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세계를 향한 빛을 밝혀줘, 루모스!

by 다이안 Dyan

‘나의 생활도, 전문성도 떠돌게 만드는 산림·조경·원예는 다시는 되돌아보지 않을 것이다!’를 호기롭게 속으로 외치며, 내 전공의 문을 박차고 나왔다. 하지만 강하게 열어젖힌 문이 닫히기 전에 다시 쏙 들어가야 했다. 호기롭던 내 마음가짐을 꺾은 것은 두려움이었다. 전공이 다르다는 것은 다른 경쟁자들과 4년 치의 시간과 노력의 격차가 생겼다는 의미가 있다. 내가 지금 도전해서 이 격차를 줄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전의 취업 준비처럼 전공에 대한 열정과 꿈을 갖고 시작하지 않아서였을까. 다시 도전하는 취업시장은 녹록지 않았다. 전공을 감히 등지려 했다는 벌을 주기라도 하는 듯, ‘최종 합격’이라는 네 글자는 잡힐 듯 말듯 애만 태우곤 했다. 같이 면접을 본 지원자가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세요?”, “면접관님이 계속 흐뭇하게 바라보시던데, 합격은 따놓으신 것 같네요.”라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내가 간절히 바란 네 글자는 미꾸라지처럼 내 손을 빠져나갔다.


닿을 듯 말 듯한 최종 합격의 신기루만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자아는 메말라갔다. 면접 때면 꺼내쓰던 자신감은 쪼글쪼글해졌다. 바닷물이라도 퍼마시고 싶은 갈증처럼, 계약직이라도 얻어내서 지금 당장 고통을 끊어내고 싶었다. 메마른 자아를 더 이상 유지할 기력조차 없어지니,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서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마법 세계로 떠나는 기차에 오르는 마법 학교 학생들의 틈바구니에 내 야윈 자아를 밀어 넣었다. 해리포터와 그 세계로 향하는 시작에는 일시 정지가 없다. ‘마법사의 돌’로 그 세계의 문을 열면, ‘죽음의 성물 2부’의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나를 마법 세계에 가둔다. 신비와 주문, 저주와 사연이 가득한 화면을 집중해서 보고 있노라면 현실 감각이 점점 흐려진다.


프리빗가 4번지에서 가로등 불빛을 딜루미네이터에 모아 담는 덤블도어의 모습으로 마법 세계에 발을 들인다. 가로등 불빛이 하나, 둘 딜루미네이터로 빨려 들어가면, 내 머릿속 걱정과 불안도 영화 속에 하나 둘 씩 빨려 들어가 사라진다. 근심과 그늘로 올라올 줄 모르던 나의 입꼬리는 해그리드가 만든 삐뚤삐뚤한 케이크에 피식하고 올라간다. 이집트에서 사 온 사탕을 먹더니 사자처럼 포효하듯 말하는 론을 보면서 같이 낄낄거린다. 타임터너를 돌리며 수업을 빼곡히 듣는 헤르미온느를 보면, ‘나도 다시 취업하면 내 시간을 더 알차게 써야지.’라는 작년 크리스마스의 다짐을 다시 반복한다. 마침내 해리가 대부인 시리우스를 만나 세상에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장면에서는 뭉클함에 안고 있던 인형을 한 번 꽈악 끌어안게 된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퀴디치 장면은 답답하던 가슴을 뻥 뚫어준다. 해리를 안전하게 이동시키기 위해 불사조 기사단이 빗자루를 타고, 히포그리프와 세스트랄을 타고 상공으로 도약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그들의 뜨거운 의지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풍문, 외로움과 싸우는 해리를 볼 때면 같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힘들수록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생각에 자신을 고립시키는 모습을 보면,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를 보듯이 화면을 보는 눈으로 말하곤 한다. “아니야, 그러지 마. 헤르미온느랑 론 마저 멀리하지 마. 자신을 더 외롭게 하지 마.” 유일한 가족인 대부 시리우스를 자신이 본 환상 때문에 잃고 무너지는 해리를 보면 꾹꾹 다져 눌러 놓았던 내 감정도 함께 눈물로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눈물로 해리에게 위로를 전한다. “너의 탓이 아니야. 자책하지 마.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네 탓이 아니야.” 해리를 지키려 순간이동 중 대신 칼에 맞은 도비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늘 눈물을 참지 못한다.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 한 그 작은 몸을 보면, 강아지별로 간 내 작은 털 뭉치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널브러진 내게 찾아와 옆에 그 따뜻한 몸을 비비적 누이고, 눈치 없이 안아달라 보채던 그 작은 털 뭉치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다시 티슈로 꾹꾹 눌러 넣는다.


마법 세계라는 큰 욕조에 내 몸을 담근 채 스물다섯 시간의 긴 시간을 보내고선 몸을 일으킨다. 내 메마른 자아는 그 욕조에서 스펀지처럼 활기를 흡수하고선, 제법 통통하고 촉촉해졌다. 눌리고 눌려 딱딱해진 감정은 웃고 울고를 반복하며 포슬포슬해졌다. 그렇게 포슬포슬해진 틈새로 주변의 감정과 기운을 받을 준비를 마쳤다. 비현실의 세계와 함께하는 동안 계속되는 불합격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엄청난 교훈과 삶의 방향을 찾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찾은 것은 나를 돌보는 방법이었다. 나의 정신과 마음이 끊임없이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기보다는, 때로는 괴로움을 피해 쉴 틈을 주는 것이 무수한 불합격을 이겨냈던 나만의 방법이었다.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현실의 세계를 살아는 지금, 언젠가 다시 내 마음에 어둠이 찾아오면 다시 나를 밝힐 주문을 이제는 알고 있다.

“루모스!”

주문과 함께 켜지는 불빛 뒤에는 내가 뛰어들 환상의 세계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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