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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Mar 17. 2023

가십 극복기

나는 우리 회사 대표와 자는 사이라고 한다. 잤거나. 그게 그 여자가 내고 다닌 나에 관한 소문이다.


음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음흉하고 지저분한 짓이다. 심심풀이 흥미를 일으킬 만한 더러운 이야기 뒤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 타인의 귀와 입을 이용해 한 사람을 매몰시키는 일. 나는 그것을 사람이 하면 안 되는 짓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가십이 옮겨 다니는 곳에 사람이 셋밖에 없든 삼백 명이 있든 그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안에서 피해자가 입는 피해에는 경중을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이야기가 퍼지는 동안 아주 희미하게 그 사실을 짐작할 뿐이었다. 당시의 나는 어떻다.라는 정의가 없는 신입사원이었고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없었고. 언제부터인지 직원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화창한 날 어리고 선 넘길 좋아하는 한 직원은, 내가 주말에 데이트를 하러 간다고 말하자 이렇게 물었다.


 대표님이랑요?(웃음)


그때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 시야를 가리는 안개 곁으로는 도통 바람이 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에 감사하다. 만일 당시에 소문의 명확한 내용과, 그 진원지를 알게 되었다면- 아무래도 나는, 나는······. 그때와 같이 평소처럼 고객과 통화하거나, 무슨 일이 있냐는 듯한 천진한 얼굴로 동료들을 대하고, 입던 대로 입고 먹고 마시는 일을 할 수 없었겠지.

한참을 지나 모든 걸 다 알아버린 나는, 장황한 복수가 이루어지는 드라마를 보며 쌍따귀를 맞는 악역에, 대신 그 여자의 얼굴을 넣고······. 그런 상상이 머리 위에 둥지를 트려 하면 나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버렸다. 내가 무슨 이유로 나의 머릿속을 더럽혀야 하는가.


나는 그 여자가 남몰래 대표를 좋아하고 있었단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게다가 그 자녀는 성인인,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산 그녀의 생각을 어찌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함께 일을 하면서도 매일 퇴근길에서 그녀는 대표를 욕했고,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묻기도 했다. 그리곤 횡단보도의 불이 붉은색에서 푸른색이 될 때까지 쌍욕을 했다.


그녀는 이제 곧 지천명을 바라보지만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어리나 늙으나 모든 이성이 자신의 연애 대상이었으므로. 내 것이 안된다면 다른 여인에게도 줄 수 없어.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남들은 그다지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 유리그릇을 자신의 가랑이 밑에 두고 홀로 짖는 꼴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 여자는 슬프다.


그녀는 대표가 자신을 성희롱 했다는 사안으로 온 사무실을 떠들썩하게 만들곤 퇴사하였고, 그것이 잠잠해지자 이제 남은 소문은 그녀 자신이 되었다. 그녀가 어디에서 대표를 불러내 어디로 들어가더라 하는 이야기가 온 사내에 퍼졌기 때문이다.


내가 가십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그 모든 것에 무관심했고 꼿꼿했기 때문이다. 나는 꽤 길었던 그 기간 동안 나와 관련한 뒷얘기를 캐려들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추잡스럽던,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성정은 드러나게 되어있고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있다.


지나고서야 말이지만 추문 사이에도 재미있는 지점은 있었다. 가십이 직원들의 상상 속에서 명백한 사실인 동안, 나는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기도 했다. 대표의 애인한테, 누가 감히 밉보이려 하겠는가. 나는 그동안 업무에 관련해서 잘못된 일들과 잘된 일들을 가감 없이, 또한 과감하게 말하며 지냈다.


누구나 가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늘 당당한 모습으로 지내길 바란다. 소문은 결코, 나를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words, words,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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