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카 폴리라는 아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소방차인 '로이'였다. 아니 왜 장래희망이 '사람'이 아닌 '사물'인 걸까? 하며 걱정도 했었지만 그래도 순수한 아이의 생각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와! 정말 멋진 꿈이다. 왜 소방차가 되고 싶은 거야?"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고 싶어요!"
"정말 멋지고 기특하네 우리 아들. 엄마가 옆에서 도와줄게."
"네! 일단 '로이'가 필요해요."
그렇게 이야기하며 칭찬과 갖고 싶던 장난감을 선물을 모두 챙길 줄 아는 녀석이었다. 동생들도 오빠의 영향을 받아서 동일 애니메이션에서 엠뷸런스차였던 '엠버'가 꿈이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꿈은 좀 더 현실적으로 선명해졌다. 현재 3학년인 아이는 로봇과학자가 꿈이다. 나노 블록으로좋아하는 만화캐릭터도 만들고 남는 여분 블록으로는 자신의 상상 속 로봇이나 공룡을 만들기를 즐겨하던 아이에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꿈이었다. 아이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 어렸을 적 내가 꿈꾸던 장래희망이 생각난다.
88 올림픽 호돌이 세대인 나는, 과학의 '과'자도 모르던 꼬마아이일 적인 93년도에 꿈돌이 세대의 영향을 받아 과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어렸을 때는 그저 하얀 가운을 입고 뭔가에 몰두하는 과학자의 모습이 멋진 어른 같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다들 한 번쯤은 '나의 장래희망'에 대해 그림이나 글을 써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아이들의 꿈이 걸그룹, 유튜버, 작곡가, 피겨스케이팅 선수 등 굉장히 다양하지만 당시 내 또래의 아이들의 꿈은 사전에 찾으면 금방 나올 법한 대통령, 의사, 변호사, 요리사등 마치 지정되어 있듯 비슷한 꿈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도 나의 꿈은 과학자였다.
내가 6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에서 타임캡슐이라는 것을 했었다. 내가 10년 후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고 그것을 모아 학교 운동장에 묻고 10년 후에 다시 만나자라는 취지의 학교 행사였다. 그때도 나는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을 나에게 편지를 썼고 그렇게 우리 학교 운동장에 편지를 묻으며 나의 꿈도 내 마음속에 간직하며 키워나갔다. 사실 13살에게 10년 후는 대학 졸업반정도의 나이지만 어린 나의 마음속에는 왠지 그 꿈이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 더 확실하게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되어 꽃이 필 준비를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일종의 '자기 인식'(self-awareness)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만의 '인식'이 끝나면 나는 입 밖으로 뱉어냈다. 나와의 약속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혀에는 힘이 있다는 말을 항상 들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말 한마디에도 조심하다 보니 더 조용한 아이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자기 인식'이 끝난 상태에서 내뱉는 말들은 나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꼭 지키려고 노력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꿈은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6학년 때쯤 품어온 꿈이라면 그곳을 향해 방향을 두고 달려가도 좋으니까.
발레리나 강수진 님의 발
일 년 후 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꿈을 키워나갔다. 고등학생 시절 어느 날, 그날도 다른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방과 후에 학교 근처에 위치한 St. Vincent Medical Center (성빈센트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했었다. 환자와 방문객들로 바쁜 병원이었기에 일손이 항상 부족했었다. 어느 날은 프런트에서 방문객의 체크인을 돕고, 어느 날은 간호 선생님들을 따라다니며 환자분들 체크업을 도와드리고, 어느 날은 병원 내 도서관에서 의사 선생님이나 다른 분들이 읽고 반납한 논문이나 서적들을 일련번호 대로 정리하는 일을 도았었다. 책들과 신문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사람의 발이라고 의심이 되는 발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징그럽기도 하고 '마녀 발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궁금하여서 관련 글을 읽어보게 되었고 이내 발레리나 강수진 님의 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발은 그냥 발이 아니었다. 발레 아니면 안 된다는 절실함이 가득한 발이었다. 발레로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발레에 최선을 다한 발이었다. 무엇을 해야 발레라는 분야에서 최고가 될지 항상 고민한 발이었다.
"너의 꿈이 뭐니?"
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과학자가 되겠다는 나의 대답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어느 분야의 과학자가 되고 싶은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찾아본 적도 없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 질문에 대한 나는 추상적인 답변은 조금 더 진취적이고 현실성 있게 바뀌었다. 막연하게 과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가 되기 위해 내가 그 과정에서 이뤄내고 싶은 목표를 하나씩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알고 목표가 있을 때 내 꿈은 더 이상 막연한 허상의 꿈이 아닌,그 위치에 도달하기 위한 현실의로드맵인 것을.
순자(荀子)가 말했다. 준마(駿馬)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지만, 노마(駑馬)도 열흘을 계속 달리면 곧 따라갈 수가 있다고.
오늘도 더 나은 과학자가, 또 로봇과학자가 되는 것이 목표이고 이를 위해 연구하고 공부한다. 나도, 내 아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