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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Jul 14. 2023

마녀의 솥


추적추적 비 내리는 오늘 같은 날.  무척 잘 어울리는 이야깃거리 하나가 떠오른다.

" 데발 나 자바머찌마. 살려더."

(제발 나 잡아먹지 마. 살려줘).

작은 아이는 뻘건 곰솥 안에서 잔뜩 겁에 질렸다. 손가락 끝으로 톡. 하고 건들기라도 하면 금세 오줌을 쌀 태세다.

곰솥에 오줌이라도 눠버린다면 퍽 난처한 일이 되겠으나, 다행히 기저귀를 차고 있는터.


 "으하하하하. 넌 오늘의 요리 재료가 돼줘야겠어. 그새 아주 통통하게 잘 자랐는걸."

아이의 울부짖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힘주어 이야기한다.


" 제발. 승이 잡아먹지 마. 진짜 요리할 거야?"

그때 옆에서 줄곳 지켜보던 여섯 살 석이가 다급한 듯  끼어들어 말한다. 꽤나 절절하게, 그리고는 세 살 어린 동생에게  덧붙여 제법 형다운 침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승이야. 울지 마. 형아가 못 잡아먹게 너를  지켜줄게. 걱정 마."


"으하하하하하. 네가 그렇다면 좋아. 오늘의 요리재료가 아직 조금 작아  부족하긴 했으니. 마침 잘되었다. 그럼 대신 너를 잡아먹어야겠구나. 으하하하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 살, 여섯 살 아이들이 있는 집은 금세 눈물바다가 되었다. "끼아 아악. 엄마."

"으허어어엉. 엄마. 무서워. 이제 그만해."


"이런, 가만 보자. 한 녀석은 요리하기에 너무 커버렸고, 한 녀석은 아직 요리하기에 조금 작구나. 좋다. 그럼 오늘은 살려주겠다. 으하하하하하. 보내줄 테니 가거라." 커다란 솥 안에 앉은 채.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아이를 안아 꺼내어 장난감 앞 데려다 앉혔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은 아이는 "엄마. 이제 우리 엄마가 다시 된 거야? 제발 이제  마녀 되지 마. 아랐지? 약속해 줘."

오늘 여기까지 해야겠다. 어쩌지 밤새 울게 생겼구먼,

그제 엄마만 재미있었던 연극이 끝났다.


아이들이 어릴 적 핑크퐁 빔프로젝트로 전래 동화, 이솝우화, 창작동화, 뮤지컬동화, 세계명작이야기를 꽤나 진득하니 함께 보았다. 군것질을 즐겨 그런가, 나는 그중 알록달록 과자로 만든 집 이야기를 좋아했다. 헨젤과 그레텔. 소름이 끼치고 상당히 잔인하고 무서운 이야기지만 말이다. 무서운 이야기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내가 연기로 재연할만한 정도의 이야.


태어나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였을까,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쯤부터였을까, 첫니가 나기 시작할 무렵부터였던가.  나는 어딘지 영 엉뚱하고 꽤나 장난스러웠던  내면을 도통 감출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서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어린이 관객 둘에 연출과 연기를 겸했던 한 사람의 공연. 그것은 둘째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우리 집 뻘건곰솥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되서. 그제야 보잘것없이 막을 내릴 수 있었다.


둘째 승이 어느덧 열 살. 

씩씩한 초등학생이 되었지만,  혼자 헨젤과 그레텔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겸연쩍고 꺼림칙한 이야기와 함께.

 추적추적 비 내리 날. 녁.

아이와 세계명작시리즈를 열어볼 생각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가 조금 미안했었다고  이야기해 주련다. 

오늘만큼은 서체로 제법 점잖거나 진지하게.



하교후.떡을 먹으며 엄마가 쓴 자신의 솥단지 이야기를 읽고,추억 떠올리는 열살. 그나저나 악몽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그의 보조개가 활짝 피었지요.아이 동의하에 올린 사진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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