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유정 Nov 06. 2023

삶의 무용(無用)에서 안도감을 느끼다.

   창경궁에 다녀와 옛 선조들의 생활공간을 구경했다. 왕과 신하들의 자리를 서울에 세워진 현대적 건물들과 번갈아보자니 참, '현재'라는 것이 얼마나 무용한가 싶다. 옛 사람들은 왕의 존재가 당연하고, 윗사람(계급의 의미에서)을 떠받드는 것을 덕목으로 여기며, 백성들은 그들 앞에 벌벌 떨었을 것이 아닌가? 지금 보면 모두가 똑같은 사람인데도. 그들 시각에서의 우리, 현대의 만백성들이 왕이 거니는 길을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며 수다를 떨고, 창호지를 손가락으로 뽕뽕 뚫어놓은 것을 보면 기가 차서 쓰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당시 그들의 지위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는 점이, 게다가 지금은 가끔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는 점이, 인생이 참 덧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걸 보면 나도 내 삶에 무언가 남기고자 하는 욕심과 미련이 가득한 사람이구나 싶다.


   창경궁을 같이 간 남자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현재라는 건 없는 것 같아."

   "맞아, 우리는 끊임없는 과거에 살고 있어."

   "그러게, 방금 했던 말들도 모두 과거가 되어버렸잖아!"


   대화 내용대로 끊임없는 과거에 사는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인생의 덧없음과 황망함을 깨달은 시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며 발자국을 남겨야할까? 그전에, 비에 쓸려나갈지도 모르는데 내가 그 발자국을 꼭 신경써야만 할까?

   아직 어려서 이것이 정답인지 뭔지 알 수는 없겠지만 일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생각은 '내 일생은 어차피 보는 이의 입맛대로 각색되거나 심지어는 잊힐테니, 남 눈치 보지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그러지 못하는 타인들도 나와 같이 살 수 있도록 베풀며 살자'는 것이다. 내킬 때 봉사를 할 수 있음에 참 감사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친절해지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