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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Sep 25. 2023

나의 가을 나기


치열했던 적이 있었던가. 꽤 여러 날 열 살 둘째 아이가   등교를 하지 못하고 , 고열에 시달렸다.  설사와 구토로 까지 이어진 독했던 감기. 주말을 지나며 아이는 가까스로  컨디션을 회복했고 , 그 여파로 나는 급격히 지쳐 여러모로 무기력 해지고야 말았다. 그저 계절이 바뀌며 느껴지는 단순한 기분 탓일는지.


여러 날이 지나도 무기력해짐은 더해졌다. 놀이공원 산책을 가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봐도, 제법 비싼 향수를 사들이고, 명품 브랜드 립스틱을 사 보았음에도 (명품가방을 사들이기는 역시 만만치 않았으므로)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그럴수록 나날이 카드 명세서만 늘어났을 뿐. 사십일 년을 살아오면서 내내  물욕이 그다지 많 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음에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거늘.


 날이 흐려 유난히 그런 걸까, 오늘따라 점점 더 무기력해지기만 하는  마음을 덜어 내보고자 뜨거운 물을 욕조에 가득 받아 담갔다. 따뜻한 물에 도무지 모를 무거운 마음과 조금 울적한 기분까지 함께  씻겨 가길 바라며.


곱씹어보면, 지나면서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로 치열했던 시절은 중. 고등학생 때였다. 어쩌면  그마저도 수없이 많은 여느 친구들에 비해보면 정말 무척이나 비루하여 낯 뜨거울 정도였을 테지. 뭐, 이제야 기어코 견줄 필요까지 있겠느냐만.


타고나길  물욕도,  흔한 승부욕조차도 없는 나는 어느 때엔 내가 생각해 봐도 매사에 도통  나른하기 짝이 없다. 여태 나는 가족들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 착하다는 이야기를 꽤나 들었다. 어쩐지 나는 언제부턴가 그 말이 썩 달갑지만은 않지만.  당연히 스스로를 착하다고 여기지 않을뿐더러. 굳이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기 때문이랄까,

 정말 내가 관심 있는 일이 아니라면 신경을 쓰거나 마음에 두질 않는 어떤  무심한 성격 탓에 도통 화를 내질 않으니 남들이 보기엔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가엾게 여기며 함께 하는 마음만큼은 누가 뭐래도 오지랖이라 할 만큼 큰 건 사실이다.  한편으론 주관이 몹시 뚜렷한 편이라 , 한번 결정한 일에는 굽히지 않는 외골수 같은 고루한 면까지 있으니.

생각해 보면 여러모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한편 두 번째로 치열했던 시절은 두 아들. 갓난아이 때즈음이었다. 매사 크게 걱정이랄 것 없이 태평하고 나태하기만 한 내가 그렇게 까지 열정적인 에너지를 낼 수도 있는 사람이란 걸. 그 시절, 어쩌면 처음 알았다.  살 작은아이는 뒤로 업고  살 큰아이를 손에 잡아 버스를 타고 족히 40 분가량을 달려 일주일 두 번  문화센터 체육 수업을 데려고. 심심하다며 칭얼대는 아이를 등에 업 하루가 멀다며 걷고 버스를 태워 여기저기 제법 멀리까지 다녔던 그 시절.  생각해 보면 몸살이 날 법도 했으나, 참 씩씩한 엄마였음엔 틀림없다. 그러기엔 삽 십 대 초반이라 체력적으로는 모자람 없었을는지도.


고집이 세고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물욕이 크게 없고 무척 느른한 대신, 꽤나 깐깐하게 정리를 해야만 하는 성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마저도 순전히  나의 기준으로 주로 내 눈에 보이는 부분에 공을 들이긴 하지만. 나의 눈에 띄는 곳은 내 딴엔 오와 열을 맞춰  정리해 두는 어떤 강박을 갖고 있으니. 허술해보일는지언정. 이점은 나에겐 꽤나 피곤할 정도 일이기도.


나른한 듯 , 욕심이 없는 듯, 화를 도통 내지 는 듯. 실실 대고 잘 웃는 듯. 게다 나태한듯. 그러다가도 도저히 알 수 없이 심술맞게 변덕을 부리기도 하며, 이렇듯 내 속을 알길 없어 요즘같이 한없이 축 처지는 날. 지 치열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차 알지 못하는 무척 느른하고  고루한 사람이지만.

울적한 날엔 언제나 뜨거운 물에 담기길 좋아하는 나만의 확고한 취향처럼.

서서히 데워졌던  온기만큼. 깊이 있고 조금은 세련되게 이 계절 또한  지나 보련다.


자유로움을 무척이나 추구하는 나의 고집스러운  취향답게. 여느 작가들만큼  맹렬히 기세 좋게 글을 써 내려갈 순 없을 테지만.  그저 대로 진득하니 천천히 글을 쓰고 싶을 땐 끄적이며 , 이렇게 서서히 깊어지는 가을.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나에  소스라칠만한 사실에 지금 이토록 스산하고 공허한 것일는지.  어쩌면 ,  나의  마흔한 번째 가을.  그 계절을 나는 온몸으로, 마음으로 온통 지나고 있을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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