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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Aug 11. 2023

좋아하지 않고 배길 수 없는  사람


적어도 세 달에 한번 우리 아파트 상가 병원에 간다. 달엔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 그러다 날이 너무  뜨겁다는 핑계까지 찾아내가며. 하루, 이틀  결국엔 열흘이 넘도록 병원에 가는 날을  미루고 말았다.  며칠째  머리가 특별한 이유 없이 아프긴 했다. 어쩐지 오늘 아침에 체크한 수치가 심상치 않은 듯하여 결국 병원에 갔다.  소아청소년과를.


어찌 보면. 지금으로선  특별히 큰 지병이랄 것까지 이야기할  없을지도 모른다. 한젊다면 젊은 나이임에도 생각보다 다소 높은 수치를 보는터. 음, 이건 마치 보이지 않는 시한폭탄이랄까, 방심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질환. 나는 고혈압을 앓고 있다. 무척 심각해진 건 36세 때부터였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매거진. 가늘고 길게 가기로 했다 에서  질병에  대처하며 살아가고 있는.  내가 생각해도 조금 딱한  심정을 써둔 글이 있다. 보통 여간해야 성을 내는 법이 없는 나지만. 유독 달가워할 수 없는 말이 있다. 친하다는 명분아래  건네주는 어떠한 말들.


이를테면 , 또 아파?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여기 있네.


이런 말들은 나를 꾀병 혹은 엄살쟁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처음에는 웃어 넘기지만, 어느 순간 듣다 보면 깊은 상처가 되어 버리고 만다. 아프고 싶어 아픈 게 아닌 건  물론  거니와, 누구보다 병원과 가까이 하는 사람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혈압약을 매일 복용해야 하나 , 처음으로 일주일 정도를 미뤘다. 압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부터 였을테다. 우습게도 건강염려증이 생 터라. 아침과 저녁. 주기적으로 혈압체크를 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항목의 소변검사,  게다 초콜릿을 무척 좋아하는터라 잊을만하면 가정용 혈당 체크까지 하고 나서야 비로소 직성이 풀린다. 이럴 땐 한시름 놓인다고 해야 하려나,

그러하니 정기검진이야 말할 것도 없을 터. 나름 건강을 챙겨 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는 몹시 피곤한 삶을 아가고  있다.


분명 어제 까진 체크한  혈압이 그럭저럭 양호한 편이었다. 어젯밤 오랜만에 김치찌개를 냉면 대접으로 떠서 먹은 뒤, 늦게까지 잠을 통 이루지 못했던 탓이었을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혈압계 숫자를 확인 후. 놀란 마음으로 소아과에 빠른 걸음 재촉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지난주에 온다고 그랬잖아. 얼굴색이 너무 안 좋네. 약을 며칠이나 안 먹은 거야, 나오기 힘들면 나더러 약국에라도 처방전 내려달라고 전화를 하지 그랬어. 혈색이 말이 아니야." 

영이언니와 원장님 드릴 커피,  출산을 앞둔 간호사 선생님 드리려고 따로  준비해 간 바나나우유를 데스크에 내려놓기 무섭게였다. 영이 언니의 걱정이 담긴 쓴소리를 듣게 된 건  말이다.


언니와의 인연은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가 소아과에 처음 진료를 보러 갔던 날. 큰아들 석이가 당시 3살이었는데 , 그 무렵 아이들 보통 소아과를 제집처럼 들락거릴 때가 아니겠는가, 한데 그날 본 그녀. 어쩐지 어딘가 특별한 간호사 선생님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세 번째 진료방문이었을 터였다.


"석이 어머님. 어서 오세요. 석이는 오늘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 우리의 얼굴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반가이 웃으며 아이이름을 망설임 없이 불러주는 게 아닌가. 진료대기를 하며 보았던 간호사 선생님의 모습은 확실히 남달랐다. 수십 명의 환자아이들 이름을 줄줄 외고, 어찌나 살갑게 정성으로 대해주는지. 그 친절함과 살뜰함에 빠지고야 말았다.  그 날이후, 어쩌면 난 원장님의 진료 보다도. 간호사선생님이 자꾸만 궁금해져서 소아과 문턱이 닳을 만큼 드나들고야 말았던 듯하다.


그러던 중 , 석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의 아들이 우리 큰 아이와 동갑인 건 알고 있었다. 한데 같은 학교, 게다가 같은 반 친구가 되다니. 두 아이들은  처음 본 사이였지만. 특별히 친하게 지내라고 권하지 않아도 이내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6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2주 전. 고맙게도  언니는 , 개학하기 전 석이와 승이를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대략 0.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꺼이 초대에 응했다. 무려 이틀씩이나, 첫날은 언니네 아이두명, 우리 집아이 두 명 ,  네 명의 아이를 이끌고 극장에 다녀왔다고 한다. 게다가 다음날은 아이들을 데리고 형부와 함께  용인에 위치한 어느 계곡까지 다녀왔다는 터.

몇 년 전, 언니와 저녁식사를 하며 술을 한잔 하면서 나눈 이야기는 이러했다. 영이 언니는 환자이자 보호자인 사람과 개인적으로 인연을 이어간 이런 특이한 경우는 처음이며 , 보통은 일정 거리를 두고 지낸다는 터였다.


혈압약 처방전을 받아 들고,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손엔 하얀 가방이 들려 있었다. 뜨개질에 취미를 가진 언니가 가방을 떠 보았다며. 건네준 예쁜 가방.

집에 오자마자 잠옷 위에 주책맞게 이리저리 메 본다. 찰떡같이 예쁘다. 뜨개가방은 물론이거니와. 언니의 손길이 담긴 가방이라 더욱 곱고 정이 간다. 주말 강원도에 내려갈 때 예쁘게 메고 갈 테다.


활발한 듯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거리를 두고. 낯을 무척이나 가리는 나라는 사람이. 반해버린 사람.  그를 좋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여전히 나는 십 년 전부터 어쩐지 답지 않게 진심으로 그 곁을 맴돌며  질척대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도 나더러 가끔  예쁜 동생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걸 보면 , 마냥 짝사랑은 아닌 듯하여 더욱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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