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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nk Dec 26. 2022

Sidi Kacem 08

Sidi Kacem의 분위기는 무척 활기차 보인다. 고층빌딩은 없지만 시장과 상업지역이 몰려 있는 구역에는 교통량이나 통행 인구도 꽤 많고 꾀 다양한 업종의 비즈니스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대낮에도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대형 티브이 스크린을 통해 축구를 구경하고 있다. 모로코 축구팀도 실력이 상당하다. 그만큼 국민들의 인기가 높은 스포츠인 것을 실감하게 된다. 군데군데 많은 노점상이 보이는데 그들이 파는 과일들을 보니 군침이 돈다. 여름날씨가 뜨거운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과일들은 당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한쪽 코너에는 식당들이 밀집해 있다. 바베큐 식당에서는 고기를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식당과 함께 있는 정육점에서 고기를 주문을 하면 옆의 식당에서 숯불에서 즉석으로 구워준다. 양고기가 유명한 이곳에서 이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지. 좀 더 마을을 탐방하고 사람들과도 접촉도 하고 저녁에 다시 찾아오기로 한다. 식당 주인이 계속 와서 앉으라, 먹어보고 가라, 어떤 메뉴를 원하냐 손짓을 하며 뭐라 뭐라 한다. 저녁에 먹으러 다시 오겠다 나도 몸짓 발짓으로 대답을 건넸다. 


마을을 돌다 보니 해도 서서히 저물어 가 하루 묵고 가기로 정했다. 이제 슬슬 간단히 묵고 갈 호텔을 찾아보는데 쉽게 나타나지 않고 같은 길을 돌고 도는 느낌이다. 그때 누군가가 내게 중국인이냐 멀리서 물어본다. 길 건너 몇 학생들이 나를 바라보며 물어본다. 한국인이라 했더니 반갑게 길을 건너 다가온다. 너무 반갑게 다가와 한국드라마와 노래를 좋아한다는 10대 후반의 사춘기 학생들.... 다시금 K팝, K드라마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다행히 학생들이 영어를 조금 해 길거리에서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Sidi Kacem에 학교가 있어 멀리 다른 마을에서 통학을 하고 있단다. 요즘은 대부분의 이슬람권 젊은이들도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고 우리나라의 카카오톡에 버금가는 WhatsApp이라는 채팅앱을 많이 사용해 만날 때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교환하곤 한다.


날이 다소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지난번 만났던 무하메드 아저씨 같은 분이 은근 생각난다. 알라의 축복을 기다리며 이방인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대접하는 사람을 또 한 번 만났으면 하는 나의 과도한 기대는 그냥 기대일 뿐이었다. 동네를 헤매다 겨우 호텔을 찾았는데 남은 방이 없단다. 관광객 전혀 볼 수 없었던 이 마을의 호텔에 방이 없다는 게 좀 의아스러웠다. 동네를 돌고 돌다 보니 방향감각을 잃어 왔던 길을 또 돌아온다. 다행히 이 동네에서도 인터넷이 연결이 돼 호텔을 조회해 겨우 두 번째 장소를 찾아갔다. 두 번째 호텔도 남은 방이 없단다. 인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숙소로 호텔을 사용 중인지 아니면 집 대신 단기간 머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 호텔에 들어설 때 이미 남은 방이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호텔에 방이 없으면 밤늦게라도 다시 카사블랑카로 돌아가야 하는 부담감이 다가와 어떻게든 하룻밤을 머물 장소를 찾는다.  


세 번째 호텔이 나타났다. 허름한 구석에 위치한 조그만 호텔에 다행히 남은 방이 있었다. 방을 둘러볼 기회도 기회도 없이 예약을 했다. 하룻밤에 대략 16000원($13)이니 대단한 기대감 없이 방으로 올라갔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에 방에서는 눅눅한 곰팡이 냄새도 올라오고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열면 밖의 소음들이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온다. 창문에는 방충망조차 없어 모기나 나방들이 날아 들어오지 않을까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짐을 풀고 침대에 드러누우니 낮에 먹었던 아바카도 주스가 장을 자극하는지 슬슬 아랫배에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화장실을 가니 오랜만에 보는 쪼그리고 일을 보는 재래식 좌변기이다. 호텔에 재래식 좌변기라니 당황도 되지만 하루 간단하게 머물다 갈 거니 그리 문제 되지는 않는다고 긍정의 생각을 하는데 휴지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공용화장실을 찾아갔으나 그곳도 휴지가 보이지 않는다. 예약한 방에 비치돼있나 뒤져 보아도 휴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랫배에서 신호는 점점 거세지고 휴지는 어디를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호텔 로비로 내려가 직원에게 물어보니 손으로 하는 거란다. 경악스럽다. 외국에 나와서는 나의 개인생활 패턴이나 스타일은 양보하고 현지의 문화를 따라가는걸 나름의 원칙으로 세웠지만 손가락으로 변을 닦는 건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직원에게 남은 휴지가 있으면 달라 애원도 해보고 나는 한 번도 손으로 밑을 닦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했지만 남은 휴지가 없고 이곳 문화는 손으로 해결을 하는 거란다. 잠시 손가락 사용을 고민해 보았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 호텔을 찾아올 때 조그만 슈퍼마켓을 본 것이 기억나 약 200m를 뛰어가 휴지를 한 봉지 사 왔다. 이 괴상한 호텔의 화장실 사건은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났고 비상용 화장지를 준비하지 않은 나를 탓하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어두움이 내려앉았다. 저녁을 먹으러 호텔 밖으로 나왔다. 저녁이 되니 카페와 식당은 더욱더 사람들로 붐빈다. 낮에 저녁 먹으러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바베큐 식당을 찾아가려 했지만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아 정육점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비슷한 곳으로 들어갔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메뉴판도 없고 주문이 쉽지가 않다. 옆테이블에서 양갈비를 먹는 손님이 있어 똑같은 걸 먹고 싶다고 대신 주문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주문을 해준다. 

즉석에서 갈비를 손질해 가게 앞 숯불 화덕 위에 올린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꽤 많은 걸음을 걸었다. 배가 고프다.

식당 바로 건너편에는 야채가게가 있어 토마토와 오이를 사 오니 식당에서 먹기 좋게 씻어서 손질을 해 주어 고기와 함께 샐러드처럼 먹었다. 숯불에 구운 양고기는 잡내도 없이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간다. 역시 모든 메뉴에는 모로코 전통빵이 올라온다. 양고기를 향신료 가루에 찍어 먹으니 정신없이 들어간다. 빵과 함께 한 접시를 싹 비운다. 어두운 저녁까지 모두가 분주하고 활기차 보인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카페가 여러 군데 보인다. 호텔에서 가까운 카페에 들러 후식으로 개운한 민트티를 주문하여 마신다. 오직 남자들만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커피나 민트티를 마시고 있다. 모두들 대형 스크린을 통해 유럽축구리그를 구경하며 탄성을 질러댄다. 모로코 사람들이 응원하는 특정팀이 2골을 연달아 넣으니 카페가 떠나갈 듯 환호를 질러댄다. 서로 모르지만 같은 팀을 응원하는 것 만으로 동질감이 생기는지 나 역시 분위기에 편승해 박수를 쳤더니 나를 보고 엄지를 올리며 몇몇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한국사람이라 하자 함께 사진을 찍자고 다가온다. 편하고 즐거운 저녁이다. 


호텔로 들어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낮에 땀을 많이 흘려 안 씻고 잘 수가 없었다. 공용 샤워장은 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크기이다. 불을 켜니 아주 어두운 전구 하나가 달려있지만 여전히 캄캄하다. 환기시킬 창문도 없고 환풍 시설도 없어 쾌쾌한 냄새가 가득하다. 직원이 샤워실이라 했지만 그냥 수도꼭지 하나 달린 다용도실이란 말이 정확할 것 같다. 바가지에 물을 받아 끼얹어 가며 겨우겨우 힘든 샤워를 마쳤다. 찬물밖에 나오지 않지만 이런 호텔에서 뜨거운 물을 바라는 건 건방진 사치 같았다. 샤워라도 할 수 있는 공용 다용도실이 있다는 게 감사하지 않은가....

호텔 창문에 커튼이 없어 불을 끄면 바깥 가로등 빛이 방안의 하얀색 벽을 반사해 눈이 부시다. 아니 대체 이 호텔 에러의 끝은 어디인가?  어차피 하룻밤만 대충 지내다 떠날 여행객에게 이런 괴상한 경험도 있어야 추억도 남고 할 말이 더 많이 생기겠지?  이 싸구려 괴짜 호텔에서 Sidi Kacem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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