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이를테면 바닥 모를 수렁에서 흐느적흐느적 무뎌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무척 가까운 사람들의 어떠한 사사로운 상황으로 시작된 나의 울적한 마음. 그것이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질수록. 슬퍼졌고, 원망스러웠고, 누군가에게는 화가 치밀기까지 하여 분노했고, 어느 날엔 추운 겨울 한껏 센티해진 내 모습이 어떤 묘한 분위기를 가지 기라도 한 듯 느껴. 일부러 자기 연민에 취한 채 젖어들기도 했고, 마침내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해하는 내 모습이 가증 스러 끔찍한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도무지 어떠한 글도 쓰고 싶지 않았고, 쓸 수 없었다. 이렇게나 불안정한 나의 마음이 혹여 비루하고 청승맞게 쓰이기라도 하면 어쩌려나. 조심스러웠다.
하나 돌이켜보면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여태 어떤 형태로든 글이라는 것을 끄적이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교내 과학 상상 글짓기 대회에 참여하여 상을 타버린 이후로, 쓰는 것에도 재미를 느꼈다.
6학년때에는 학년 대표로 교내 방송부 작가 활동을 하며 매주 방송 대본을 다소 조악하게나마 써 내려가기도 했다. 그때 질투라는 무서운 감정에 눈이 먼 친구와 , 그를 따르는 많은 반친구들에게 집단따돌림. 그러니까 왕따라는 것을 꽤 오랫동안 겪기도 했다.
결코 가볍다거나 유쾌하지 만은 않았을 시간들.
열세 살 아이에겐 조금 두렵고 외로웠을 일 년이라는 시간. 예나 지금이나 승부욕이랄 건 쥐뿔도 없지만.
자존심이라는 감정. 그땐 왜 그리도 콧대 높았는지.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았다. 잔망스럽게도.
다만 엄마가 사주는 원고지에 그날그날 생각나는 대로 한 글자 한 글자 눈물을 삼켜가며 아무 말이건 써 내려갈 뿐이었다. 항아리나 돌 위에 물을 찍어 글씨 연습을 했다는 한석봉을 상상하며.
지금의 나는 외로움이란 감정을 잘 느끼지 않는다. 음 , 어쩌면 느끼지 못한다고 해야 하는 건가. 여하튼 홀로 있는 시간을 여유롭게 까지 즐겨가며 제법 보낼 수 있는 어른이 돼버린 건. 우습게도 그 시절의 단련 때문이 아닐는지.
아무튼 , 중학생이 된 나는 그 나이 때 소녀들이라면 열광했던 한 아이돌그룹 가수의 덕질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팬레터 형식의 글을 매일 써 나갔다. 무려 스프링노트 두 권씩이나.
뒤론 , 친구와 교환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는데, 심지어 각각 두 명의 친구들과. 2년에 걸쳐. 어쩜 그때의 난 지독히도 외로웠다거나 , 유난히 무언가 따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고등학생 시절엔 단짝친구 냉이와 하루가 멀다고 편지를 나눴으며, 대학에 입학해서는 군에 입대한 여러 친구들의 짠내 나는 성화에 못 이기는 척. 간간히 위로의 편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후엔 지금의 남편인 용에게도.
아이를 뱃속에 담고 나서는 태교일기를 썼으며. 기르고부터는 육아일기. 아니, 육아의 희로애락을 담은 글을 토해내고 있었다.
홀로 깨어 있는 이 시간 은근하게 아슬아슬 하기는 했으나, 조금 청승맞았을지언정. 꽤나 진심으로 글을 써 내리고 말았다.
이렇듯 30년 넘게 대략 사부작거리며 나름의 방식으로. 글이라는 형태를 써 내려간 그간 흔적을 미루어 감히 점쳐 보건대.
앞으로의 나 또한 , 적어도 나지막하게나마 숨을 쉬고 있는 동안엔. 어떠한 방식으로든 끄적여 내리며 조용히 글을 쓸 터.
두 뺨이 이내 발갛게 뜨거워 지고야 마는 겨울밤. 이는 단지 침대 위 누운 내 등뒤로 전해지는 뜨뜻한 전기장판 열기 탓만은 아니리라.
조금 조심스럽지만 , 아주 조금은 뜨겁게 바라 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