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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정 Aug 11. 2023

우울을 왜 극복해야하지?

   여러 해를 거쳐 우울을 달고 살아왔던 나는 일단 우울을 벗어나야할 이유를 찾아야했다. 사실 심플하게 "그냥 우울한 건 안 좋으니까"하고 끝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나는 마냥 안좋은 삶만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가끔 좋은 날도, 안 좋은 날도 있는게 인생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남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왔다고 믿었으며 그저 내가 유독 유난 떠는 성격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내가 우울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우울을 '굳이' 극복해내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살고 싶은 마음과 의욕이 생겨야 했다.


   일단 대학교에 입학하며 만난 사람과 거리를 둬야했다. 내가 우울해진 큰 원인 중 하나가 그 사람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그 두 사람 모두 서툴었던 시기여서 어떤 말을 뱉고 삼켜야하는지를 몰랐고, 솔직하게 내가 그에게 어떤 말을 뱉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그에게 들었던 말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을 기억해내자면, '너는 원래 우울한 사람이야.' 였다. 내가 '우울하게 태어난 사람'으로 정의된 순간이었다. 수 개월을 울면서 고민한 끝에, 그는 내게 더 이상 어떤 도움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헤어졌다.


   나를 우울한사람으로 정의한 이로부터 멀어지니 차츰차츰 상태가 좋아졌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남은 친구도, 새로 친구를 사귈 가능성도 남아있지 않았다. 삶에 의욕이 없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부모님과도 멀어진 상태였던 나는 계속해서 삶에 회의를 느꼈다. 매일 밤 내일 눈을 뜨지 않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고, 숨이 차는 날이 많아졌다.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흘렀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시 내 입장에서는 다행히 자취를 하고 있었던 나는 혼자 있었던 덕에 다른 이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펑펑 울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도 두 번의 행운이 있었다. 첫째로,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꽤 긴 통화를 하다가, 동생이 나에게 "언니, 나는 언니 없이 못 살아."라고했다. 내가 살아있어야 할 너무나 뚜렷한 이유가 생겼다. 여전히 살아가고싶지 않았지만, 동생을 위해 살아야만 했다. 내 죽음으로 인해 동생이 큰 슬픔을 느끼게 될 순간이 두려웠다. 죽음의 욕구가 나를 끌어당길 때마다 동생을 생각하며 생각을 환기했다. 둘째로, 친구가 생겼다. 우리 학과에서는 교직이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을 2명 선발했는데, 우연찮게 한 친구와 나 딱 두 명이 지원한 것이다. 유일한 교직이수 친구를 두면서, 나는 처음으로 친하게 지내는 학과 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는 내가 힘들 때면 금새 눈치채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거나, 내가 혼자 밥을 먹을 때 본인의 친구들과 함께 먹자며 나를 불러내기도 했다. 그 친구들도 모두 좋은 친구들이어서 내가 끼는 것에 불편함을 표하지 않았다.


   내가 우울한 생각을 할 때면 머리에서는 동생이 했던 말이, 옆에서는 눈치 빠른 친구가 도와준 덕에 죽지 않아야할 이유를 만들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회의감을 물리칠 아주 큰 무기가 생겼다. 다만 아직 굳이 살아야하는 이유를 찾지는 못했다.


   약 두 해 정도가 지나고, 갑상선암을 확진 받고 다시 우울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 우울은 얼마 가지 못하고 오히려 삶의 의욕을 채우는 아주 큰 계기가 됐다. 가까운 이의 부고 때문이었다. 이 일로 죽음의 무게를 통감하고, 수술 직전에 '제발 큰 탈 없이 살아있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다. 종교가 없어도 누군가에게 들으란 듯이 계속해서 마음으로 외쳤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살아갈 의지를 얻은 채로 퇴원했다.


   머리를 수술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완전히 개운한 나로 새롭게 태어난 듯 했다. 이후 나는 더이상 우울을 느끼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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