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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Jun 01. 2023

비밀스럽게  비밀스럽지 않게


포만감으로 부른 배에 흡족하게 일어나 싱크대로 간다.

식사를 했던 식탁을 정리하고 그릇들을 씻어내기 위해서다.

저녁식탁에서 먹었던 김치찌개, 소시지볶음, 김, 총각무김치를 담았던 접시와 밥그릇들을 그대로 싱크대에 옮긴다. 목을 축였던 물컵들도 역시 잊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열 살 둘째승이가 곁으로 다가서며 말한다."엄마, 오늘 저녁 맛있었어."  

그랬냐는 대답을 하며 영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서 그랬을까,

승이는 한 발자국 더 바짝 내 곁으로 다가선다.

"엄마 오늘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내 기준으로는 음, 세계최고의 요리사 음식 같았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크하게 아이의 말을 받아넘겼다. 뭐랬더라 , 고맙다고 했던가. 실은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 고마워. 매일 맛있는 요리를 해줘서."  아이는 강아지처럼 내 곁에 바짝 붙어 맴돌며 예쁜 말들을  한참이나 쫑알거린다.


"아이 참, 승아. 이거 봐 .엄마  물 다 튄다. 설거지 끝날 때까지 거실에서 쉬고 있거나, 네 방에 가있어. 이거 다 마치고 이야기하자." 승이에게 나는 말했다. 반쯤 성가시다는 듯 , 반쯤 고맙다는 듯.


"엄마, 이제 일 다 끝났어? 힘들었겠다. 내가 뭐 도와줄 게 없을까? 도와주고 싶은데."

승이는 늘 이야기한다.

"엄마 많이 힘들지, 내가 더 잘해줄게,  집안일 도와줄게. 엄마는 좀 쉬어."

 이렇게 열 살 아이는 끊임없이 나를 보듬어 주려한다. 실실 잘 웃긴 하지만  무뚝뚝한 편인 나는 곧 죽어도 아이의 사랑에 살가운 내색을 표현하질  못한다.

한참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연습하고 나서야 "그래 , 정말 고마워."  겨우 입을 뗄 정도랄까,


아이들이 곤히 잠든 밤, 승이의 방으로 가서 책가방을 열었다. 3학년이 되었으니 매일  정리해주지 않지만  이따금 필통에 연필, 지우개, 색연필, 형광펜을 바꿔주어야 될 때는 아닌가 살피기 위해서다. 그러다 투명한 파일  눈에 익지 않은  프린트를 발견했다.


프린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2023 어버이날 미션 , 작전명 몰래 효도하기 . 부모님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밀스럽게 칭찬합니다.

그리고 내가 칭찬한 말과 부모님의 반응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5월 8일 부모님께 미션수행지를 보여 드립니다. "



옆으로 넘어가 아이의 몰래 효도하기 수행내용을 살핀다.

 나 몰래 해야 하는 과제지만 어차피 5월 8일엔 보게 될 테니 미리 보는 것쯤은 괜찮아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어쩐지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5월 1일 월요일 . 비밀스럽게 칭찬한 말 에는  "엄마 음식은 세계 최고 요리사 음식처럼 맛있어." 라고 쓰여있다.

부모님의 반응을 적는 칸에도 작은 글씨로 무언가 쓰여있다.

"그래. 다행이네."


오소소 소름이 돋으며 가슴이 저릿하게 철렁했다.

승이가 유난히 쫑알댔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다. 승이 미션수행지에 엄마의 반응을 적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미안하기에 이루 말할 수 없다.


매일 아침 학교를 기 전 승이는 나를 꼭 안아주며 잊지 않고 말한다. "엄마 사랑해.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내일은 내가 먼저 꽉 끌어안고 이야기를 해줄 참이다."엄마는 매일 고마워. 사랑해. 좋은 하루 보내."

승이의 효도미션엔  남은칸이 아직 많다.

이젠  내가 미션을 수행하려 한다.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밀스럽게 칭찬을 하고  마음속에 기록해 두련다.

칭찬은 비밀스럽게 , 사랑표현은 전혀 비밀스럽지 않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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