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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Apr 05. 2023

 네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거든


"당근"  열흘쯤은 된 거 같다.

큰아이의 핸드폰에서 들리는 반복되는 소리, 내 귀엔 너무 거슬리고 달갑지 않다. 대체 언제부터 직거래 커뮤니티를 사용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이가 초등 5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엄격하게  그의 생활을 체크하며   통제해서 기르고 있다. 아이는 아주 어린 시기 때부터 자기주장이 분명한 편이었고 , 엄마 말을 착실히 따르는 아이가 아니었다. 기질적으로 그랬다.

 실은 그런 까닭에 아이를  초장부터 확실히 잡아서 소위 길을 들여야겠다는 얄팍한 생각 했던 것이다.

 돌이켜 보니 나의 양육방식이 달랐다면 지금 우리 사이 조금 더 돈독하진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해기도 한다.


 더 늦기 전에 관계를 개선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미뤄 두었던 큰아이의 스마트폰을 개통해 주고 적정한 선에서 핸드폰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 물론 그 적정선 이란 건 원만한 협의가 아니라 오로지 나의 기준에 허용되는 수준이었을 테지만,

올해부터는 아이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기 위하여 그가 하는  핸드폰 활동에 대해서는 이를테면 검열 따위를 한다든지 이러한  제약을 일절  하지 않기로 했다.


 열흘 전, 아이는 뒷바퀴에 브레이크가 없는 선수용 비슷한 26인치 큰 자전거를 사들여 왔다. 그것도 나 몰래 말이다.

뒤늦게 사실을 알고 아이를 적절한 선에서 통제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고작 13살 아이가 낯선 사람과 만나 돈을 주고받으며 거래를 하는 것을 누군가는 손가락질하진 않을까, 이런저런 보잘것없는 생각에 조바심이 생겨 신경질이나 있었지도 모르겠다.

대체 무엇 때문에 아이의 자전거 거래 한 번에  그토록 불같이 화를 내고 안달복달했던 것일까 ,

마음을 진정시키고 "석아, 이 자전거는 네가 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뒷바퀴에 브레이크가 없는 자전거라니, 다른 건 몰라도 안전하지 않은 건 절대  허락할 수가 없어. 그리고 이것 봐라 네발이 땅에 닿지도 않잖아."

내 말을 듣고 어쩐 일인지 아이는 순순히 타지 않겠다는 말을 건네준다.



이런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할 지경이었다. 눈물 나게 고마웠다.  청개구리동화의 아들 같은 아이다. 오죽하면 그 동화책을  사운드북까지 사다가 귀에 딱지가 앉기 직전까지 들려주었던 시절이 있었을까, 훗날  내 시신 화장을 시켜달라고 할 참이다.그런데 아이가 혹시 청개구리처럼 물가에  묻어놓는 것아닐까 쓸데  상상까지  해가며 기르는 내내 애간장을 녹였 때문이다.



 아마도 내내 아이에게  모질고 고약한 엄마는 아닐 것이다. 이쯤에서 나도 한 발자국 물러서 "이 자전거를 그럼 버리지 말고  네가 다시 팔아보고 , 그다음에 너에게 맞는 자전거를 찾아 사도록 해보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한데 아이는  생각보다 장사에 수단이 있는 듯 보인다. 자전거를 금세 꽤 괜찮은 가격에 흥정해 낸 것이다. 자전거 안장이 낮다는 고등학생 구매자의 이야기에 낯가림이라곤 눈곱만큼 없는 아이는 근처 자전거 매장으로 그 형을  이끌어 불편함을 바로 해소해주기 까지 하며 매우 만족스러운 거래를 이끌어 냈다고 한다.


 나는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관계는 내게 몹시 지치고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직거래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인터넷커뮤니티 또한 해본 적이 없다. 이런 내가 브런치에 글을 써서 발행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용(남편)은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소스라치게 놀랐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내 아들이지만 너무 다른 결의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다.


 어제저녁 태권도 수업을 마치고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엄마, 며칠 전 보여줬던 자전거 기억나? 그거 사도 돼? 내가 가지러 못 간다고 말씀드리면서 가져다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렸더니  아저씨가 직접 주신다고 했어. 그래서 사려고 그러는데 괜찮을까?"

이 말에  어이없게도  다시 한번 감동했다. 그토록 당근마켓거래에 불같이 화를 냈던 나는 대체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다.

쿨하게 그러라는 대답을 해주고 나니 이토록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것인가,  진즉에 내 잣대를 아이에게 들이대는 것을 피했어야 했다. 아이는 그분께 " 먼 곳까지 자전거를 가져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인사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나와 아이는 기질적으로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것을 인정하기까지 퍽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답답한 먼지를 씻겨내릴수 있을 만큼  꽤나 유난스럽게 봄비가 내리고 있다.

시원한 빗줄기를 바라보며 그간 내 마음보다 어쩌면 더 답답했을지도 모를  아이의 억울함.그것이 씻겨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실컷 젖게 해주고 싶단 생각을 해본다.

때로는 본인의 삶을 준비하며 직접 겪으며 배울 수 있도록 지켜봐 줘 보는 것도 나쁘지 만은 않을 듯하다. 

   그리고  아이가  지쳐 이제 그만 비를 피하고 싶을 때면  그게 언제든 망설임 없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는 건 어떨까.


그런데 있잖아. 그 당근 소리 좀 안 나게 할 수 없겠니? 삭제하라고 강요는 안 할게. 대신 앞으로 엄마 논해서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어. 엄마는 사실 아직 네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많이 불안하거든 ,

 아무래도 아이보다 내가 더 문제인 듯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내리는 빗소리만큼 마음만은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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