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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케이 May 06. 2023

팔불출 DNA

팔불출 부부의 유난한 개 아들 사랑


‘보리야 보리야 엄마 새꾸 새꾸 새꾸 내 새꾸 귀염이 아까꿍! 엄마가 보리를 사랑해!

아까꿍 까까꿍 보리 까꿍 까꿍 까꿍 예쁜이 예쁜이 변보리! 보리도 엄마를 사랑해!’




이 곡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알아듣지도 못할 개아들을 향한 나의 세레나데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 말고도 같은 음을 개사한 다양한 버전이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자주 창작되곤 한다.

보리를 위한 노래를 만들겠다고 의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오구 오구~ 내 새꾸 이쁘지~’ 정도의 나의 혼잣말에 지나지 않았었는데, 어느새 라임이 더해지고 점점 길이가 늘어나더니 끊임없이 노래할 수 있는 지금의 돌림노래가 되어버렸다. 요즘 노래로 말하자면 마치 후크송의 후렴구 같다고 할 수 있다.

나도 의도하지 않은 채 어느새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어서 내가 언제 이 노래를 만들게 되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왠지 모르게 부르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이 노래는 원래 나만의 비밀스러운 노래였다.

아무리 팔불출 개 엄마 라고해도 사회적인 시선은 부끄러워서 집 밖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건 스스로 금기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보리와 둘이 있을 때 주로 불러던 노래였는데, 자주 부르다 보니 남편 앞에서도 흥얼거리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어느 날 남편이 보리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마도 남편은 나처럼 자신이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는 사실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보리와 눈높이를 맞춘 엉거주춤한 자세로 보리를 쓰다듬으며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은 평소 반듯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살짝 엉성해 보여 갑자기 빵 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이게 바로 거울효과인 건가.

‘진짜 팔. 불. 출 인데?’


남편은 보리와 함께하기 전까지 나처럼 동물을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생명체는 본래 그만큼 귀여운 것’ 정도로 생각하는, 동물과 지극히 보편적인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보리와 함께 하기 전 먼저 떠나보낸 아이(반려견 이름이 eye이다)와 함께할 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아이는 결혼 전까지 친정에서 함께 살아서 나에게는 동생과 다름없는 개였는데, 아이를 대하는 남편은 보호자로서의 의무를 다할 뿐 지금처럼 애정을 쏟는 모습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지금처럼 사랑하는 개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 그때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남편의 모습을 보니 오래전 첫째 조카가 태어나 친정아버지가 조카를 안아 들고 흥얼거리던 노래가 생각났다.

그때 친정아버지가 조카를 바라보던 사랑스러운 눈빛이 눈에 선 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마음이 진심임을 그 눈빛은 정확히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기억에도 가물가물할 나의 꼬물이시절에도 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안고 노래를 불러주셨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에서 뜨거운 게 울컥하고 올라온다.


사랑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그게 비단 같은 종(種)에 국한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조카를 안아 들고 노래를 흥얼거리던 친정아버지처럼, 팔불출이 내력인 딸과 그의 남편까지도 사랑하는 개를 향해 노래를 흥얼거린다.


내일은 강화도 부모님 댁에 활짝 핀 카네이션 한 다발을 사들고 부모님께 세레나데를 불러드려야겠다.

오랫동안 나에게 불러주셨을 그 사랑의 노래를 부모님께 려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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