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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세 Aug 20. 2023

아버지의 섬

아버지의 섬과 화해하기까지 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는 섬에서 나고 자라 섬에 묻혔다.

당신의 부재(不在)를 나는 자주 원망했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섬에 나는 돌아와서 요리를 했다.

넉넉한 바다, 돌우럭과 한치. 새우와 아귀. 벵에돔, 보말, 구쟁기(뿔소라), 전복.

구좌에는 당근과 감자, 패마농(쪽파), 마늘. 영평에는 감귤, 가파도의 청보리, 중문의 푸른콩.

한라산 굽이굽이 먹고사리, 초기(표고), 산마농(달래), 양애.

손으로 움켜쥐고 칼로 다지고 뭉근하게 끓여 낭푼 가득 담았다.


아버지의 밭과 산, 바다.

불을 지피고 밥이 익는 긴긴밤

긴긴 화해를 했다.


먼 훗날

나의 사계가 저물어

제비꽃 한 송이 꺾어 들고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날.

말해드리리라.

아버지의 섬이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당신에게 그랬듯

내게도 얼마나 배풀어주었는지.

당신이 좋아했던 옥돔 한 마리, 동태전 올려

한 상 가득 차려드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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