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안 Dyan May 28. 2024

꿈은 파도처럼

2024. 04. 27.

엄마 허리만치도 안되던 꼬맹이 시절,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보던 텔레비전에서 앙드레김의 패션쇼를 봤다. 그리고선 나는 패션디자이너가 되겠다며 한동안 장래희망에는 디자이너를 쓰고, 스케치북엔 뾰족구두를 신은 디자이너를 그렸다.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떠났던 열네 살에는 고풍스러운 유럽의 건축물과 분위기에 반해 건축가가 돼 볼까 싶었다. 그러다 내 동생 같던 강아지 로키를 사랑한 나머지, 내 꿈은 꽤 오랜 시간을 수의사로 정착하게 됐다. 그렇게 일 년에도 몇 번씩 변하기도 했던 ‘꿈’이라는 것이 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의 속도에 맞춰 뛰며 살다 보니, 어느샌가 ‘꿈’은 그 자취를 감췄더라.


그대의 어린 시절 상처에서 피어오른 그 꿈의 장소, 포르투갈의 나자레. 그곳이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어릴 때는 ‘될 수 있다, 없다’와 무관하게 무엇이든 꿈꿨다. 하지만 세상을 알아버린 꼬맹이는 이제 목표와 꿈의 경계가 흐려졌다. 내 목표가 내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그 질문에 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작은 목표에도 계산기를 두드렸고, 숫자로 보일 수 있는 것을 내 꿈이라 여겼다. 마음속의 빛인 꿈을 건방지게 숫자로 표현하려 했다. 아니, 현실의 빛을 찾기 위해 꿈을 숫자로 꾸기 시작했다. 그렇게 꿈에 고민과 의지를 담기보다는, 편리와 욕망을 채워 넣는 어른이 됐다. 꿈의 존재는 점점 차갑고 딱딱해져만 갔다.


그대는 파도를 보러 가는 버스에서부터 설렌다 말했다. 파도를 마주하기 전, 빠르게 뛰는 심장에 파트너의 손을 얹어 그대의 설렘을 알렸다. 나는 무언가에 저토록 설레본 적이 최근에 있던가. 생각만 해도 신나고 짜릿한 내 꿈이란 것이 있던가. 저렇게 오랜 시간을 간직한 소중한 꿈이 있던가. 최근에 돈이나 재산이 아닌 무언가를 내 목표로 삼았던 적이 있던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답은 하나였다. “없다.” 그대가 꿈에 그리던 세상에서 가장 높은 파도를 만난 모습을 보면서, 가슴속의 꿈의 불씨가 꺼져가는 30대에게는 반성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대가 상처받고 힘들었을 때, 그대를 위로하고 감싸 안아주던 것은 파도였다고 했다. 파도를 타며 그대가 느꼈을 감정과 마음을 나는 추정할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파도를 향해 그대가 품었을 마음도 그려볼 수 없다. 파도는 어쩌면 그대에게 위로였을 것이고, 어쩌면 하나의 도전이자 꿈이었지도 모른다. 어떤 형태의 감정이 모여 그대의 꿈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대의 꿈이 빛을 잃지 않았기에, 오늘 세상에서 가장 높은 파도가 그대를 깊숙이 감싸 안았다. 나자레의 파도는 그대에게 가장 크고 따뜻한 품이 되어, 꿈을 안고 달려온 그대를 반겼다.


그대의 꿈이 파도처럼 영원하길 바란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그대의 꿈들이 그대에게 밀려와 닿길 바란다. 

그대의 순수한 마음속에서 자라난 모든 꿈이 빛을 잃지 않길 바라.




https://youtu.be/Uze-gmDj1O4?si=atcuMUWwZLtEsXJK

팬이라서가 아니라, 풍경도 스토리도 참 좋은 영상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날의 산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