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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Feb 23. 2023

지난 일기

며칠간 살며 느낀 것

며칠간 조금 포근하더니, 다시 춥다.


오랜만에 학교에 나왔다. 겨울에 학교에 나와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는 것이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어색한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는 시험을 준비하며 1년씩 기간제로 학교에서 일을 했었기에, 1년이 지나면 짐을 싸 새로운 학교로 떠날 준비를 했던 탓이다. 늘 시험이 우선이었고, 새로운 학교를 구하는 것은 우선순위 밖이었기에, 지금쯤은 늘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일상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기간제 교사들은 대부분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 대학 졸업생이거나, 나이가 많아 은퇴하신 선생님들이기에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항상 일자리는 있었고, 내 자리도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고용에 대한 불안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고용시장에 일하는 계약직 노동자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늘 고용 불안에 잠을 설쳤다. 당장 내년이나 내후년의 고용이 아니라, 내가 늙었을 때도 시험에 붙지 못한다면 닥칠 불안에 미리 떨었다는 점이 차이가 있지만, 내가 있을 곳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모든 노동자들의 불안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생각한다.


이제 시험에 붙고, 한 학교에서 처음으로 두 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정해진 학년, 정해진 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학년이 정해지는 과정도 처음으로 지켜보게 되었고, 교실도 옮기게 되었다. 새로운 교실에 내 짐을 옮기고, 깔끔하게 청소를 하며 새 학기를 준비한다. 방학에 출근하여 내가 할 일을 하고, 이제는 조금 낯익은 동료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눈다. 어색한 한편 감사한 마음이 들고, 처음 교직에 발을 들였을 때 했던 다짐을 되새긴다. 학년이나 업무를 정하는 과정에서 조금 서운한 마음이 있었으나, 서운한 마음은 감사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래, 내가 있을 곳이 있다는 것이 어디며, 시험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어딘가. 한 곳에 몇 년이고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디냐. 업무가 힘들고, 학년이 힘들어도 언젠가는 할 일이다. 언젠가는 할 일이라면, 한 살이라도 젊고 조금이라도 기운이 더 많을 때 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생각하니, 처음엔 버겁게 느껴졌던 6학년도, 되레 기대가 된다.


당장 걱정이 없고 마음이 편하니, 모든 관계에서 스스로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니, 편안한 사람이 된 것 같이 느껴진다. 편안한 사람이 되니,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온다. 지금까지는 늘 자괴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실제로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그전에도 굉장히 매력적인 성품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으나, 이렇듯 모두가 어렵게 대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사람을 싫어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우습게 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남들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했다는 열등감이 나를 항상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늘 나를 입에 올렸다. 여자친구는 항상 나와 헤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듣고, 가슴 아파하곤 했다. 사람들은 나를 사람 구실하지 못하는 사람같이 여겼다. 당장 내가 생계가 곤란하지 않음에도, 내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름에도, 사람들은 나를 쉽게 평가하곤 했다. 그런 평가를 전해 들은 날은 분노로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마음에 화가 가득 차올랐다. 남을 쉽게 평가하며 자존감을 채우곤 하는 그 사람들에 대해서, 그런 평가가 일상화된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 대해서.


이제 무언가를 이루니, 마음이 단단해진다.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남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시련이 아니라 극복이다. 시련은 사람을 다치게 만든다. 운동으로 다친 근육이 회복되지 못하면 그저 상처에 그치는 것이다. 다친 것은 회복되어야 더욱 강해진다. 극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일에 대해 잊을 수도, 다른 일을 찾을 수도, 이뤄낼 수도. 뭐가 되었든 극복하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나는 나를 괴롭히던 문제를 극복했다. 그리고, 조금 더 강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새롭게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으나, 연고가 불분명한 탓에 헬스장에 등록하기가 늘 꺼려졌었는데, 새해가 되었으니 마음을 다잡고 1년 치를 등록해 버렸다. 막상 저질러놓고 나니, 진작할걸 그랬다 싶다. 운동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 헬스장 만한 곳이 없다. 직원들은 모두 친절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무엇보다 운동복을 공짜로 빌려주는데, 운동복이니 장비를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좋다. 좋은 기구도 많고, 해보고 싶었던 기구도 많아 재밌게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을 가면 적당히 하지를 못한다. 더 욕심을 내고, 더 많이 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여지없이 근육통에 시달린다. 운동은 건강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 항상 아프다. 온몸의 근육이 다 끊어지는 것처럼 아프다. 여자친구는 나에게 종종 이렇게 묻는다. 왜 항상 아파? 그러게, 지금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건강하려고 하는 운동인데. 오늘은 다리가, 내일은 등이, 모레는 가슴이. 또 다리가. 반복이다.


언젠가는 이 아픔이 많이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과, 나는 더 이상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그저 운동하는 것이 즐거워서 하는 것이구나, 취미가 이런 것이구나.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관절이 아파 병원에 가서 뛰지 말라는 소리를 들어도 몰래 달리기를 하러 나간다고 한다. 어릴 때는 이런 말을 들으면 의아함이 먼저 들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래, 그 사람에게는 달리기가 그저 단순한 달리기가 아니었구나.


세상을 살아보니 매일매일 배우는 것이 많다. 막연하게 느꼈던 것을 실체로 접하게 되니, 마음 같지 않다. 그러니 더욱 남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면 생각이 바뀌는 것 투성이구나. 내가 운동에 중독된 것처럼.




운전도 마찬가지다. 요즘 운전을 하고 이곳저곳을 즐겁게 돌아다녀 보니, 세상에는 참 이상한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혹자가 말하는 것처럼, '운전면허를 빼앗아야 하는' 방식으로 운전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급제동에 놀란 경우는 예사다. 방향 지시등은 왜 달려있는지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고, 끼어들기나 차선 변경도 분명 운전면허 시험에 출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자신만의 방법으로 하는 분들도 많다. 차로를 바꿀 때 절대 끼워주지 않겠다며 이상한 자존심을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그런 사람들을 언젠가 이해하게 될까?


차 안에서 화를 내고 욕을 하면 듣는 것은 나뿐이다. 욕을 하게 만든 사람은 이미 가버리고 없는데, 욕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 욕을 하기보다 용서하자. 용서하며, 스스로를 지키는 방어운전을 익히자. 다짐하고 한 달 만에 운전이 능숙해졌다. 그래, 늘 용서하며 살자. 어차피 욕을 듣는 것은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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