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흐름이 보인다.
아기도 걸음마 하기까지 수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단계를 거치듯,
노인도 그런 아기로 돌아가기 위한 단계가 있는 듯 싶어진다.
엄마가 처음 치매 증상을 보이셨을 땐
그냥 '깜박깜박' 하시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아무렇지 않게
엄마의 그런 모습을 지적하고 웃음으로 넘겼었다.
치매는 노화로 오기도 하지만,
우울한 마음이 가득 차 있을 때 부딪히는 강한 충격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 엄마의 치매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50대의 첫발에 병을 하나씩 나눠갖던 우리 부모님.
아빠는 '백혈병'으로, 엄마는 '위염'으로.
엄마가 치매가 되기전에는 아빠가 더 심하셨기에
온 가족은 비상이 걸렸고,
그런 아빠를 챙기기 위해 엄마의 노력이 필요했다.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것 같아
자식들이 돈을 모아 제주도 여행을 보내 드렸던 기억도 난다.
백혈병이 심하다 보니 수시로 입원과 골수 검사를 진행했다.
음식 냄새를 괴로워 했던 아빠로 인해 가족은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작은 암절을 찾아가 점도 보고 굿도 했었다.
그런 엄마도 심적으로 힘드셨던걸까?
엄마는 위염에서 당뇨가 생겼고, 그 당뇨는
합병증으로 혈압과 뇌졸중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 보니 노인 분들은 걸음걸이 하나에도 건강이 보인다.
엄마가 뇌졸중이 오기 전 증상이 그랬다.
바르게 걷기 보다는 발을 질질 끌고 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다리의 통증으로 병원 갔더니 판정을 받게 된 뇌졸중, 그리고 치매.
그러다보니 엄마가 아빠를 챙기던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게 된 것이다.
아빠가 엄마를 보호하게 되는 입장.
그 입장도 길어지니 아빠 역시 백혈병에서 혈액암으로 악화되었다.
결국 서로 좋지 않은 상태로 의지하는 하루하루를 보며
나는 버거움을 크게 느꼈다.
그런 아빠도 버거워 보일 때마다
자식들은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자고 해 보지만, 아빠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이유는 큰아버지의 경험 때문이다.
아빠의 형인 큰아버지도 큰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낸 후
어느 날 방문해 보니 침대에 팔과 다리가 꽁꽁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빠의 심정 왜 모르겠는가
당연한 것이다.
단, 그 위기 속에 서로만 의지하며 지내시는 게 안쓰러운 것이다.
며칠 전, 친정집에 가보니 아빠는 안 계시고 엄마만 거실에 앉아 계셨다.
엄마는 내게 다가와 반기신다.
딸이라는 걸 정확히 기억하시는 건 아니지만,
자주 보는 사람이기에 친근감을 느낀 것이 아닐까?
나는 아빠에게 전화했다.
"어디세요?"
"집에 와 있니?"
"그럼요."
"다행이다 할멈 혼자 두고 나와 걱정했는데.
나 2시간만 친구들과 놀고 가고 싶어.
그동안 엄마 좀 부탁해."
"네~알았어요. 잘 다녀오세요."
"엄마, 딸하고 우리 그동안 재미있게 놀까?"
"난 그런 거 몰라."
결국, 같이 숫자도 세어보고 좋아하시는 애국가에 곰 세 마리까지 손뼉치며 놀았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놀러 가신 아빠는 돌아오셨고 같이 저녁을 먹은 후에 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잘 왔다는 전화를 드리고
아빠는
"그래 엄마랑 낮에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하고 전화를 끊으신다.
매일매일 24시간 집에서 엄마를 케어 해야 하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잠시라도 숨 쉴 틈을 드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