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사탕 Oct 25. 2023

오늘이 될 수 없는 내일

"엄마. 나 학교 마치고 가는 중인데 나와주라."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서."

"엄마 지금 뭐 하고 있어서 못 나가. 그냥 좀 와."

"힝. 오면 안 돼? 조금만 놀다 가고 싶은데."

"미리 말하지. 옷 갈아입고 하면 시간이 꽤 걸리잖아. 다음에 놀자. 오늘은 그냥 집에 와서 간식이나 먹고."

  둘째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와 한참실랑이를 하다 보니 내가 뭐가 그리 바쁜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번 아이의 말에 항상 나중과 다음으로 미루곤 했다. 도대체 그 나중과 다음은 언제 오는 걸까?


 나중과 다음은 귀찮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오늘도 귀찮았다. 옷을 갈아입고 나가는 것도 그렇고 밖에서 눈이 부셔서 헤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다신 할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나오라는 말도, 놀아달라는 말도 하지 않을 텐데 싶었다.

"알겠어. 엄마가 옷 갈아입고 금방 나갈게."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바깥 햇볕은 셨다. 밝은 빛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서 천천히 걸었다.


 멀리서 아이가 해맑은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뛰어왔다. 아이의 가방을 받아 들어 한쪽 어깨에 메고 놀이터로 향했다. 간간히 부는 바람을 따라 낙엽들이 촤르르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놀이터는 한산했다. 햇살이 비추는 그네에 나란히 앉았다.

"엄마. 갑자기 어두다. 그렇지?"

"그렇네. 구름이 지나갈 땐 해가 가려져서 그래. 하늘에 구름이 많아?"

"응. 엄청 많아. 엄청."

"와. 예쁘겠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그네에서 폴짝 뛰어내린 아이가 시소로 달려갔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아이에게선 빛이 난다.


 어쩌면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나중과 다음은 결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이 순간은 언제나 존재한다. 지금 이 시간을 사랑하면 따스한 가을햇살과 낙엽이 구르는 소리, 해맑은 아이의 모습이 모두 내 것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 어떤 약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