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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케이 Jun 16. 2023

달콤한 팥빙수가 생각난 산책 길

임대 현수막을 보고 떠오른 기억



일주일에 두세 번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아파트 단지에 있는 작은 공원과 이어져있는 낮은 둘레길을 걷고, 두 번은 크게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무인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한잔 하거나 동선에 있는 쇼핑몰을 들러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들고 오는 도심의 산책을 즐기곤 한다.


산책을 하다 보면 차로 이동할 때 보지 못했던 동네의 곳곳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집이 위치한 곳은 구도시에 속하는데, 아파트단지와 맞붙어 신도시가 들어선 후로 5년 전 아무것도 없던 택지는 이제 신축 상가건물과 아파트로 채워져 미래도시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변했다.


최근에 산책을 하다 보면 '매매' 혹은 '임대'라고 쓰인 현수막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된다. 점포업을 하게 된 후부터는 점포에 붙여진 임대현수막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더 유심히 보게 된다. 그전에 어떤 점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던 것으로 보면, 점주도 마음고생을 꽤나 했을게 뻔하다. 처음 가게를 임대하고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가고 집기를 들이며 하루하루 꿈에 부풀었을 이름 모를 점주가 폐업하여 원상복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고충이 컸을지 짐작만으로도 씁쓸해진다.


그 건물이 처음 지어질 3년 전 건설사는 대형쇼핑몰을 기획하고 홍보했었다. 1km 내에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입점이 확정되어 있는 시점이라 대형쇼핑몰에 입점할 점주가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래도 건설사의 계획대로 패션브랜드의 입점이 성사되었다면 동네 주민으로서 쇼핑의 폭이 넓어지니 환영할 일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2년 넘도록 공실로 유지되는 구좌가 많아지면서 건설사는 닥치는 대로 임대하거나 매매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병원, 학원, 식당이 혼재되어 있는 일반 상가건물이 되었다.


입주만 하면 곧 벼락부자가 될 것만 같은 시행사의 달콤한 유혹에 수많은 사람들이 상가를 매수하거나 임대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엄청난 대출을 해야 했을 테고, 누군가는 전 재산을 투자했을지 모를 일이다. 창업의 쓴맛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원금 회수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는 거액의 영끌을 했을지도 모른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복층의 카페의 1층을 원상 복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부에 연결되어 있는 계단을 철거하고 2층과 분리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곳은 동네에서 반려견 동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인데, 나이 지긋하신 여 사장님이 반려견을 친근하게 맞아주셨던 기억이 있어 어떤 사정인지 궁금해졌다.

가까이 가서 보니 1층 입구 옆 놓인 배너에 '2층은 정상영업합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세요'라고 쓰여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장사가 어려워져 1층 임대료가 부담스러워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점포업은 1층에 손님을 들이는데 들이는 3배의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야 2층에 손님을 올라오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카페는 복층이 아닌 이상 대게는 1층으로 점포를 정하게 된다. 그 카페는 출입구가 밖에 있는 1층을 포기하고 건물 내부에 출입구가 있는 2층으로 옮겨야 할 만큼 어려운 사정이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매번 카페를 찾을 때마다 테이블에 있는 손님은 우리가 유일하거나 한두 테이블이 더 있는 정도였던 게 기억났다. 코로나 시기에도 겨우 버티셨을 텐데 코로나의 두려움도 옅어진 지금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 그곳은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그로부터 몇년 후 프랜차이즈 간판을 떼고 개인카페로 바뀌더니 이제는 단층으로 규모를 축소한 것이다. 

카페 입구에 놓인 배너 앞에 서 있으니 종종 밖으로 나와 말을 걸어주시던 상녕한 사장님이 떠올랐다. 보리와 함께 나누어 먹으라며 주시던 수제 인절미와 손수 끓인 팥을 올린 빙수도 사장님 정성만큼이나 맛이 참 좋았다.


나처럼 그 카페의 사장님과 정성 들인 디저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동네에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에 가면 언제라도 달콤한 팥빙수를 맛볼 수 있기를, 가능하면 오랜 시간 사장님의 애정이 담긴 카페가 그곳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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