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사춘기지? 난 갱년기다!!
엄친아. 엄마 친구 아들과 비교당하는 아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올해로 육아 13년 차에 접어들었고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며 한 번도 남과 비교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늘에 맹세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 생각은 묻지 않았기에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일단 그 집은 그 집이고 우리 집은 우리 집이기에 비교하며 살지 말자는 게 나만의 철학이다. 그런 나에게 요즘 아들 둘이 맹공을 해온다.
이른바 친엄마 타령이다. 친엄마=친구 엄마는 게임을 무제한으로 풀어준대. 근데 무제한으로 게임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별로 안 하게 되더래. 우리 집도 한 번 무제한 게임 하기 해보면 안 될까? 너의 속셈이 뻔히 드러나는 질문을 너는 태연하게 하더구나. 그 친구 학원 몇 개 다녀? 영어, 수학, 과학, 국어. 그런데 토요일도 학원 간대. 몇 살 때부터 다녔대? 그건 안 물어봤지만 지금 고등학교 수학한대. 젤리야!! 그건 학원을 너무 많이 다녀 게임할 시간이 없어서 못 하는 것뿐이야. 너는 이제 수학학원 다닌 지 3개월 됐어. 5학년인 친구가 고등수학을 한다니 살짝 부럽다는 말도 전한다. 젤리야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야.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어. 대신 넌 세상을 많이 경험했잖아. 그래도 그 친엄마가 부러우면 그 집 아들 할래? 젤리는 말이 없다.
어떤 친엄마(친구 엄마)는 핸드폰도 마음대로 쓰게 해 준대. 나만 인터넷 못하더라. 셔틀버스 안에서 다 핸드폰 하는데 나만 창밖을 보고 있어. 콩이야!! 결국 게임 이야기잖아. 본론만 이야기해. 친구들이 게임하는 게 부럽다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나도 무제한으로 유튜브도 보고 게임도 하고 싶다고. 너랑 젤리랑 다른 집 가서 살래?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게임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끝이 없다. 내 평생 살다가 아들한테 게임 때문에 친엄마와 비교당하며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연년생을 키우며 한 번도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를 맡겨 본 일이 없다. 물론 거리상 여건상 불가능한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오롯이 남편과 둘이 함께 아이들을 키웠다. 물론 양육은 부모의 몫이기에 당연한 걸 알았지만 가끔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었다. 연년생을 키우며 전업주부의 삶을 시작했고 뽀로로를 시작으로 폴리, 카봇 등 만화에 시선을 고정하는 아이들을 보며 중대한 결심을 했다.
첫째 아이가 4살 무렵이었다. 콩이야 젤리야 우리 집에 이제 티브이가 사라질 거야. 무서운 아저씨가 티브이를 가져가기로 했어. 며칠 뒤 어떤 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왔고 아이들은 내 뒤에 숨어서 티브이가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요즘 중고물품거래는 당근이 대세이지만 당시는 인터넷 중고나라가 유명했다. 신혼 때 장만해 온 티브이를 급하게 팔았다. 다행히 남자분이 오셨고 아이들은 진짜 무서운 아저씨가 티브이를 뺏어갔다고 믿었다.
사실 티브이를 판 진짜 이유는 아이들보다 내가 티브이에 더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사 준비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 아이들의 부름에 응답할 여력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리모컨부터 찾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원하든 안 하든 티브이를 켜놓았다. 결국 아이들을 티브이 중독에 빠뜨린 건 나였다. 나의 필요에 의해 시작과 끝을 내버리니 아이들은 화면이 사라지면 울거나 화를 내기 시작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사라져야 할 물건이 티브이였음이 분명했다. 티브이가 사라지니 거짓말처럼 아이들은 책을 보기 시작했고 거실 한쪽에 있는 커다란 책장에 책으로 빼곡히 채우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려 글자를 읽을 줄 모르기에 늘 읽어주는 사람은 아빠와 엄마뿐이었다. 아이들이 일곱 살 무렵까지 잠들기 전 함께 누워서 책을 읽어주었던 것 같다.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수백 번은 더 읽어준 것 같다. 나중에는 글을 모르던 첫째 아이가 동생에게 책장을 넘기며 구연동화를 해주는 모습을 보고 어찌나 뿌듯하던지. 신기하게도 아이마다 좋아하는 책이 꼭 한두 권은 있어서 읽고 싶은 책 가져오라고 하면 늘 같은 책을 꺼내왔다. 그거 말고 다른 거 가지고 오라고 하면 그 책과 다른 책 두 권을 읽어 달라고 했다. 티브이를 없애니 자연스럽게 책을 놀잇감처럼 여기게 되었고 책으로 집도 짓고 읽기도 하고 책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가까우면 친해지게 마련이다.
육아를 하면서 나름의 규칙을 세웠다. 유튜브 보여주지 않기, 게임 시간 정하기, 티브이 시청 시간 정하기. 아이들이 커갈수록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지키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 하지만 삼 년 전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면서 다시 티브이를 사고 말았다. 축구를 사랑하는 남편 때문이었다. 누가 그랬다. 티브이는 거거익선이라고. 한쪽 벽을 가득 채울 만큼 큰 티브이를 샀고 여전히 거실이 아닌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거실에는 십 년 지난 원목책장이 장승처럼 우리 집을 지키고 있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아직 내가 정한 양육 정책을 따라주고 있다. 독재자인 엄마에게 대항하기 위해 언젠가는 파업도 하고 바리케이드도 치겠지만 이 또한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이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잘 참아주고 이해해 준 아들들아!! 친엄마(친구 엄마) 말고 너희 엄마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 줄래? 비교하는 삶 말고 온전한 너만의 인생을 살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선 넘지 마라!! 너희는 사춘기지? 난 갱년기에 개춘기 막내 쭈니도 있다!! 으르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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