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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Jan 19. 2023

명절은 풍족한 법이다.

역시 명절이 최고다.

  날씨가 춥다. 몸이 움츠러든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에는 몸이고 마음이고 풍요로운 법이다. 가족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씩 주고, 나도 누나에게 선물을 하나 받았다. 내가 애용하는 갤럭시 탭 태블릿에 맞는 케이스다. 그전에 쓰던 케이스는 화면을 덮어주는 커버가 있는 커버형이었는데, 이 커버형이 실속은 좋지만 외관이 보이지 않아 조금 섭섭했었다. (물론 내가 고른 것이지만) 다른 케이스를 알아보던 중, 투명하고 마치 휴대폰 케이스같이 생긴 케이스를 발견한 지가 벌써 몇 달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냥 사기는 그렇고, 마침 내가 돈을 절약하고 저축하는 것을 연습하고 있었기에 그 연습의 성과를 보자는 마음으로 '한 달에 생활비와 필수 지출, 저축과 적금을 제외하고 30만 원을 남길 수 있으면 하나 사자' 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쉽게 될 리가 없었다. 돈은 왜 이리 쓰지도 않는데 들어오는 족족 나가는지. 예전에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 큰돈은 아끼기 어려우니 작은 돈을 아끼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과자도 끊고, 음료수도 다 끊고 살았다. (물론 갑자기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액상과당과 밀가루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한몫했다. 건강에 이리 안 좋은 식품들이었다니?) 마침 내가 자취하는 곳 주변에는 치킨이나 피자 같은 외식 집도 없기에, 돈을 충분히 아낄 수 있을 줄 알았었는데, 웬걸 이게 이리 어려운 줄은 몰랐다. 28만 원, 27만 원으로 아슬아슬하게 실패하기를 몇 달째. 이제는 그냥 포기하자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30만 원이나 28만 원이나 그게 그거지 하는 마음으로 포기할까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내 돈이고,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인데 30만 원이 있을 때 주나, 28만 원이 있을 때 주나, 그게 그거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스스로 정한 약속을 포기하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조금 불편하고 조금 덜 예쁘더라도 그냥 감수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케이스를 선물로 받은 것이다. 여느 케이스가 그렇든 대단한 기능이 있지는 않지만, 외관이 보호되면서도 훤히 들여다보이니 속이 다 시원한 것이다. 테두리는 조금 올라와 모서리를 보호하기에 적당하고, 펜을 따로 끼우는 홈도 있어 펜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는 것이, 뒤에는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거치대까지 달려있다. 이렇게 좋은 것을. 물론 내가 돈 모으기를 성공해서 산 것은 아니니 그런 성취감은 없으나, 이렇게라도 손에 넣으니 너무나 마음이 흡족하다.

  역시 명절은 풍족하게 지내야 한다, 하며 내 스스로의 마음에 위안을 삼게 된다. (어차피 보너스도 받았으니까... 그리고 사실 키보드도 중고로나마 하나 마련하지 않았나.) 여러모로 기쁜 명절이다.





  연말정산 철이 다가왔다. 연말정산은 늘 어렵다. 일 년에 두 번, 세 번만이라도 해보면 좋을 텐데. 일 년에 딱 한 번 뿐이니, 할 때마다 헷갈린다. 이걸 어떻게 하는 거더라, 감도 안 온다. 늘 행정실에서 친절하시게도 자료를 보내주시지만, 자료를 읽어도 뭘 알아야 보이는 법이다. 하나하나 보면서 따라 해야 하는데, 이걸 어쩌나, 자료를 쏙 빼두고 와버렸다. 분명 드라이브에도 넣고, USB에도 옮겨놨는데 감쪽같이 자료가 없어져 버렸다. 내 기억에는 분명 남아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행정실에 아쉬운 소리를 했다. 정말 죄송한데 자료를 두고 왔다고, 다시 한번만 설명해 주실 수 있겠냐, 고개를 조아렸다. 내 실수이니 마음이 아쉽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한 번만 더 잘 확인했으면 이럴 일이 없을 것인데. 다행히도 행정실에서는 친절히 일러주셨다. 차근차근 자료를 올리고,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올렸다.

  연말정산을 잘해야 어른이 되는 것일 텐데. 어른이 되는 것이 이리 어렵다. 자동차 보험도 어렵고, 부동산 계약도 어렵다. 이번에 아버지께서 타시던 차를 양도받는 과정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자동차를 등록하려니 보험이 있어야 하고, 보험을 가입하려니 차가 있어야 하고... 이런 어른의 일이 언제쯤 익숙해지려나. 나이는 먹었고 몸도 다 컸지만 아직 경험이 없다. 어른이 되려면 이런 것들을 잘해야 할 것인데... 걱정이 많다.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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