 감수성을 공격하는 소음의 폭격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들이 서로의 작품을 읽었다 한들, 과연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 가능했을까? 아마도 그들은 서로의 작품 속에서 자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의 본질에 접근하는 경쟁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더욱 깊은 고독 속으로 침잠했을 것이다. 그들의 대화는 언어의 표면에서 미끄러져 아무런 의미의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이는 대화의 실패가 아니라, 대화라는 행위 자체가 그들의 예술적 본질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진실의 폭로였다. 알랭 드 보통이 지적했듯, 우리는 위대한 작가의 작품을 통해 그의 가장 정수화된 자아, 즉 오랜 고독과 영감의 순간들이 응축된 결과물을 만난다. 그러나 파티장에서 만난 작가의 육체는 시간의 한계와 사소한 현실에 묶인 필멸자에 불과하다. 그 간극을 확인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실망을 낳는다. 그들의 침묵과 불통의 대화는, 차라리 가장 정직한 형태의 교감이었다.

제3악장: 시간의 불일치 - 원심력(遠心力)과 구심력(求心力)의 충돌

그들의 만남이 그토록 짧고 공허했던 근원적인 이유는, 두 작가가 '시간'이라는 실존의 본질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탐구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학은 시간에 대한 서로 다른 철학적, 미학적 응전이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시간을 원심력의 원리로 파악한다. 1904년 6월 16일이라는 단 하루의 시간은 레오폴드 블룸이라는 인물의 의식을 중심으로 팽창하고 폭발한다. 그의 의식은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감각하는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받아들인다. 신문의 광고 문구, 거리의 소음, 방광의 압박감, 음식의 냄새와 같은 지극히 사소하고 육체적인 감각들이 셰익스피어에 대한 사유나 아내의 불륜에 대한 고뇌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의식의 흐름 속을 표류한다. 이것은 시간을 수직적으로 탐사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이다. 조이스에게 시간은 심연이 아니라,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광대한 표면이다. 그의 '의식의 흐름' 기법은 이러한 시간의 동시성을 포착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론이었다. 그는 시간을 정복하거나 과거를 되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흐르는 시간의 모든 단면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그 혼돈 자체를 기록할 뿐이다.

반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을 구심력의 원리로 조직한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맛과 향기라는 지극히 미미한 현재의 감각 하나가, 잊혔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거대한 세계 전체를 현재로 소환하는 기폭제가 된다. 이것은 '비자발적 기억(mémoire involontaire)'이라는 기적의 순간이다. 프루스트에게 현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 현재는 오직 과거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한 단서, 혹은 그 시간을 되찾지 못했음을 확인시켜주는 고통의 원천일 뿐이다. 그의 문장은 하나의 감각에서 시작하여 기억의 연쇄반응을 따라 끊임없이 안으로, 과거로 파고들어 간다. 콩브레의 길, 스완의 사랑, 게르망트 가의 사교계 등 모든 과거의 편린들이 '나'라는 중심점을 향해 수렴된다. 그에게 시간은 정복하고 되찾아야 할 대상이며, 예술은 덧없이 흘러가 버린 시간을 영원성 속에 박제하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따라서, 파티장에서 만난 조이스와 프루스트는 서로 다른 시간대, 다른 시간의 물리 법칙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조이스는 소음과 군중, 알코올의 기운이 뒤섞인 '지금'이라는 시간의 표면을 유영하고 있었던 반면, 프루스트는 그 모든 현재의 자극으로부터 자신의 내면을 보호하며 과거라는 심연의 부름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결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 않았다. 바깥으로 폭발하는 에너지와 안으로 수렴하는 에너지는 결코 조화로운 화음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들의 만남은 찰나였지만, 그 찰나 속에는 영원히 좁혀질 수 없는 시간의 간극이 놓여 있었다.

종곡: 위대한 불화(不和), 그 필연성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제임스 조이스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만남이 무의미한 해프닝으로 끝난 것은 결코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두 개의 독립된 예술 세계가 자신의 고유한 법칙을 지키기 위해 내린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들의 침묵은 단순한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언어라는 매개로는 결코 번역될 수 없는 각자의 고독한 위대함을 긍정하는 가장 웅변적인 선언이었다.

만약 그 밤, 그들이 서로의 문학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면, 만약 서로의 천재성을 칭송하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면, 문학사는 조금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일화를 얻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아마도 그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잃었을 것이다. 즉, 예술적 창조 행위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고독한 작업인지, 위대한 정신이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떻게 세계로부터 격리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순수한 증거를 말이다.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았기에 차라리 침묵을 택했다. 그들은 서로의 눈동자 속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언어와 시간이라는 거대한 운명과 홀로 싸우고 있는 또 다른 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신성한 고독을 감히 침범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서로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경의임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렇게 1922년 파리의 밤, 두 개의 별은 잠시 스쳐 지나갔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듯 보였지만, 그들이 남긴 침묵의 여백이야말로 후대의 우리에게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서로 다른 길을 통해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곳을 탐험했던 두 거장의 위대한 불화(不和)가 만들어낸, 가장 완벽하고도 소리 없는 교향곡이었다. 택시 안에서 창문을 열려는 조이스와 닫으려는 프루스트의 마지막 일화는, 바깥세상을 향해 열린 의식과 안으로 닫힌 기억이라는, 그들 문학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마지막 악장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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