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건강하세요
엄마가 쓰러지셨다고 전화가 왔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코로나 확진이라고 했다. 벌써 두 번째 감염이었다. 처음 걸렸을 때 엄마는 이게 코로나인지도 모르겠다며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실제로 가벼운 감기 증상만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매일 출근하던 경로당에 멀쩡하게 걸어갔는데 집으로 오려고 일어서는 순간 쓰러졌다고 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고 엄마는 그 후로는 기억이 없다고 했다. 집으로 동네 할머니들이 찾아왔고 오빠가 엄마를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고 했다. 시골 병원에는 코로나가 확진돼도 입원을 안 시켜 준다고 약만 타왔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가 너무 기력이 없는 데다 열이 너무 높아서 걱정된다는 오빠의 전화를 받고 멀리 떨어져 사는 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지금 당장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내가 지탱하고 있는 가정을 잠시 옆으로 밀어 두고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당장 아이들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이들 학교며 밥이며 학원 라이드며... 갈 수 없으니 애만 탄다. 119에 전화해 지금 당장 입원이 가능한 병원 리스트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친정집에서 가까운 대도시의 응급실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오빠에게도 메시지를 전달하고 혹시 엄마 상태가 많이 안 좋으면 응급실에 꼭 가라는 말도 했다. 전화기 너머 엄마 목소리는 이미 내가 알던 엄마 목소리가 아니었다. 지난번처럼 또 아무 걱정 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도 기력이 소진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이래서 부모 곁에 사는 자식이 효자라는 말이 나오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늦은 밤 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는 약을 먹은 후 잠드셨고 다행히 열이 조금은 내렸다고.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엄마 목소리는 괜찮지 않았다. 울먹이며 전화를 걸었더니 엄마는 괜찮다며 울지 말라며 나를 위로했다. 당신이 아파죽겠는데 우는 딸을 걱정하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화뿐이었다. 상태는 어떤지 지금 필요한 것은 없는지... 현재의 엄마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무용의 것들이었다.
엄마는 한참 동안 아파했다. 코로나를 이겨냈지만, 엄마는 기력을 잃었다. 입맛도 잃었다. 밥을 먹으면 속이 쓰리다고 해서 계속 죽만 먹는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영양죽과 환자용 기력 회복 음식을 주문해서 보내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근 한 달 만에 엄마 목소리는 돌아왔고 김장철이 다가왔다. 올해는 김장하지 말고 그냥 사서 먹자고 했지만, 엄마는 그럴 수는 없다며 김장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몸으로 김장을 못 한다고 말려도 엄마는 너는 오든 말든 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 말인즉슨 엄마는 김장을 하고야 말겠다는 것이었다. 알았다고 그럼 내가 새벽에 일찍 갈 테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기다리라고 했다. 새벽 4시에 출발해 친정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와락 안아주었다. 엄마의 핼쑥한 얼굴에 깊어진 주름을 보니 누가 봐도 병자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거실을 보니 김장할 재료가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절인 배추에 양념까지. 내가 할 일은 절인 배추에 양념을 치대는 일뿐이었다. 이걸 누가 다 했냐고 하니 아빠가 했다고 했다. 아빠가 요즘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집안일을 다 한다고 했다. 엄마가 아프니 아빠가 변했다고 하며 슬며시 칭찬하자 아빠는 자리를 피했다.
다음날 새벽 무렵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엄마는 내 곁에서 자고 있는데 누가 이 시간에 주방에 있을까 싶어 주방으로 향했다. 아빠였다. 밥을 안치고 손자가 좋아하는 육개장 재료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모든 준비를 아빠가 해놓으면 엄마가 국을 끓인다고 했다며. 아빠가 고마웠다. 재료 손질을 마친 아빠가 방이 아닌 밖으로 나가길래 또 담배 한 대 피우러 가냐고 핀잔을 주었다. 아빠가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 한마디 했다. 깊은 한숨을 쉬며 내가 요즘 이거라도 안 피면 살 수가 없다고... 그 말에 더는 아빠에게 담배 그만 피우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담배가 고맙게 느껴졌다. 나는 엄마의 레시피를 떠올려 육개장을 끓였고 아침밥 준비가 끝날 무렵 엄마가 주방으로 왔다. 이거 아빠가 다 준비해 둔 재료로 나는 끓이기만 했다고 하니 아빠가 이번에 많이 놀란 것 같다고 엄마가 어떻게 될까 봐 진짜 걱정했다고 했다. 사십칠 년을 함께 산 부부의 애잔함이 느껴졌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산 지난 세월을 내가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길고 긴 세월 엄마 아빠 인생의 우여곡절을 나는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아빠가 아침을 드시러 방 안으로 들어오자 익숙한 담배 냄새가 났다. 늘 하던 담배 좀 끊으라는 잔소리 대신 “아빠 식사하세요.”라는 말로 아빠를 맞았다. 늘 코를 찌르던 담배 냄새와 달리 그날 담배 냄새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있었다.
아빠 담배 좀 끊으세요!!라는 말은 다음으로 미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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