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나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피를 곳곳에 뿌리고 음식에는 환각제의 양을 늘려나갔다. 그리고 한 번씩 사람의 절단한 다리나 팔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이미 인육과 피 냄새에 길든 그들은 초기의 거부 반응에서 돌아서서 점점 노골적으로 환영을 표시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점을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나는 목욕탕과 샤워실, 각종 생활용수, 식수에도 피를 섞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가공식품을 줄여 나갔다. 뭐 이유는 간단하게 둘러댔다.
<비축해둔 식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블라드 체페슈 성은 피 냄새가 진동하는, 진정한 의미의 드랴큐라 성이 되었다. 나는 조명을 점점 더 붉고 어둡게 만들었다. 그리고 좀 더 기괴한 장식품들을 진열했다. 마지막으로 음식값을 매일 매일 올리기 시작했다. 환각과 피 냄새에 취한 성의 주민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뱀파이어처럼 변해갔다. 나는 그들의 피를 남은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기 위해, 매일 피의 축제를 열었다. 그들은 점점 미쳐갔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인성을 내려놓은 듯,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쓰러진 녀석의 피는 아낌없이 쭉쭉 빨렸다. 그들은 이제 진정한 뱀파이어가 되었다. 나는 이 광경을 지켜보며, 드디어 떠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어느 날 나는 집사, 헬기 조종사와 함께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가까이에 마련한 헬리콥터 격납고로 향했다. 우리는 중요 서류가 든 돈 가방을 싣고 출발했다. 그리고 나의 블라드 체페슈 성 상공을 천천히 돌면서 비행했다. 나는 발아래에 펼쳐진 멋진 나의 성을 감회에 젖은 채 한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가방에서 리모컨을 꺼내 크게 심호흡을 하고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성 곳곳에 설치해둔 폭탄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화염은 기대보다 훨씬 크고 장엄했다. 나는 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열기를 느꼈다.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나의 성에서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기수를 바닷가로 돌리도록 명령했다.
무인도
조그마한 항구에 도착한 나는 조종사와 작별하고 집사와 함께 준비해둔 요트에 올라탔다. 그리고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으로 향했다. 바로 내가 후원한다는 백신 연구소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연구소는 그냥 간판만 있을 뿐, 실상은 나의 별장이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 무인도를 사들여 고급 저택을 짓고 필요한 물품과 관리원을 마련해 두었다. 나는 이곳에서 바이러스가 잠잠해질 때까지 은둔하며 나의 자그마한 왕국을 통치할 생각이었다.
따스한 바닷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어느 날 나는 마침내 나의 섬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관리원은 집사만큼 나이가 든 할머니였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젊고 날씬한 여인이 긴 생머리를 날리며 서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 가방을 선뜻 들고 앞서 나갔다. 나는 그녀의 섹시한 엉덩이를 바라보며 나의 왕궁으로 걸어서 갔다.
별장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산뜻했다. 그동안 꾸준히 돈을 투자한 보람이 느껴졌다. 나는 전면에 난 유리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상쾌한 바닷바람이 쉴 새 없이 나의 뺨을 매만졌다. 나는 나의 시선이 닿는 곳 끝까지, 에메랄드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감탄으로 맞이했다. 나는 행복에 겨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날이 되고 보니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이 밀려왔다. 더럽기 짝이 없는 빈민가의 자식이 이제는 셀 수도 없는 엄청난 돈을, 유명한 은행 비밀 금고마다 꽉꽉 채웠으니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으리오!
곧이어 집사가 저녁이 준비되었음을 알려왔다. 그들이 준비한 요리는 다시 한번 나를 감동하게 했다. 크고 싱싱한 해산물과 열대 과일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게 했다. 나는 돈의 놀라운 능력에 흠뻑 젖은 채, 음탕한 눈초리를 젊은 여성에게 보내며 어기적어기적 음식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는 사이 해가 지고 있었다. 식탁 주위로 붉은빛이 찬연하게 몰려왔다. 나는 그 빛 속에 생글생글 웃고 있는 맞은 편 여인을 바라보며 주책없이 많은 음식을 뱃속에 집어넣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동안 이어진 선상 생활의 여독 때문이었을 까? 나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심하게 피곤함을 느꼈다. 그래서 짧게 샤워를 하고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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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몽사몽간에 눈을 떴다. 왠지 이상한 게, 목과 발목이 따끔따끔함을 느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시커멓게 생긴 뭔가가 퍼덕거리며 마치 목을 할퀴는 듯이 내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방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그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수백 마리의 박쥐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전면 유리문으로 몸을 날렸다. 그런데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유리 조각 하나가 나의 목, 동맥을 찌르고 말았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나는 얼마 가지 못하고 달려드는 박쥐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졌다. 피가 얼굴 전체를 삽시간에 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이 점점 굳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손가락질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의식이 점점 떠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 최고의 천재이지 않은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어찌 보면 안 오는 게 이상한 거였다. 숱하게 많은 악행을 저질렀으니, 언젠가 심판받을 날이 오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앤탁틱디오스흡혈박쥐>는 물개보다 시원하고 맛있는 나의 피에 환장하고 있었다. 나는 단지 그날이 생각보다 일찍 온 것에 미련이 남을 뿐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