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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May 25. 2023

아기가 쓴 삼촌의 에세이

삼촌이 아기를 낳았다.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삼촌은 올해로 52살이니까. 처음에는 그것이 기이한 일처럼만 느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삼촌이 배를 타다가 혼자 늙어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기억은 뿌옇고 누가 제대로 말해주지도 않았지만, 내가 학생일 때 삼촌과 관련해, 들으면 안 될 단어들을 주워들은 것 같다. 덕분에 삼촌을 생각하면 빨간색 매니큐어와 널브러진 속옷, 지저분한 침대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연두색 이파리가 투명하던 어느 여름날, 동네 공원에서 삼촌은 미성년자인 나와 함께 쭈그려 앉아 맞담배를 피웠다.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대화만으로는 가슴속 텁텁함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내내 바닥에 침을 뱉었다. 나는 어른인 삼촌이 어째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지 한심해하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땐- 삼촌도 20대였다. 

그때 이후로 나는 삼촌을 만나지 못했다. 그는 해외로 배를 타러 나갔고 나는 서울로 이사 갔다. 이후 삼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죄다 편린에 불과한 잡음을 통해서였다.


내가 처음 취업을 준비할 무렵, 삼촌은 어떤 여자를 데리고 고향 본가를 찾아왔단다. 여자는 짧은 치마를 입고 삼촌의 달동네 비탈길을 걸어 올랐다. 뒤따르는 할머니의 눈에 여자의 다리 사이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할머니는 둘 사이를 반대했다


몇 년 전에는 삼촌이 일을 하다가 자기 팔뚝만 한 밧줄로 얼굴을 얻어 맞고는 왼쪽 안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무너진 얼굴로 검고 아득한 바다의 수면을 바라보는 삼촌을 생각했다. 삼촌의 시간과는 관계없이 빛이 비친 잔물결은 늘 황금색으로 빛났다. 주치의는 삼촌의 얼굴에 엉덩이 살도 붙이고 다리 살도 붙이고 했다. 그는 그렇게 혼자서 40살이 되고 50살도 되었다.


나는 한참 동안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옹알이하는 입술이 침에 젖어있었다. 늘 반짝이는 윤슬처럼 눈도 빛나고 코도 빛나고 축축한 입술에서도 빛이 났다. 나는 아기의 입 속을 입  천장을, 목구멍을 위장을 그리고 다시 입술 위를 그저 내 기분대로 지나다녔다. 엄마는 아기가 삼촌의 아기때와 똑같다고 했다. 실감할 수는 없었지만 엄마의 말을 믿는다. 자기보다 열 살 어린 삼촌을 업어서 키웠으니. 나는 삼촌을 키워본 일이 없지만 어쩐 일인지 아기의 얼굴에서 삼촌의 청년 시절을 발견한다. 


아기는 잘 클 것이다.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많으니. 삼촌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삶까지도 책임질 수 있을 때 아기가 왔을 것이다. 우리는 아기가 삼촌에게 온 것이 결코 늦지 않은 때임을. 가장 정확하고 착한 때임을 알고 있다.


 

U-AN : illust by 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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