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설쳤다. 이래서 가격이 조금 들더라도 잠자리는 깨끗하고 편안한 호텔을 골라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투숙한 호텔이었지만 더워서 창문을 열고 잤더니 바깥의 소음과 방안을 치고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리고 꾸란 읊는 에잔방송에 일찍 잠을 깼다. 서둘러 짐을 챙겨 호텔을 나왔다. 참 혼란스러운 호텔 체험기였다.
Sidi Kacem의 아침은 전날 오후와 다르게 차분해졌다. 아침식사 카페와 슈퍼마켓 외엔 아직 많은 상점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카사블랑카에서 보았던 정겨운 아침 풍경이 이곳에도 펼쳐진다. 모로코식 팬케이크라 할 수 있는 Msemen이라는 빵을 커다란 팬에 구워 카피나 차와 함께 판매하는 카페들도 눈에 띄고 책가방을 메고 등교를 하는 어린아이들도 눈에 띈다. Msemen 팬케익 굽는 모습을 구경하니 테이블에 있는 손님들이 맛 좋다며 와서 앉으라 손짓을 한다. 가볍게 아침인사를 하고 조금 더 다른 곳이 있나 걸어내려 가 본다.
몇 블록을 걸어 내려가니 분위기가 다소 한적해진다.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도 많지 않아 부랴부랴 한 군데를 들어갔다. 지나쳐온 카페들과는 달리 펜시하고 깨끗한 분위기에 최신 터치스크린의 Kiosk 스타일의 주문 방식이다. 약간은 찌든 때가 묻어 있고 허름해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맛집을 지나쳐 온 게 아쉬웠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내려왔고 카사블랑카로 돌아갈 기차역과 가까워 들어갔다. 오믈렛을 주문했는데 정체불명의 재료들의 조합과 싸구려의 느낌이 나는 정말 묘한 맛이었다. 미국식 아침식사를 흉내 내는 카페인 듯한데 모로코 스타일도 아니고 미국 스타일도 아닌 정체성이 사라진 실험적 메뉴들이었다.
전날에는 모두들 생업전선에서 일을 하느라 바빠서였을까? 카페에 앉아 간단한 티와 빵을 즐기는 아침의 모로코 사람들은 마치 전혀 다른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어설픈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기차역으로 향하는 동안 길거리의 카페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다들 친근하게 인사하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반기며 테이블에 와서 차 한잔 하라 손짓을 한다.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니 거부감 없이 모두 흔쾌히 응해준다. 모로코인들의 마음을 모르겠다. 때로는 너무 다정한 듯, 때로는 너무 수줍고 무뚝뚝한 듯.....
호텔에서 20여분 걸어서 기차역에 도착했다. 다시 카사블랑카로 돌아가는 티켓을 끊고 기차를 기다린다. 아쉬움이 남는 동네이지만 또 더 오래 머물기에도 애매한 곳이다. 모로코 서민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Sidi Kacem에서 또 한 번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기차를 타고 다시 카사블랑카로 돌아간다. 오전 시간임에도 만석인 기차 안에는 각자의 시간과 생각과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수십억의 인구 중 이 먼 나라에서 눈을 마주치고 기차의 같은 칸, 바로 앞자리, 옆자리, 혹은 뒷자리에 앉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 흐름 속에 묻혀 우리는 흘러가지만 달리 생각하면 수십억의 인구 중 이 멀고 먼 모로코라는 나라에서 서로를 보고 만났다는 건 기적이 아닐까?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지난 시간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기차 안 나의 주변에 앉은 사람들에게 지금 이 시간은 그저 평범한 일상, 혹은 자주 있는 이벤트이겠지만 나에게는 다시 접할 수 없는 시간들일지도 모른다.
기차표에 인쇄된 내 좌석을 찾아가 앉으니 앞에는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눈빛 한번 주지 않는 차가운 모녀가 앉아 있었다. 모두들 핸드폰만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일반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한 시간쯤 지나 대도시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다시 새로 사람들이 기차에 오른다. 이번엔 마음씨 좋아 보이는 노부부가 앞 좌석에 앉았다. 결혼 40여 년 차라는 이 부부는 나와 같은 기차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녀들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들 한 명은 캐나다에서 직장을 잡아 살고 있다고 한다. 아랍어 방송을 알아듣기 힘들어 부탁을 하니 자기를 따라 하차하면 된다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기차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이동할 때도 내려야 할 역을 정확히 알려주신다. 헤어질 때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고마운 할아버지시다.
나이를 좀 먹고 언젠가부터 인연이란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평생 갈 줄 알았던 지인들과 시간이 지나면서 멀어지고 묘연한 사이가 되어가는 것을 느끼며 허탈함도 밀려오고 나의 타인과의 관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들 모두 그런 묘연한 인간관계를 갖고 살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 반대로 함께 가는 인연은 엄연히 존재한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은 붙잡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보내고 놔줘야 할 대상인 거다. 먼 나라 아프리카 대륙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흘러 스쳐가는 인연들이지만 이방인에 대한 몇몇 이들의 따뜻한 모습들은 내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한다.
카사블랑카로 다시 돌아왔다.
점심시간이 되니 출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