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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Nov 09. 2023

딸의 시가 브런치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 1


오후 1시 40분.

오전 마감이다. 신나고 향기롭던 혼자만의 달콤한 자유 끝. 육아 시작이다. 회사원에게 월요병이 있듯이, 전업 주부는 오후가 되는 시간이 썩 내키지 않는다. 매콤 달콤한 떡볶이를 한 접시 만들어 놓고 기다리는 엄마라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고 깨끗하게 정돈된 집을 유지하는 것이 나의 최선이다. 몇 시간만 더 혼자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어김없지. 띠리링 현관문이 열리면 바사삭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문단속을 아무리 잘해도, 비번까지 알고 있는, 웬만해선 막을 수 없는 그들이 들이닥치지 않은가. 그들이 들어와 지나가는 자리, 그 자리마다 새로운 오후 볕이 내리쬐기 시작한다.


일단 한 명. 학교 가방을  아이가 돌진해 들어왔다. 잠바는 벗어서 가방에 욱여넣고 맨투맨 티셔츠 차림으로 들어온 아이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하다. 일교차가 큰 탓이다. 마스크 사이로 급식 냄새를 풍기며 종알종알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다. 가족이 돌아와 반가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듯, 최대한 반기는 시늉을 하며 웃는 얼굴을 장착하고 한 손으로는 가방을 건네받는 행동은 오후 루틴의 첫 번째 업무다.


엄마, 이거.


뭘 내민다. 아이가 손에 뭘 들고 있었다.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가방에 넣어 오지도 않고 손에 들고 왔나 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학급 아이들이 모두 쓴 시가 한 권으로 묶인 작은 시집이다. 얇은 보라색 책.


오호 올 것이 왔구나. 이 시집을 만들기 위해 담임 선생님은 두 달 전부터 작업을 하셨다. 여름 방학 숙제로 시 한 편을 받으셨고, 9월에도 수업시간에 따로 시간을 할애하여 시를 더 적는 활동을 한 뒤, 그중에서 각자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그걸로 시집으로 만들 거라고 선생님이 공지했던 바 있었다. 아이는 방학 숙제의 시가 아닌, 학교에서 따로 쓴 시를 제출했고, 나는 그 내용을 보지 못했다.


얼마나 잘 썼을까.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지만 그간 일부러 더 묻지 않고 참았다. 책으로 '짠'하고 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기대되니까. 기대의 근거는 작년에 아이가 학교에서 썼던 인생 '첫 시'가 내용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도 내심 아이의 글쓰기가 괜찮을 거란 생각에 설렘반 기대반으로 기다렸다. 명색이 브런치 작가의 딸 아니던가.


심장이 뛴다. 일단 아이의 학급 번호를 따라 페이지를 펼쳐, 시를 빠르게 훑었다. 역시 기대 이상으로 흡족했다. 예민한 기질과 상상력이 어우러져 제법 '시'다운 글을 써낸 아이가 기특했다. 소재는 '탱탱볼'이었고, 제목은 '잡기 놀이'다. 아이만의 기발한 착상이 녹아있었다. 한 큐에 쭉 써간 말의 리듬이 입에 착 붙었다. 오은영 선생님을 빙의한, 아이 마음 잘 읽어주는, 트렌디하고 싶은 요즘 엄마인 나는 바로 반응했다.      


우와 잘 썼다.
작년보다 더 좋은데.      


여기서 책을 덮을 수 없다. 나머지 친구들의 시가 버젓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이제 한 가지 궁금하고 마음이 쓰이는 것은 그 아이다. 똘똘하고 다부진 인상. 아침 활동 교재에 글씨를 반듯하게 잘 써, 학기 초 클래스팅에 반 대표로  아이의 이름이 써진 노트와 문제집의 사진이 단독으로 올라왔던 아이. 눈에 띄는 아이. 두꺼운 소설책을 늘 읽던 아이. 반에서 잘하는 일이 많아서 선생님의 애정 어린 관심받아가던 일이 잦던 그 아이. 담임 선생님이 그렇게 대놓고 칭찬하는 일이 잦은 데에 불만의 토를 달 수 없을 정도로 성실함이 배어있는 행실이 반듯한 아이. 수학도 혼자 만점 받아 호명됐 일이 있는, 과학 발명 결과물도 유난히 클래스팅 사진에 많이 거론된 일이 있는, 색칠한 결과물에서선생님이 1등으로 뽑아 후레쉬베리 간식을 받은 그 아이 말이다. 그 아이의 시는 어떨까. 바로 펼쳐본다면 하수다. 내 아이 앞에서 그런 짓은 하지 않는 쪽으로 행동을 많이 개선했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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