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뜻대로 8

by 남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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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온 지 7년이 된 그해 겨울, 나는 부장으로 승진하였고 안나는 쾰른 음대 2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회사는 <바이어 04 레버쿠젠> 축구 클럽과 스폰서 협약을 체결하였다. 레버쿠젠에는 당시 손흥민 선수가 소속되어 있었다. 11월 마지막 토요일, 우리 부서에서는 손흥민을 응원하기 위하여 단체로 레버쿠젠 구장인 <바이 아레나>를 방문하였다. 우리 직원들은 승합차를 임대하여 아침에 함께 이동하였고, 나는 오전에 볼일이 있는 관계로, 혼자 차를 몰고 늦게 레버쿠젠으로 향하였다.


레버쿠젠과 딸이 사는 쾰른은 가까이에 있다. 자동차로 넉넉하게 30분이면 닿는 거리다. 나는 본, 레버쿠젠, 뒤셀도르프 등 쾰른 가까운 지역으로 출장을 갈 때면 안나를 따로 만나 용돈도 쥐여 주고, 여유가 있을 때는 같이 저녁도 하곤 하였다. 하지만 그날은 안나가 프랑크푸르트에 이미 내려와 있었다. 그녀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을 다녀가곤 하였다. 보통 금요일 밤에 내려와서 월요일 새벽에 올라갔다.


나는 레버쿠젠으로 뻗어 있는 3번 아우토반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렸다. 시속 200km 가까이 달릴 때도 있었다. 세월이 갈수록 자동차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직업의 특성상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차츰 운전에 익숙해지는 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게다가 독일의 한산한 고속도로 상황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쩌면 내 삶의 종착역이 가까워짐에 따라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 일종의 조바심이 더 크게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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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한 시간 전에 가까스로 도착하였다. 하지만 경기장 주변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주차 공간을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거의 세 바퀴째 주변을 맴돌다 자포자기 상태로 외곽 쪽 도로로 방향을 튼 뒤, 순전히 감으로 이곳저곳의 도로를 뒤지고 다녔다. 그러다 길가에 주차 표시가 흐릿한 한 곳을 마침 발견하게 되어 그곳에 주차하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내려서 보니 경기장과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운이 좋았다는 기쁨과 함께 순간적으로 불안감 – 좋은 자리인데 왜 비어 있을까 하는 - 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것은 독일에서 터득한 일종의 지침 같은 것이다.


지침 :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것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대형 할인점에 세 개의 줄이 있다. 두 개의 줄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한 곳은 사람이 아주 적다. 이유도 모른 채 짧은 줄에 섰다 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 줄은 계산대 직원의 근무 시간이 거의 임박한 곳으로 냉정하게 내 앞에서 잘라버리고 그는 가버린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서성거린다. 그러면 친절한 독일 할머니가 다가와 설명을 한다. 여기 계산대 앞에 놓인 붉은색의 작은 팻말은 더는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나는 좀 더 신중하게 주위를 살펴봤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시합은 이제 30분도 남지 않았다. 경기장까지 걷고 입장 대기 한 뒤 내 자리를 찾는 것까지 고려하면 사실 시간이 부족하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서둘러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대부분 행인은 레버쿠젠을 상징하는 붉은 유니폼을 착용하고 머플러를 목에 걸치거나 손에 매고 다녔다. 어떤 이들은 어깨동무를 한 채 크게 노래를 불렀으며, 또 어떤 이들은 맥주병이나 잔을 들고 구호를 외치기도 하였다. 조금 넓은 길로 들어서자 양편으로 맥주와 핫도그 가게 및 팬 가게들이 즐비하였다. 마치 우리네 시골 장터처럼 시끌벅적하였다. 조용하기 그지없는 유럽 생활에서 참으로 생소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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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안에서 가까스로 나의 자리를 찾았을 때는 이미 시합은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와서 옆줄에 쭉 앉아 있던 동료 직원들이 나를 알아채고는 제각각 인사말을 하였는데, 축구장에 울려 퍼지는 소음이 너무 심해서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스타디움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관중들로 꽉 들어찼다. 인구 16만 정도의 레버쿠젠시 – 우리나라로 치면 경상북도 안동시 정도의 인구수 –에 3만을 수용하는 경기장을 가득 메울 정도면, 거의 이 동네 청장년층 셋 중의 한 명은 보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독일인들의 축구 사랑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경기는 초반부터 박진감이 넘쳤다. 원정팀인 FC 뉘른베르크를 레버쿠젠 선수들이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붙였다. 홈 팬들의 뜨거운 함성이 하늘을 찌르는 듯 쏟아졌다. 키 패스가 연결되거나 슈팅이 나오면 관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고 구호를 외쳤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일인들의 광적인 모습이 참으로 흥미롭게 느껴졌다.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공을 따라가다가 어느새 한 한국인 선수에게 쏠리곤 하였다. 우리 동료들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손흥민이 공을 터치하거나 패스 혹은 드리블할 때면, 직원들 사이에서 과도한 액션이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 전반 35분경 손흥민 선수의 첫 골이 터졌다. 우리는 모두 벌떡 일어나 서로 껴안고 함성을 지르며 폴짝폴짝 뛰었다. 순간 관중석의 진동이 진하게 느껴졌다. 전광판에는 ‘Tor’라는 큰 글자가 번쩍거렸고 옆에는 손흥민 사진이 게재되었다. 그리고 장내 아나운서가 큰 소리로 ‘흥민’ 하고 외치자 모든 관중이 ‘쏜’ 하고 따라 외쳤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감동의 순간은 후반전에 다시 한번 터졌다.


손흥민이 두 번째 골을 넣은 것이다. 축구의 나라 한복판에서 독일인들이 한국인 청년의 이름을 소리 높여 외치는 모습에서,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자부심을 느끼고 말았다. 더욱이 레버쿠젠 유니폼에는 한국 회사 로고가 박혀 있었다. 30년 전 바로 이곳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한 한국인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는 연습이 끝나면 아내와 함께 어떤 특정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하였다. 그곳에는 선간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한국 회사의 광고였다. 독일에서 그가 본 유일한 한국 회사 광고였다고 한다.


결국, 그날 레버쿠젠이 3 대 0으로 이겼다. 돌아가는 홈 팬들의 발걸음이 기쁨으로 흥청거렸다. 여기저기서 합창이 이어졌고 우리 일행을 보고 엄지를 척 내밀며 반가움을 전하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축구로 주위의 행인들이 형제가 된 기분이었다. 회사 동료들은 이 기쁨을 이어갈 뒤풀이를 모의하더니 모두 뒤셀도르프 시내로 떠났다. 나는 개인 사정을 핑계로 집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한 달 만에 보게 되는 딸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가 더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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