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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케이 May 16. 2023

부모님께 베렝구어를 선물했다

평생 짊어져야 할 마음의 짐



친정부모님은 유난히 아이들을 예뻐하신다.

두 분 중 특히나 친정아빠의 아이들 사랑은 예전부터 유난하셨다.

3개월 터울로 태어난 두 조카의 육아를 전적으로 맡아주신 것은 친정엄마였지만, 엄마 못지않게 조카 둘에게서 두 눈과 손을 떼지 못했던 것은 친정아빠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 또한 연약하고 말랑한 천사 같은 생명력의 아이들에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선과 마음을 통째로 빼앗겼었다.

큰 움직임도 없는데 반짝이는 눈동자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쫓아가고, 운동신경이 발달하지 못한 손발이 버둥거리면 잘 감싸서 싸개로 감싸주고, 행여나 고개가 꺾이거나 불편해할까 노심초사하며 지켜보게 되었다.

나와 같이 조카들을 지켜보다가 불편해하는 둘째 조카를 안아 올리고는 아빠는 종종 그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막내딸도 이렇게 예쁜 아이 낳아서 키워봐야 하는데. 이것 봐라 얼마나 예쁘니"

그때 나는 딩크에 대한 확신이 완전히 굳어지기 전이라 아빠의 말씀은 미래의 손주를 상상하며 하신 너스레정도로 생각했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나의 아이를 상상하는 것 만으로 아빠의 눈은 꿀이라도 떨어뜨릴 것처럼 사랑에 가득 차 있었다.





얼마 전 친정집에 부모님을 뵈러 갔더니 거실 소파 위에 꼭 실제 아이처럼 생긴 인형이 앉아있었다. 물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정교해서 볼살을 누르면 탱탱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줄 것만 같았다.

자세히 보니 다름 아닌 베렝구어* 인형이다.

대략 8개월 정도 되었을 것 같은 실리콘 재질의 실물사이즈 인형인데, 너무 아이 같은 모습이라 흠칫 놀랐다.

"엄마, 이 인형 뭐예요? 설마 사신 거예요?"

"아빠가 자꾸 아기가 보고 싶다고 하셔서. 내가 찾다 보니까 이렇게 아기 같은 인형이 있더라. 실제로 받아보니까 더 아기 같아서 아빠가 인형을 자꾸 안고 있어"

엄마의 얘기를 듣는데 왜 그리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을까.


*베렝구어: 실리콘으로 실물과 흡사하게 만든 아기인형을 칭한다



십 년이 넘도록 아이를 갖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친정엄마는 딱 한번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자발적인지를 물으신 적이 있다.

혹여나 원하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라면 100일 기도를 드릴참이라며 나의 의사를 물으시는 거였다.

자발적으로 아이가 없는 삶을 원하는 거라고 엄마에게 단호하게 말씀드렸을 때, 새어 나온 엄마의 한숨소리가 기대한 대답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부모님은 나에게 아이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부모님의 그 마음 때문이었을까.

차마 나에게 부담이 될까 봐 아이를 갖는 게 어떻냐고 묻지 않으셨던 부모님이 아이와 꼭 닮은 인형을 사신 것을 보니 외면했던 죄책감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내 뜻을 존중한다던 부모님께 이보다 더한 불효가 있을까 싶어 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나와 남편의 뜻을 굽힐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이기적 이게도 부모님에게 손주를 안겨드리기 위해 우리 부부가 꿈꿔온 미래를 포기할 만큼 효자가 되지는 못한다.


친정집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 생각이 무거워져 머리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나의 죄책감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니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았다.

비닐랩을 잔뜩 둘러 감은 것처럼 갑갑한 정막의 공기를 뚫고 남편은 내 손을 지긋이 잡아주었다.

그 어떤 위로보다도 값진 무언의 메시지였다.


"오빠, 부모님께 인형을 하나 선물해 드려야겠어"

남편은 나의 죄책감을 덜아낼 미봉책이라도 찾아낸 것처럼 말하는 나의 결연한 말에 기다린 듯이 대답했다.

"그래. 그러자"

내게 아이가 있다면 딸일 같다던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여자인형을 주문했다.

너무나도 실물과 같은 인형을 주문하려니 마음이 자꾸 아려왔다.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나의 죄책감은 베렝구어 인형박스에 포장해 부모님께 보내졌다.

칠순 넘은 노인 둘이 마주 앉아 다이소에서 강아지 옷을 사다가 입히고 안아주며 느지막이 인형놀이에 빠지신 모습을 보니 나의 미봉책도 꾀 쓸만한 선택이었나 보다.

금발의 파란 눈을 한 인형의 투명한 눈동자만큼 오랜만에 부모님의 눈에도 반짝이는 생기가 더해졌다.


부모님께 선물한 아기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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