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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Jun 19. 2024

글을 쓰고 있는데 글이 없다

노트북을 피했다. 손에 닿지 않은 지 한 달이 넘어간다. 한 번씩 전원버튼을 켜 인쇄기와 연결해 제기능을 잘하는지 점검하는 일은 잊지 않았다. 누가 하라고 시키는 것도 아닌데, 한 편의 글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왜 이리 돌덩이처럼 무거울까. 평일 오전, 점점 뜨거워지는 햇살을 피해 거실 테이블에 앉아있지만, 노트북은 곁에 없다.


블로그와 인스타에 올릴만한 두어 단락의 글은 매일 쓰고 있었다. 그 문장들을 베이스 삼아 더 긴 글을 완성하면 될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짧은 호흡에서 긴 호흡의 문장으로 넘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한 번 놓아버린 에세이 쓰기의 습관이 멀어지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다. 책도 계속 읽고 있었다. 테이블의 한편에는 작가들이 쓴 글쓰기 책들이 쌓여 있고, 어떤 단락을 마주할 때마다 아이디어를 얻어 내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수차례다.


집에 있는 책을 읽기, 도서관에 가서 읽기,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기,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읽고 타임스탬프로 찍어서 곁에 책 내용을 필사하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


한 달 전 즈음부터 인스타. 블로그를 매일 발행했다. 이제 거기에 브런치만 합세하면 된다. 내 꿈의 'SNS 3종 발행'은 이제 이루어지려나.




욕심이다. 어떻게든 쉽고 빠르게 쓰려고 하면서 동시에 잘 쓰고 싶다. 그래서 시작을 못하는 것 같다. 핸드폰 카톡으로 '내게로 전송'한 여러 가지 단락의 글을 스크롤하면서, 글감을 골라본다. 하나를 선택하면 이건 더 확장하기 어렵고, 이건 더 큰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아껴두고, 이건 내용이 빈약해서 더 풀 소스가 없다고 여긴다. 결국 고르기를 포기하고 창을 덮는다.


카톡 '내게로 전송'한 글은 너무 많아 정리가 안 될 지경이다. 써두는 것은 쉽지만, 뭘 썼는지 일일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키는 내가 쥐고 있다. 모든 문제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결국 마주해야 할 것은 시작하기 싫은 마음을 참고 마주하는 것이다. 차분히 앉아서 구상을 해야 한다.

조용한 오후, 혼자 거실에 앉아 있다. 노트북이 아닌 내 글감을 인쇄해 둔, 바인더와 빈 종이, 펜을 쥐었다. 십 분만 구상하자,라는 마음으로 시험 플랜을 짜는 학생처럼 뭔가를 끄적이며 생각에 잠긴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그냥은 없어. 모두 다 힘이 들지. 자기 삶을 사랑해야 해. 자기를 아끼고 자기를 소중하게 가꾸어야 해. 글을 쓰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자기를 소중하고 귀한 사람으로 가꾸기 위해서야. 스스로 고귀하게 되는 일은 시련의 연속이란다. 그걸 기쁨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걸 행복으로 생각해야 하지.

김용택, 마음을 따라야 한다.




사실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다. 막상 공부가 싫어도 시작하면 그 안에서 희열을 느끼는 모범생처럼. 그 과정을 좋아하면서도 피했다. 테이블에서 구상 노트를 펴고 궁리해야 할 것을 알지만, 곧바로 설거지를 하거나 오늘 필요한 식재료를 검색하거나 책정리를 했다. 두려웠던 것이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브런치의 글쓰기 창을 자꾸 피하게 되는 나를 매일 마주했다. 결국 완벽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글을 쓰려는 시작조차 방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뭐 어떤가.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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