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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락방 Mar 07. 2024

기숙중학교에 입학하다

왜냐고 물으니 "걍"

  

떠나기 며칠 전부터 아이 표정에서 불안을 감지했다. 결국 입 밖으로 “괜히”라는 말이 나왔다. 아이는 지척에 있는 중학교를 놔두고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기숙중학교에 곧 입학한다. 기숙사 입소 날이 다가오니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밀려오는 모양이다. 친구들이 다 여기 있는데, 학원 다니는 것도 너무 재미있는데 등등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나에게 전한다. 엄마의 제안으로 입학설명회에 갔고 큰 기대 없이 면접을 봤고 아이는 덜컥 합격했다. 입학설명회에 아이를 데려간 것은 나의 의지였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준비하는 것은 오롯이 아이 몫이었다. 합격했다는 말을 전했을 때 떨리던 아이의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엄마 진짜야 엄마 정말이야 묻고 또 물었다. 아이가 가고 싶은 학교였고 내가 보내고 싶은 학교였다. 합격의 기쁨은 이미 과거가 되었다. 입학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에게 내려가기 전에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니 오늘 밤 다 같이 자고 싶다고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용기를 다 찾아내어 아이의 마음과 몸에 한 움큼씩 쥐여주고 싶었다.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연 아이가 자신만의 속도로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세요.

    

다음날 아이는 먹고 싶은 음식이 많다며 투덜거림으로 아침을 열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괜히 짠한 마음이 올라왔다. 먹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가서 배고파하면 어쩌나, 밥 더 먹고 싶은데 더 달라는 말도 못 하면 어쩌나 온갖 상념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자. 벌써 이러면 안 돼. 기숙사에서 필요한 짐을 챙기며 부산하게 움직였더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이제 곧 집을 떠날 시간이다. 아이는 홀로 남은 동생에게 “브로 잘 지내”라며 쿨한 척하더니 다시 돌아서서 동생을 안아준다. 그리고 우리 집 막내 쭈니(강아지)에게 다가가 “형아 올 때까지 잘 지내, 네가 제일 보고 싶을 거야”라며 진하게 뽀뽀를 한다. 이별을 아는지 모르는지 쭈니는 형아 품 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친다. 이별이 성큼 곁으로 다가왔다.


차를 타고 내려가는 내내 아이를 살핀다. 기분은 어떤지,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은 없는지. 마음이 심란해서인지 점심은 아무거나 먹자고 한다. 아무거나 라는 말에 엄마는 또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아이의 슬픔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진짜 이별이다. 학교가 저기 코앞에 있다. 아이에게 당부를 한다. 잘 지내고 있어. 다섯 밤은 금방 지나가. 처음이라 모든 게 어색할 거야. 친구와 잘 지내 등등 아이 귀에 들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아무 말도 안 하면 눈물이 날까 봐 쉼 없이 떠들었다. 남편이 이제 기숙사로 들어가자는 말에 또 마음이 일렁인다. 기숙사 앞은 학교 관계자와 입소하는 아이 그리고 학부모로 분주하다. 분주한 분위기 덕에 나의 눈물도 어디론가 달아난 기분이다. 배정된 방에 아이의 짐을 옮겨주고 인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아이를 와락 안으며 “잘 지내 사랑해”라는 말을 건넸다. 아이는 “나도”라고 답하더니 기숙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분명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으리라.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급하게 뛰어 들어간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잘 지내 내 사랑.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말한다. 내가 안 울어서 놀랐다며. 억지로 참은 거냐고 묻는다. 아이가 울까 봐 참았다고 하니 남편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나보다 남편하고 사이가 더 좋았던 아이다. 남편이 속으로 펑펑 울고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전화기에서 불이 난다. 양가 할머니들이 불안한지 아이는 잘 들어갔냐며 벌써 보고 싶다며 펑펑 운다. 어린것을 보냈다며 왜 그렇게 멀리 보냈냐며 울음소리가 나에게 전해진다. 참았던 눈물이 동조자가 있으니 쉴 새 없이 흐른다. 양가 어머니를 달래느라 정신이 혼미하다.


늦은 밤 집에 도착하자 아이에게 연락이 왔다. 외롭단다. 한 방에는 네 명이 사용하는데 외롭다고. 가족이 보고 싶어서겠지. 낯설어서 그런 거야. 첫날은 원래 그런 거라고 답한다. 이어 힘들다는 말이 돌아왔다. 뭐가 힘드냐고 물으니 “걍”이라는 답이 왔다. 걍이라니 그냥이라고? 그냥이 주는 말의 힘이 크다. 어떤 마음인지 너무나 잘 와닿았다. 아이가 툭 던진 말에 또 한 번 마음이 서글퍼진다. 엄마 아빠가 많이 사랑한다는 답으로 아이를 위로해 본다. 아이 없는 첫날밤 쉬이 잠들지 못했다. 낯선 잠자리에서 뒤척일 아이 생각에 밤이 더디게 흐른다.

      

3월 4일 드디어 개학이다. 둘째 아이를 깨우고 아침을 준비하는 데 뭔가 어색하다. 내 집인데 내 집이 아닌 것 같은 기분. 첫째 아이 방을 둘러봐도 휑하고 빨래 바구니마저 휑하다. 아침이면 정수기 옆에 두 개의 컵이 나란히 나와 있었는데 오늘은 컵이 하나뿐이다. 아이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아이 둘을 키우며 몰랐던 어색한 일상과 마주한다. 아이도 나도 낯선 세상에 적응하는 중이다. 우리 같이 잘 견뎌보자. 너에 대한 그리움으로 엄마는 하루를 채운다. 누구보다 너를 응원하며 금요일을 기다리고 있을게. 너도 잘 이겨내죠. 엄마 아빠 동생 쭈니 없는 일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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