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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재이 Dec 04. 2023

ep0. 갑자기 조직문화 담당자가 되었다.

재이야 너 발령 났어!

  겨울이 코 끝에 걸려 촉촉해질 때, 생각지도 못한 발령이 났다. 20살 광고학도로 입학하여 10년이 넘는 지금까지 마케팅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나, 그런 나에게 조직문화란 알고리즘에 전혀 없던 일이었다. 고인 물이 되지 말라는 회사의 큰 뜻이라나? 적응하고 익숙해질 때쯤 순환 발령을 내는 게 우리 회사였다. 하지만, 마케팅 안에서의 직무 이동도 아니고 조직문화라니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당황스러운 만큼 더 황당하기 매한가지인 건 팀장님과 팀원들이었을 것이다. 회사생활을 하며 들어보기만 했지 다들 무엇을 하는 부서인 지도 잘 몰랐기에 애매한 축하가 돌아왔다. "축하해, 거기 근데 뭐 하는 부서인데?"


  '여태껏 회사라면 나를 뽑을 수밖에 없다'는 오만한 생각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가 있었다. 먼저, 전공도 광고학과 통계학이라는 정성과 정량의 끝에 있는 학문을 선택했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전공이 제법 잘 맞았다. 두 학문은 완전히 다른 방식의 학습이 필요했고 완벽히 달랐기에, 취업 준비를 할 때에도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이 많았다. 마케팅부터 IT까지 꽤나 넓은 범위의 카드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만지작 거렸다. 하지만, 마케팅에 대한 나의 꿈을 버리지 못했고, 회사 취업 이후 넓은 범위의 마케터로서의 경험을 했다. 프로모션 기획, 온/오프라인 이벤트, 광고/커뮤니케이션, App 회원 모집, 멤버십 활성화 등. 


  수없이 뻗어 갈라지는 여정 속, 조직문화는 그 어디에도 단 한순간도 없었다. 그러다 한편으로는 다른 설렘이 피어올랐다. '조직문화라니 제법 멋있잖아?' 더러는 철없는 생각과 함께. 내가 원해서 해당 직무를 맡게 됐는가? 나의 의지가 섞이지 않은 인사이동인만큼 돌이켜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승리였다. 대학생 때,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선택을 하고 싶다에서 출발해 데이터를 공부해야겠다로 매듭지어 복수전공에 뛰어들었고 인생에서 잘한 선택이 되었다. 이번 결정은 자의가 아닌 온전히 타의에 의해서지만, 그때만큼 나에게도 크고 값진 경험이 되고 인생에서 잘 정해진 선택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한 번 살아가는 인생인데, 맨날 똑같고 익숙한 것 하는 것보다 힘들어도 새로운 거 해봐야지라는. 그리고, 이 이색적인 경험이 나의 인생에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그렇게 발령 온 나는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또 한 번의 밀도 있는 성장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상반기부터 유형의 무언가를 만들어낸 하반기까지 길디 긴 매콤한 1년이었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위안 삼기에 나는 발령 오자마자 5년 차 대리로서 비추어지고 있었고, 마케터로 성장하며 제법 단단해졌던 내가 여러 가지 사고와 스킬을 결합해 가며 새로운 시각에서 무언가를 빠르게 해내고 다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 이면에는 초반부에 많은 고통이 수반되었는데, 이 조직에 발령 나고 극복을 위해 조직문화와 관련된 책과 에세이부터 섭렵했다. 무엇이든 책에 답이 있다는 개인적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인사 직무의 입장에서 쓰인 글이 많았고 조직문화라는 직무가 이제야 꽃 피우기 시작해서 그런지 참고할 만한 자료가 많지는 않았다. 


  회사에서의 나의 전공은 마케팅 아닌가?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어떻게 더 쉽고 직관적으로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의 이러한 장점을 살려 조직문화에 대해 마케터의 관점과 사고를 담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업력이 짧기 때문에 이 책이 바이블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조직문화 직무를 갑자기 맡게 된 분부터 애초에 시작을 조직문화 직무로 입사한 분까지 이 책을 발판 삼아 빠르게 회사에 적응했으면 좋겠다. 원래 왕초보는 초보가 가장 잘 가르친다고 하지 않는가! 나처럼 왕초보의 늪에서 헤매지 않았으면 좋겠다.


1년 전, 우왕좌왕하던 나를 회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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