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뱀

단편소설

by 남킹

에덴의 뱀

기차는 제 수명을 다한 거대한 짐승의 마지막 숨처럼, 길고 처연한 울음을 토해냈다. 그 울음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잊힌 것들의 시간 속에 갇힌 수많은 영혼의 탄식을 한데 모아 압축한 듯한 소리였다. 육중한 쇠바퀴가 부식된 레일 위에서 존재의 마지막을 증명하려는 듯 비명을 지르며 마찰하는 소음이 멎자, 낡고 을씨년스러운 플랫폼 위로 익숙한 무기력과 체념이 차가운 안개처럼 내려앉았다. 오후의 햇살은 제 본분을 잊은 지 오래였다. 대기를 뚫고 지상에 닿는 동안 모든 생명력을 박탈당한 채, 그저 희미한 금빛 먼지가 되어 힘없이 흩날릴 뿐, 세진(世塵)이라는 이름의 이 작은 도시에 한 톨의 온기도 더해주지는 못했다.

도시의 이름은 '세상의 먼지'를 뜻했다. 처음 이곳을 세운 자의 시적인 자조였는지, 아니면 미래를 내다본 예언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의 사람들은 그저 잊힌 도시, 시간이 썩어 문드러진 도시라 불렀다. 이곳에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고인 물처럼 천천히 부패하는 것이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연출가의 지시라도 받은 듯, 약속이라도 한 듯 바쁜 걸음으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흩어졌다. 그들의 걸음에는 희망이나 기대 따위는 없었다. 그저 하루라는 지루한 연극의 다음 막으로 서둘러 이동하는 무감각한 배우들의 움직임일 뿐이었다. 잿빛 시멘트 바닥 위로 여러 색깔의 신발들이 분주하게 오갔지만, 그 흐름에 섞이지 못한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마치 시간의 흐름에서 고의로 비껴난 존재처럼, 혹은 의도적으로 정지 버튼이 눌린 낡은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독히 느릿하게 역사를 빠져나와 도시의 가장 후미진 혈관, 뒷골목으로 향했다.

그의 행색은 도시의 낡고 스산한 풍경과 기묘할 정도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는 이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 분명했다. 몇 해를 입었는지, 그 세월의 더께가 어떤 기억을 담고 있는지 가늠하기 힘든 군용 야상. 색은 바래다 못해 원래의 국방색을 잃고 도시의 먼지와 같은 무채색이 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실밥이 터져 너덜거리는 모양새는 차라리 하나의 전위예술처럼 보였다. 여러 번 꿰맨 흔적이 역력한 청바지는 그의 깡마른 다리통에 헐겁게 걸쳐져, 걸을 때마다 의미 없는 주름을 만들었다가 폈다.

무엇보다 시선을 끈 것은 그의 신발이었다. 무겁고 투박한 워커는 밑창이 거의 다 닳아 평평해져 있었고, 그의 무심한 걸음마다 사각, 사각,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의 부서진 조각들을 아프게 굴렸다. 그것은 단순한 발소리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려는 그만의 주문과도 같았다. 그의 등에는 몸의 절반을 가리는 낡은 배낭이, 마치 그의 육신과 한 몸인 듯 단단히 매달려 있었다. 저 안에 그의 세상 전부가, 혹은 그가 세상으로부터 훔치거나 지키고 싶었던 모든 것이 들어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청년의 시선은 시종일관 땅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땅바닥에 그려진, 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운명의 선이라도 따라가는 듯, 그는 주변을 둘러보는 법이 없었다. 역 앞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호객꾼들의 공허한 외침도, 골목 어귀에서 유리 조각처럼 부서지며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그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의 주위로 세상의 소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그의 완벽한 무관심이라는 방음벽에 부딪혀 힘없이 부서져 나갔다.

바로 그 침묵과 고요함이, 오히려 어떤 이들의 날카로운 신경을 자극했다. 그것은 마치 잔잔한 수면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무료함에 좀먹어가는 포식자들의 본능에 파문을 일으켰다.

"야, 저기 저 찐따 새끼 좀 봐라."

역사 한쪽 구석, 금연구역이라는 팻말을 비웃듯 담벼락에 기대어 무료하게 담배를 태우던 무리의 시선이 청년에게로 향했다. 누가 봐도 이 동네의 질서를 폭력과 무례함, 그리고 경박함으로 유지하는 '일진' 무리였다. 교복을 몸에 딱 맞게, 혹은 그 이상으로 줄여 입고, 어울리지 않는 명품 벨트를 권력의 상징처럼 드러낸 소년들. 그리고 짙은 화장과 한 뼘 길이의 교복 치마로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려 애쓰는 소녀들. 그들은 이 작은 도시의 왕이자 여왕이었고, 동시에 권태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었다.

무리의 우두머리, 혁수가 턱 끝으로 청년을 가리켰다. 그는 최근 유행이라는 듯 노랗게 염색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상대를 재단하고 값을 매기는 오만함이 묻어 있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 모르겠는데, 눈깔에 힘이 하나도 없네. 완전 동태 눈 아니냐? 딱 우리 장난감 하기 좋게 생기지 않았냐? 개꿀잼 각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행색 보아하니 완전 그지새끼인데, 저 배낭은 뭔 보물이라도 들었는지 아주 애지중지 메고 다니네요. 저 안에 혹시 장기라도 들어있는 거 아닐까요? 킥킥."

옆에 있던 똘마니 하나가 맞장구를 치며 저급한 농담을 던졌다. 무리 사이에 낄낄거리는 웃음이 번졌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던 유나, 혁수의 옆자리를 차지한 여학생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권태와 은근한 잔인함이 섞여 있었다.

"오빠, 근데 쟤 좀 이상하지 않아? 너무 조용하잖아.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저런 애들이 건드리면 은근히 재밌어."

"사연? 사연은 우리가 만들어주면 되지."

혁수는 유나의 말에 만족한 듯 웃으며 담배꽁초를 바닥에 비벼 껐다. 그는 일어서며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에 과시적인 폭력성이 묻어났다. 그의 말 한마디에 열 명이 넘는 그림자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들은 사냥감을 발견한 하이에나 떼처럼, 소리 없이 청년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시시덕거리는 그들의 목소리는 끈적하고 불길한 거미줄처럼 청년의 등 뒤에 달라붙었다.

청년은 그들의 존재를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무시하는 것일까. 그의 걸음에는 어떤 변화도,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땅바닥의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 도시의 가장 깊고 어두운 혈관 속으로, 마치 귀소본능에 이끌린 짐승처럼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골목은 점점 더 좁아지고, 양옆으로 늘어선 낡은 건물들은 거대한 괴물의 이빨처럼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벽에 그려진 조잡한 그라피티, 구석에 쌓인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서 풍기는 시큼하고 역한 냄새, 깨진 술병 조각들이 희미한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풍경. 그 모든 것이 마치 이방인을 위한 불길한 무대장치처럼, 완벽하게 조율되어 있었다.

마침내 청년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더 이상의 길이 없는, 이끼 낀 차가운 시멘트 벽이었다. 막다른 길. 피할 곳 없는 종착점. 모든 서사의 끝이자, 새로운 서사의 시작점이었다.

청년은 아주 천천히, 마치 수십 년간 기름칠을 하지 않은 낡은 기계 인형처럼 삐걱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를 따라오던 일진 무리는 어느새 빈틈없는 반원 형태로 그를 완벽하게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사냥감을 궁지에 몰아넣은 포식자의 잔인하고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몇몇은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보였다. 날카롭게 빛나는 커터 칼, 묵직한 황동 너클, 그리고 한 놈의 손에는 짧게 자른 쇠파이프까지 들려 있었다. 그들은 승리를 예감한 듯 여유가 넘쳤고, 그 여유는 곧 폭력에 대한 달콤한 기대감으로 번져나갔다.

"어이, 뉴페이스. 간도 크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제 발로 기어 들어와?"

혁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변성기가 덜 끝난 그의 목소리는 좁은 골목 안에서 불쾌하게 울렸다. 그는 청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경멸적인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마치 가축 시장에서 고기의 등급을 매기는 듯한, 오만한 눈빛이었다.

"이 동네는 말이야, 우리 허락 없이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곳이야. 룰을 모르면 배워야지. 안 그래? 수업료는 좀 비쌀 거야."

청년은 대답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 어딘가, 혹은 그들의 발치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 침묵이 혁수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왕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야, 이 개새끼가 귀가 처먹었나! 혁수 형님이 말씀하시잖아! 대답 안 해?"

왕초 옆에 있던 놈이 소리쳤지만, 청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무리를 더욱 광분하게 만들었다. 유나가 혁수의 팔에 몸을 기대며 교태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빠, 쟤 진짜 뭐 좀 모자란 거 아니야? 눈도 못 마주치잖아. 완전 에바참치네."

"모자라면 더 좋지. 재미있게 고쳐주면 되니까."

혁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눈에는 잔혹한 장난기가 어렸다. 그는 청년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그의 턱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죽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지? 네가 가진 거, 그 더러운 배낭 안에 든 거 전부 다 꺼내놓고. 그리고 이 바닥, 네 혓바닥으로 아주 반짝반짝하게 핥아봐. 그럼 오늘 밤 두 발로 걸어서 집에 가게 해줄 수도 있고."

그 말이 떨어지자, 마침내 청년에게서 반응이 나타났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아주 느린 동작으로 어깨에서 배낭을 내려놓았다. 툭, 하고 가벼운 소리를 내며 배낭이 그의 발 앞에 놓였다. 그 모습에 혁수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그의 예상대로, 그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옳지, 그래야지. 말이 통하는 놈이었네. 진작 그럴 것이지."

그는 턱짓으로 옆에 있던 똘마니, 상철에게 가방을 가져오라 지시했다. 상철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전리품을 챙기는 승리자처럼 허리를 숙여 배낭을 집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땅바닥만 응시하던 청년의 고개가 번개처럼 들렸다. 그 순간, 골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의 눈은 죽은 동태 같던 이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검고, 그 안에선 빙하보다 차갑고 갓 벼린 면도날보다 날카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분노나 증오 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효율과 목적만을 담고 있는, 완벽하게 조율된 살의(殺意)의 빛이었다.

퍽!

공기를 찢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청년의 워커 앞코가 정확하게 상철의 다리 사이, 남성의 가장 연약하고 신성한 부분을 후려쳤다.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차마 귀로 듣고 싶지 않은 둔탁한 소음이 골목을 울렸다.

"끄아아아아악-!"

상철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비명이라기보다는, 짐승의 단말마에 가까운 기괴한 절규였다. 그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소리를 지르며 허리가 활처럼 꺾였다. 두 손으로 급소를 감싸 쥔 채 바닥을 뒹굴며, 그는 거품을 물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의 바지 앞섶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증발했다. 그들의 뇌는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당황, 불신, 그리고 곧이어 치밀어 오르는 굴욕적인 분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 이 미친 개새끼가!"

가장 가까이 있던 두 놈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분노에 차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한 놈은 손에 든 커터 칼의 날을 길게 뽑아 휘둘렀고, 다른 한 놈은 너클 낀 주먹을 청년의 안면을 향해 날렸다. 그들의 눈에는 풋내기 살의가 번뜩였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필사적이었으나,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청년은 상체를 살짝 비트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칼날을 흘려보냈다. 마치 뺨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결을 느끼듯, 그는 칼날의 궤적을 완벽하게 읽고 있었다. 칼을 든 놈의 팔이 허공을 가르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 청년의 왼손이 전광석화처럼 뻗어 나갔다. 그의 길고 가는 두 손가락이,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놈의 오른쪽 눈을 정확하게 찔렀다.

"푸확!"

손가락이 안구를 짓이기고 파고드는 끔찍하고 질척한 감각과 함께, 놈의 입에서 비명조차 되지 못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눈에서는 붉은 피와 투명한 안구의 액체가 함께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지도 못한 채, 줄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뒤로 나자빠졌다.

다른 한 놈, 너클을 낀 주먹이 청년의 턱을 스쳐 지나갔다. 목표를 놓친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치는 찰나, 청년의 발은 이미 그의 가랑이 사이에 도달해 있었다. 다시 한번 터져 나온 끔찍한 파열음. "컥!" 그 녀석 역시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다. 그의 육중한 몸은 마치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듯 공중으로 살짝 떴다가, 무력하게 바닥으로 처박혔다. 그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채,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과 함께 경련을 일으켰다.

삽시간에 세 명이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혁수를 포함한 나머지 일진들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얼어붙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있던 '약하고 순한 먹잇감'의 이미지는 산산조각이 났다. 저 허름한 행색의 청년은 그들이 상상하던 길 잃은 양이 아니었다. 그는 양의 탈을 쓴, 가장 효율적이고 무자비한 도살자였다.

"뭐, 뭐 해!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다 같이 덤벼! 저 새끼 죽여 버려!"

혁수의 다급한 외침이 공포에 질린 무리의 등을 떠밀었다. 그 외침에는 이전의 여유는 온데간데없고, 다급함과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남은 일곱 명의 남학생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혹은 오히려 그 공포를 감추기 위해 더욱 광분한 기세로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쇠파이프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 커터 칼이 허공을 베는 소리,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고함 소리가 좁은 골목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소용없었다. 그들의 폭력은 분노와 공포에 기반한 무질서한 몸부림에 불과했지만, 청년의 폭력은 목적을 위한 완벽하게 조율된 파괴의 교향곡과도 같았다. 그는 한 치의 낭비도 없는 움직임으로 공격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흘려보내고 받아치며, 인체의 가장 치명적인 급소만을 골라냈다.

쇠파이프를 머리 위로 휘두르며 달려들던 놈. 청년은 그 안으로 파고들어 팔꿈치로 놈의 명치를 정확히 찍었다. "억!" 숨이 막힌 놈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청년의 손이 쇠파이프를 쥔 놈의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우두둑, 하는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놈은 비명을 지르며 쇠파이프를 놓쳤다. 청년은 그 쇠파이프를 받아 들지 않았다. 무기는 필요 없었다. 그의 몸 자체가 가장 완벽한 흉기였다. 그는 고통으로 허리를 숙인 놈의 안면을 그대로 무릎으로 찍어 올렸다. 코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놈은 피를 분수처럼 쏟으며 나뒹굴었다.

사방에서 덤벼드는 주먹과 발길질. 청년은 그 중심에서 마치 폭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그는 상대의 공격 궤도를 미리 읽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흘려보내며, 그 찰나의 빈틈을 어김없이 파고들었다. 그의 손가락은 다시 한번 다른 놈의 눈을 향했고, 그의 발길질은 어김없이 또 다른 놈의 가랑이 사이를 노렸다.

"아아악! 내 눈! 내 눈!"

"으악! 내, 내 다리! 부러졌어!"

비명과 신음,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좁은 골목을 가득 메웠다. 그들이 가진 흉기는 위협의 상징일 뿐, 실전 경험이 없는 그들의 손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청년에게는 모든 공격이 훤히 보이는 느린 그림과도 같았다. 그는 마치 정해진 순서에 따라 낡은 기계를 해체하듯, 차례차례 그들을 '무력화'시켜 나갔다.

혁수는 이 모든 광경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공포가 그의 척추를 타고 올라와 온몸을 마비시켰다. 다리가 후들거려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불과 몇 분 전, 자신만만하게 먹잇감을 희롱하던 이 골목의 왕은 없었다. 지금 그는 자신의 부하들이 눈앞에서 도살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겁에 질린 구경꾼에 불과했다.

아홉 명의 소년들이 모두 땅바닥을 뒹굴며 비참한 신음 소리를 내뱉게 되기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골목은 피와 토사물, 그리고 공포가 만들어낸 오줌 지린내로 가득한 지옥도로 변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혁수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서는 유나와 다른 여학생뿐이었다. 그녀들은 언제나 강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조롱하고 괴롭히는 것에 익숙했다. 이렇게 일방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공포 속에서, 유나는 자신도 모르게 청년의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잔혹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마치 칠흑의 표범과도 같은 그의 몸짓에서 기묘한 매혹, 원초적인 힘에 대한 섬뜩한 끌림을 느끼고 있었다.

혁수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의 발에 쓰러진 부하의 다리가 걸려 비틀거렸다. 청년의 시선이 마침내 그에게로 향했다.

"자, 잘못… 잘못했다… 내가,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버지가 이 도시 시의원이야!"

혁수는 본능적으로 가장 익숙한 위협의 말을 내뱉었지만, 그 말은 공포에 질려 끝을 맺지 못했다. 청년은 그의 말을 듣고 있다는 기색조차 없었다. 그는 천천히 혁수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닳아빠진 워커가 끈적한 피웅덩이를 밟는 소리가 골목 안에 섬뜩하게 울렸다.

혁수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손을 저으며 필사적으로 빌었다.

"살려줘… 제발… 돈, 돈 줄게! 원하는 거 다 줄게! 제발!"

청년은 그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그의 눈을 찔렀다. 어떠한 망설임도, 감정의 동요도 없는, 지극히 사무적인 폭력이었다.

이제 정말로 여학생 두 명만이 서 있었다. 그녀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공포로 이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벌벌 떨고 있었다. 유나가 울먹이며 말했다.

"자, 잘못했어요… 우, 우리는 그냥… 혁수 오빠가 가자고 해서 따라오기만… 제발… 살려주세요…."

하지만 청년에게 자비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그녀들에게 향했다. 그 눈빛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분노도, 증오도, 심지어 경멸도 없었다. 마치 길가의 돌멩이를 보는 듯한, 혹은 치워야 할 장애물을 보는 듯한 완벽한 무관심. 그것이 유나를 더욱 절망하게 했다. 차라리 욕정을 품거나 분노를 터뜨린다면 인간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들을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소녀들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녀들의 눈에서 공포와 굴욕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청년은 망설임 없이 유나의 멱살을 잡아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공포로 마비된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가까이서 본 그의 눈동자는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았다.

"컥!"

청년의 주먹이 그녀의 복부를 강하게 가격했다. 짧은 비명과 함께 소녀는 위액과 피를 토하며 무너져 내렸다. 명품 가방과 비싼 화장품으로 치장했던 그녀의 몸이 더러운 골목 바닥에서 경련했다. 남은 여자는 그 광경에 공포를 넘어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빌었지만, 돌아온 것은 역시 무자비하고 정확한 충격뿐이었다. 그녀 역시 곧이어 복부를 감싸 쥔 채 숨을 헐떡이며 쓰러졌다.

골목 안에는 이제 완벽한 침묵과 간헐적인 신음만이 흘렀다. 청년은 그 참혹한 광경을 잠시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의 호흡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치 힘든 노동을 끝낸 장인처럼, 그는 자신의 작업 결과를 무감각하게 확인할 뿐이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닥에 놓여 있던 자신의 배낭을 천천히 집어 들었다. 바닥의 먼지를 손으로 툭툭 털어낸 뒤, 익숙하게 다시 어깨에 둘러멨다. 그리고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무심하고 느릿한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의 등 뒤로 버려진 도시의 끔찍한 신음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잿빛 도시의 이방인은, 그렇게 자신의 첫인사를 피와 고통으로 대신했다. 그의 발걸음이 사라진 골목에는 차가운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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