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우리 가족은 캐리비안베이 시즌한정 마르카리베 카페에 바람을 쐬러 다녀오기로 했다.
기분 좋게 식사를 한 후 차에 올랐다. 둘째 승이는 갓난아기시절부터멀미가심한 편이었다. 어쩌면 태아시절부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멀미라고는 없던 나였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땐 자동차바퀴만 굴러가면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상하리만치 속이 니글거렸고 울렁거림과 현기증이 밀려와 차를 타고 이동할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올해 승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 핸드폰개통을 시켜준 이후부터였을 테다. 승이는 이제 차를 타도 멀미가 나지 않는다며 이동하는 동안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란다. 꽤 엄격하게 통제하며 습관을 기르고 있었다. 하나 이전 글에 언급한 적 있듯 조금 달라지기로 마음을 먹었던 나였던 만큼답지 않게 아이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이동하는 내내 아이는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내심 불안하기는 했지만 멀지 않은 거리니까 괜찮겠지,
나를 다독였다. 어느새 목적지까지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야. 승아 너 왜 계속 안 움직여 뭐 해, 왜 대답이 없어?"같이 게임을 하던 친구의 목소리가 아이핸드폰스피커로 들려온다.
2초 후 "아, 나 속이 안 좋아 잠깐만."
3초 후 "욱... 우웨에엑 우웨엑 욱 우웨엑."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끔찍한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한쪽눈은 질끈 감은채 깊은숨을 뱉어내며아주 천천히 뒷좌석을 돌아봤다. 세상에 이럴 수가 ,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 없나라는 노래가사가 있었던가,
하필 참치김치찌개를 먹었다.게다가 승이는참치김치찌개를 1순위로 좋아하는 어린이. 수북했던 찌개를 깨끗하게 싹 비워내는 아이를 보며 어쩐지 이대로 차에 태워도 될까, 불안하다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었다.
마땅히 정차할 곳이 없으니 차를 바로 세울 수도 없다. 그사이 승이는 두어 번 더 "꾸웨에엑."소리를 낸다.
마음이 타들어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되도록 빠르게 차를 정차할 마땅한 장소를 찾는 것뿐이다. 승이가 내는 소리를 무기력하게 듣고 있자니 여태 잔잔하기만 했던 내속이 별안간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듯하다.
CU편의점이 보인다. 주차를 하고 용(남편)과 차에서 내렸다. 그때 어쩐지 나는 그보다 조금 늦게 걸음을 떼었다. 뒷좌석 문을 열고 우린 동시에 "야, 너! 너 승이 너, 야! 이거 아. 진짜 어떡할 거야! 야이씨 정말! 못살겠다. 너!"
(혹여 비위가 좋지 않으실 분들을 지금에서야 생각하여 문을 열고 제가 마주하게 되었던 적나라한 상황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거듭 죄송함을 전합니다.)
용은 시트청소를 하고 , 나는 승이의 옷을 벗겨 물티슈와 생수로 박박 씻겨냈다. 그리고는 차에 늘 싣고 다니는 담요로 아이몸을 감아 둘러놓고 차에 태웠다. 아이건사를 마치고 그제야 용은 무얼 하고 있나 슬그머니 본다."아우진짜, 너 승이 너 정말 아빠가 차에서 핸드폰 하면 안 된다고 했었지, 너 왜 그래 정말 너 , 야. 한 번만 더 차에서 핸드폰 하면 정말 혼낼 거야. 야. 승이 대답해."
용은 아이들에게 여간해서 화를 내지 않는다. 게다가 둘째 아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아이의 입안에 혀처럼 구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의 입에서는 쉼 없이화가 쏟아져나온다. 흡사 방언이 터진 듯 보인다. 나는 몸을 숨기기 위해서 황급히 차 트렁크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낯선그의 모습에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기 때문이다. 그의 방언은 차시트 청소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사그라들었다.
"그냥 집에 가자!"그의 양쪽 눈썹은 만세를 하듯 한껏 치켜 올라간 모양새다.
"여기까지 와서 왜 집에 가. 에버랜드 가서 옷 사서 입히고 커피 마시고 놀다 가자."여태 구매해 본 적은 없었다.
하나 에버랜드 내 아동복매장엔 할인을 큰 폭으로 하는 매대상품 따위를 많이 진열해 둔다. 이것을 봐왔기 때문에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둘째 아이는 너무나 해맑았다. 큰아이와는 다르게 예민함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야말로 무던하고 유순한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일 테다. 이런 아이에게 뒷좌석문을 열었을 때 괜찮냐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미안함이 이제야 뒤늦게 밀려온다.
"이제 속이 시원하지? 차에서 핸드폰 한건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그렇지만 엄마.아빠진짜 너무 힘들었어. 다음부터 속이 좋지 않으면 제발 미리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어. 재밌게 놀다 가자. 그런데 승아 이제 차에서는 핸드폰 금지다!"
예민하고 다소 까칠한 아이와 무던하고 유순한 아이를 기르며 나는 오늘도깊은숨을들이마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