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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안양의 행복

by 남킹


남이 하는 일을 애써 깎아내리는 사람은 자신도 악평을 불러 모은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

안양은 지금 불행하다. 국가 대표 4차 선발전에서 꼴찌로 탈락하고 말았다. 불과 4년 전, 히로시마 올림픽에서 동메달 4관왕으로 주목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결과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녀는 그때부터 내리막길이었다.

미용실 <헤어지지마>에서 과감하게 싹둑 머리를 자르고 숏컷으로 변신하면서, 실력도 싹둑 날아가 버렸다. 마치 삼손처럼.

물론 그녀가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때문이었다. 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체중과의 전쟁이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식탐. 향긋하기 그지없는 갖가지 요리. 그녀는 일식 오마카세 중독녀였다. 올림픽 메달 이후, 그녀가 벌어들인 돈은 대부분 고급 일식집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활시위를 당기며 팽팽한 긴장 속에 과녁에 집중하다 보면, 눈앞에 통통한 전복이 꼼지락거리거나, 연분홍 감성돔 사시미가 유혹하고, 다양한 부위의 참치와 갯장어가 펼쳐지고, 노랗게 잘 구운 갈치가 손짓하거나, 왕새우가 퍼덕거리며 그녀를 부르고, 앙증맞은 모습의 캐비어와 와사비가 입속의 침을 가득 만들어내고, 도파민 분비 일등 공신 골뱅이와 무늬오징어까지 합세하더니, 어느새 맛있는 것은 다 꾸역꾸역 집어넣은 우니 게장 단새우와 고소한 생선찜, 입속에서 톡톡 튀는 연어알, 부드럽게 다진 아나고 스시까지 그녀를 꼬드겼다. 게다가 입가심으로 청어 소바, 한 모금 머금고 촉촉하고 부드럽고 향기롭기 짝이 없는 교꾸까지, 한 입 베어 물고 마무리로 모나카 아이스크림까지…. 그야말로 온통 먹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니 과녁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다.

그녀의 똥배는 나날이 부풀어갔다. 그러니 코치가 그녀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틈만 나면 안양에게 빽빽거렸다.

“야! 안양! 너 진짜 살 안 뺄 거야? 올림픽이 코앞인데! 파리 안 갈 거야?”

코치의 잔소리가 끔찍하게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그의 말대로 다이어트를 해야만 했다. 내 목숨보다 사랑하는 튀김을 끊고 스시를 절반으로 줄였다. 훈련을 마치고 저녁에 숙소에 누워 있으면 배가 꼬르륵꼬르륵하며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버텨야 했다. 이를 악물고 견뎌야 했다.

결국 안양이 선택한 것은 대리만족이었다. 천만 유튜버 짜양의 먹방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짜양의 영상을 보며, 마치 자신이 짜양이 된 것처럼, 감정이입과 빙의를 통하여, 안양은 배터지게 먹고 또 먹는 허상에 사로잡히며 겨우겨우, 긴긴밤을 넘길 수 있었다. 심지어 꿈속에서조차 안양은 짜양으로 변신하여 수백 개의 다양한 스시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가득한 곳에서, 즐겁게 입속에 쑤셔 넣곤 하였다. 그리고 꼭 마지막 맨트를 남겼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숱한 고통을 겪었음에도 결과는 비참했다. 국가 대표 탈락. 결국 모든 게 일장춘몽이었다. 공수래공수거고 호접지몽이며 남가일몽이었다.

안양은 조용히 고향인 안산으로 내려갔다. 올림픽 꿈이 깨졌으니 이제 뭐라도 해야 하는데, 할 줄 아는 게 활쏘기밖에 없었다. 막막했다. 그리고 외로웠다.

그나마 위안이 돼 준 것은, 탈락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끝까지 응원해주는 여초 커뮤니티 사이트 회원들 뿐이었다. 그녀들이 남긴 응원 댓글 하나하나가, 불행한 안양에게는 유일한 행복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여초 사이트와 먹방을 기웃거리며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긴 하루를 때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양은 우연히 한 먹방 채널에서 일식 레스토랑 광고를 보게 되었다.

<1시간 안에 초밥 100접시 먹으면 100만 원>

그녀는 눈을 번쩍 뜨고 벌떡 일어났다.

‘그래! 이거야! 어차피 이래 된 거! 나도 짜양처럼 먹방 하는 거야! 얼마나 좋아! 먹고 싶은 거 실컷 먹고 돈도 벌고!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지!’

생각해보니 고향에 내려온 뒤 그녀는 스시 구경도 못 한 상태였다.

‘그래! 제2의 인생을 사는 거야! 안양의 먹방 채널! 멋있잖아!’

그녀는 하루를 꼬박 굶은 뒤, 다음 날 그 일식 레스토랑으로 버스를 2번 갈아타고 내려갔다. 막상 식당에 도착해서 보니 입구에서부터 실내 장식까지 마치 일본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 온통 일본식 장식이 요란했다. 그동안 일본 오마카세로 다져진 그녀는 그런 풍경이 너무도 푸근했다. 자신이 전생에 사무라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녀는 일본 전통차를 다소곳이 따라주는 식당 종업원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도전 스시 100접시 먹방 신청합니다.”

그러자 호리호리하게 생긴 여종업원이 안양을 잠시 빤히 보다가, 한쪽 벽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까지 성공하신 분이 겨우 손에 꼽을 정도인데…. 괜찮겠어요?”

그곳에는 도전에 성공한 이들이 상금을 받고 쉐프와 함께 환하게 웃는 사진이 액자로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 속에는 짜양도 있었다.

짜양을 보는 순간, 안양은 도전 정신이 불같이 타올랐다.

‘코딱지만 한 짜양도 할 수 있는데 내가 이걸 못하겠어? 올림픽 메달까지 딴 사람인데!’

“네, 할 수 있습니다.”

잠시 후, 정장을 준수하게 빼입은 점장이 나타나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먹방 도전 신청서였다. 신청서의 내용 중에는, 만약 도전에 성공하면 우승 상금 100만 원을 받고 만약 실패 시 스시 100접시 요금 50만 원을 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안양은 순간 약간 겁이 났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신청서에 사인했다.

잠시 후, 탁자에 알람용 시계와 촬영 장비가 갖추어졌다. 그러자 주변 손님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안양에게 몰렸다. 대중들의 시선에 꽤 익숙한 그녀였지만, 막상 먹방을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부끄러워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렇게 한 10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쉐프와 점장이 대형 접시에 가득 담은 스시를 가져와 그녀 앞에 놓았다. 마치 봄날에 수많은 꽃이 만발한 정원처럼 아름다웠다. 안양은 스시를 보자마자 침을 꿀떡꿀떡 삼켰다. 그녀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그녀가 기대한 것보다 작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모든 세팅을 마친 점장은 부드러운 어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준비되시면 저 시계 버튼을 눌러주세요. 그리고 초밥 드시면 됩니다. 그러면 1시간 뒤 알람이 자동으로 울립니다. 그럼 성공하기를 응원합니다. 안양 고객님.”

그녀는 길게 한숨을 쉬고 단박에 시계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허겁지겁 최대한 빨리 입속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하루 반나절을 굶은 그녀의 뱃속은 요동을 치며 음식을 반겼다.

‘내가 누구냐! 올림픽 메달리스트다! 경쟁심 하나는 누구 못지않다! 그래! 할 수 있다!’

안양은 속으로 거듭 자신을 다그치며 신속하게 초밥 접시를 비워나갔다.

그렇게 20분이 흘렀을 때쯤, 그녀 앞에 놓인 대형 접시에 수북이 쌓여 있던 스시 절반이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자신감이 들었다.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몸속 어딘가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래! 잘하고 있어! 이대로 쭉 가면 된다!’

그런데 너무 빈속에 갑자기 먹었던 탓일까? 아랫배에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통증은 점점 더 커지고 위로 확대되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배 전체가 메스껍고 울렁거리며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 아프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안양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참아야만 했다. 그녀는 고통을 꾹꾹 참으며 목구멍에 꾸역꾸역 스시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점, 그녀가 그처럼 좋아했던 초밥이 마치 버러지를 먹는 것 같은 역겨움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시계는 40분을 나타냈다. 남은 시간은 20분. 하지만 접시에 담긴 스시는 그다지 줄어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젠장! 보기보다 더럽게 많네! 시팔!’

안양의 입은 음식물 씹기와 욕지거리 뱉기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시팔! 올림픽 메달 따기보다 더 힘드네!’

시간이 50분을 가리켰다. 이제 접시에 남겨진 스시는 대략 스무 개 정도였다. 끝까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배에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떨리는 손으로 하나씩 하나씩 스시를 입에 쑤셔 넣었다. 그렇게 스시가 10개 정도 남을 무렵,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강하게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허겁지겁 변기 뚜껑을 열고 목구멍까지 꽉 찬 스시를 모두 뱉어냈다. 그녀의 입에서 마치 짐승이 죽어가는 듯한 소리가 계속 터져 나와 화장실 전체에 메아리쳤다.

그녀는 온몸의 힘이 탁 풀리면서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천장을 쳐다보는데, 눈동자의 동공이 벌벌 떨려 세상이 흔들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그냥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꼭 우승하여야 한다! 꼭 끝내야 한다!’

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을 채찍질하며 화장실을 박차고 나갔다. 자리에 돌아와 시계를 보니 58분. 이제 딱 2분이 남았다. 하지만 속을 게워낸 상태라 한결 먹기가 편했다. 그녀는 마지막 스시 10개를 후다닥 입에 다 집어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마침내 알람이 울렸다. 그녀 앞에 놓인 접시는 깔끔하게 비워졌다. 그녀를 숨 가쁘게 지켜보던 손님들이 일제히 손뼉을 쳤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관객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장하다 안양! 해낼 줄 알았어!’

그녀는 자신을 칭찬하며 모처럼 만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은 잠깐이었다. 그녀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스시 한 점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당황한 그녀는 급히,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았다. 그곳에는 그녀가 급하게 화장실을 간다고 일어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스시 한 점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생생히 잡혀 있었다. 그녀는 황당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점장에게 항의했다.

“바닥에 떨어진 스시를 어떻게 먹을 수 있습니까? 제가 일부러 흘린 것도 아닌데….”

하지만 점장은 빙그레 웃으며 옆 보조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참가자가 실수로 스시를 바닥에 떨어뜨릴 것을 대비해 여유 스시 10개를 준비해둔 상태였다. 그리고 점장은 신청서를 다시 그녀에게 보여주며 한 곳을 지적했다. 그곳에는 선명하게 명시가 되어 있었다.

‘만약 참가자가 실수로 스시를 떨어뜨리면 옆 보조 테이블에 있는 스시를 가져와 떨어진 개수만큼 먹어야 한다.’

안양은 불행했다. 그녀는 국가 대표 선발에 이어 다시 탈락하고 말았다. 고통과 절망, 분노가 솟구쳤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규정은 규정이니까. 스시 100접시 요금 50만 원을 낼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깎아달라고 빌어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에 보는 시선이 너무 많았다.

그녀는 다시 버스를 2번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도중 내내, 분하고 원통한 마음만 쌓여갔다. 그냥 이대로 넘어가자니 속이 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젠 스시만 생각해도 토할 것 같고 일본어만 쳐다봐도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안양에게는 위로가 필요했다. 그녀는 인터넷으로 그 일식집 사이트와 구글 맵에 들어가 별점 테러와 댓글을 남겼다.

“내가 먹어 본 스시 중 최악!”

자신도 이게 쪼잔하고 비겁한 복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다음으로 그녀는 여초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자신의 휴대폰에 담긴 그 식당의 사진 중 일본어가 적혀 있는 것, 몇 개를 업로드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어떤 맨트를 날리면 내 속이 좀 가라앉을까?’

강하고 노골적으로 상대방을 비하할 수 있는 문장이 필요했다. 그러던 한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번쩍하고 멋진 단어가 떠올랐다.

‘그래! 그거야!’

그녀는 사진 옆에다 볼드체로 적었다.

‘한국에 매국노 왜케 많냐!’

곧이어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그녀의 의견에 동조나 찬성을 하는 글이었다. 좋아요. 도 삽시간에 오르기 시작했다. 안양은 소중한 댓글 하나하나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자 자신을 심하게 억누르던 불행의 장막이 서서히 옅어지며 반짝반짝하는 행복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야! 역시 우리 페미 언니들 뿐이야!’

안양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창문을 살짝 열었다. 붉은 저녁 햇살이 곱게 방을 가로질러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 놓인 코케시 인형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저녁 공기가 상쾌했다. 그녀는 창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저 멀리 안산역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날 밤, 그녀는 모처럼 만에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늦은 아침, 그녀가 깨어날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좋았었다. 그러니까, 100만 유튜버이자 반 페미로 잘 알려진 <뿅가>가 그녀를 비난하는 영상을 올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는 이후, 다시 불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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