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vu letar Mar 08. 2023

 그 남자의 BGM (2)

80번 소개팅의 전말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서자 박 차장 주면으로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있는 게 보였다. 궁금해서 다가가 보니 박 차장의 30인치 모니터에 대단한 글래머의 여성이 아슬아슬하게 가린 채 웃으며 브이를 그리고 있었다. 직원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난리들이었다. 나는 사이를 가르고 들어가 그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아침부터 뭐 하시는 거예요 진짜. 아내분들은 댁에서 다들 이러고 있는 거 아세요? 더러워.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서 가방을 내팽개쳤다. 한 5초간 정적이 흐르나 싶더니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다시 직원들이 박 차장의 자리에서 우글우글 그 여자를 구경했다.


 내 살다 살다 고객이 이런 미인은 처음인데. 저에게도 이런 행운이 오네요.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요가 강사랍니다. 제 입냄새 좀 맡아주세요. 하- 허- 냄새 안 나요? 가서 입에서 방귀 냄새나면 이 분이 힘들 수 있으니까.


  뭔 소리야. 뽀뽀할 거예요?


직원들이 으 소리를 내고 낄낄거리며 코를 쥐어 감쌌다.


 제가 오늘 잘 만나고 와서 후기 썹니다.

 

나는 그들을 파티션 너머에서 노려보고 아까 내팽개친 가방처럼 엉덩이를 의자에 처박았다. 나는 자리에서 노트북을 켜며 밤새 시달렸던 어제를 생각했다. 주성이 휴대전화에 패턴을 그으면 꼭 거대한 글래머의 여자들이 화면에 떠있었다. SNS를 보면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번 만날 때마다 여자들이 바뀌어가며 떠있는 걸 보니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을 밧줄로 꽁꽁 묶은 후 처음엔 곁눈질로 그의 휴대폰 패턴을 외우고, 이후엔 그가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 SNS로 들어가 그의 아이디를 외웠다. 나는 밤에 내 침대에 씻고 누워 경건한 마음으로 심호흡한 후 SNS에 접속하기 위해 아이디를 쓰, 쓰 려고, 근데 도무지 아이디가 기억나지 않았다. 휴대폰을 바꾼 지 1년이  넘도록 나는 단 한 번도 SNS에 들어간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 그냥 하나 만들자. 나는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고 그의 아이디를 검색했다.


정주성의 피드에는 내게 동의도 없이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들을 업로드한 것이 눈에 보였다. 것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일단 내 목표는 그게 아니었다. 누가 보지도 않는 게시물은 10년 전부터 꾸준히 올려 너무나 방대한 나머지 볼 수도 없었고, 거기엔 그저 그런 풍경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단 그건 제쳐버리고 그의 팔로우를 눌렀을 때, 아주 잠깐이지만 후회했다. 거의 600명가량의 사람들 중 인플루언서를 제외하고는 절반 이상이 반라의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은 모두 무언가에 홀린 듯한 눈빛과 포즈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나 역시 거기에 빠져 한참이나 그녀들을 들여다보았다. 이것은 팔로우가 아니라 거의 수집이었다. 그녀들의 외모는 유사한 데가 있어 나중에는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주성의 이상향의 평균값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시간을 보니 벌써 두 시간이나 흘러있었다. 화면을 꺼버렸다. 저녁을 먹지도 않았는데 속이 메스꺼워서 뛰어가 변기를 부여잡았다.






 아니 기쁨 씨, 남자들은 누구나 다 그런 거 봐. 안 보는 남자 없어.


 누가 보는 것 때문에 이래요? 습성이 이상하다고요. 습성이. 정상적인 패턴이 아니라니까.


 아요. 기쁨 씨. 진즉에 그런 거 알긴 했지만 사람이 너-무 예민하다. 너무 예민하면 안 돼. 아무도 못 만나. 그냥 눈 감아줄 줄도 알아야지. 어떻게 그렇게 다 따져가면서 만나.


 부장님, 답답한 소리 하지도 마세요. 거긴 공적인 공간이라고요. 내 얼굴을 버젓이 걸어놓고 그런 여자들을 팔로우하고 있다고요. 부장님 같으면 그런 계정을 친구나 지인이나 가족한테 공개하실 수 있으세요? 이딴 변태 덕후를, 미래를 같이할 사람이다 하고 소개할 수 있냐고요. 아이씨 쪽팔려.


나는 함께 밥을 먹으러 가던 용 부장을 내버려 두고 세차게 엉덩이를 흔들며 앞으로 걸어갔다.






너는 그런 사람들을 팔로우하고 보면서 밤마다 무슨 생각을 하니. 하고 물었을 때. 주성은 말없이 자꾸만 소주잔을 움켜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냥 연예인 팔로우한 걸로 봐주면 안 될까. 하고 묻기에 아니, 그 사람들은 일반인이야. 나는 네 상상이 보이는 것도 같은데. 그게 뭐든 온갖 살들이 비벼지는 색깔이겠지. 나도 각양각색 반라의 미남들을 추적하면서 네가 하는 상상을 똑같이 해도 될까.라고 물었을 때, 주성은 펄쩍 뛰며 안된다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주성은 머리가 나쁜 걸까. 나는 지금 열아홉 살짜리와 연애 중일까요, 여러분.


 기쁨아, 나는 사실 집에서 백뮤직으로 19금 동영상을 틀어놔. 뭔가, 그걸 틀어놔야 심신 안정이 된다고 해야 하나. 그걸 계속해서 자세히 보고 있는 게 아니야. 그냥 청소하고 빨래하거나 집안 일 할 때, 보진 않지만 그냥 틀어놓는 거지. 아니 아니야. 이해해 달라는 건 아니야. 그냥 내가 그렇다고.


나는 매우 시큼한 자몽을 씹은 것처럼, 코옆에 힘이 들어가며 팔자주름이 접히는 게 느껴졌다.


 심신이 안정되는 게 아니라, 그냥 음란물 중독이야.






다음날 출근한 박 차장은 어제 만난 미모의 요가강사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투덜대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잠잠히 후기를 들었다.


 세상에, 가봤더니 그런 사람 없더라고요. 내가 몇 번이나 그분이시냐고 물었더니 맞대. 신경질 낼 뻔했다니까요. 사진 들이대면서 진짜 이 사람이냐니까 그냥 웃어. 와... 그냥 짜리 몽땅한 아줌마던데 사진이 어떻게 그렇게 되지?


 나는 속으로 쾌제를 불렀다. 그럼 그렇지. 그게 실제로 가능한 인물이냐고. 그 정도 미모가 많으면 어디 동네 대회가 시도 때도없이 벌어졌겠지. 남몰래 숨죽여 빨갛게 웃고 있는데 갑자기 이게 뭔가 싶었다. 나는 왜, 평소에는 관심도 없을 주제에, 웃음을 낭비하고 있는 건가. 슬픈 건 아닌 것 같고, 이게 무슨 기분일까. 나는 정주성을 가지기 위해 알지도 못하는 불특정 다수의 반라들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


주성은 나와 만나면서부터 여태껏 성실히 참여해 왔던 모임을 대번에 끊어냈다. 때로는 가정이 있는 사람들끼리 각자의 배우자는 내버려 두고 골프를 치러 멀리 나간다던지 모임을 빙자해 자연스러운 일탈현장을 만들기도하는. 그런 모임이라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서 주성은 무슨 역할을 맡았을까.


 기쁨아. 노력해 볼게. 아예 끊는 건 힘들 것 같고.


주성은 서울숲 근처의 카페에서 내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병맥주 두병을 주문했다.



BGM이 OO인 남자(3)에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그 남자의 BGM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