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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 Mar 12. 2023

아빠가 끓인 냉이 된장국

놀랍도록 변한 아빠의 모습

 집안에 퍼지는 냉이 냄새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봄이 다가오고 있기도 하니 언젠가 냉이로 요리를 해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기는 했었는데, 혹시 냉이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꿈을 꾸나 싶었다. 냄새를 따라서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가보니 아빠의 뒷모습이 보였다. 열심히 냉이를 손질하고 두부를 썰고 있는 뒷모습. 이제는 제법 주방일에 익숙해진 것 같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냉이도 손질할 줄 알고.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내가 일어난 것을 알면 아빠가 은근슬쩍 하던 일을 나에게 넘길 테니.


 자는 척을 하다가 수저 놓는 소리가 들릴 때쯤 다시 나갔다. 마치 지금 일어난 척을 하면서. 얼핏 보기에 제법 그럴 듯 한 냉이 된장국이었다. 갓 한 밥을 한 공기씩 퍼서 식탁으로 나르고 냉이 된장국도 국그릇에 담아 차려냈다. 보기에는 좋지만 맛이 어떨는지. 그동안 아빠가 했던 요리는 에그 스크램블이나 토스트, 계란 프라이 같은 것들 뿐이어서 맛이 은근히 걱정 됐다. 엄마는 오랜 항암치료로 인해 입이 예민해졌다. 입 안의 감각이 예민해진 만큼 맛에 대한 감각도 예민해졌기 때문에 너무 짜거나 너무 싱거워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음식은 몇 입 먹지 못한다. 

 


 첫 입에 의심이 들었다. 이걸 아빠가 만들었다고? 엄마가 도와준 것 같은 맛이 나는데 엄마는 이제 일어나서 침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엄마도 한 입 맛을 보더니 꽤나 놀란 눈치였다. 냉이향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구수한 된장 맛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넣은 두부,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딱 맞는 간이 나와 엄마의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늦게 일어날 때 몇 번 아침상을 차리더니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다. 이렇게 맛있는 아침 식사도 오래 걸리지 않고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엄마가 아프기 전, 아니 아프고 난 후에도 꽤 오랫동안 아빠는 부엌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60대의 한국 아저씨가 대부분 그러하듯 아빠 또한 부엌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빠가 부엌에 오는 일은 딱 세 가지 경우였다. 물을 마시거나 밥을 차려줄 사람이 없을 때 라면을 끓이거나 술을 꺼내러 냉장고에 오는 경우. 놀라울 정도로 이 세 가지 경우가 아니면 아빠는 부엌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가끔 용암 같은 분노가 치고 올라올 때도 있었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빠는 바빴고 바쁜 만큼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으니까. 그러나 이런 행동들이 엄마가 아프고 난 후에도 이어졌을 때는 참기가 어려웠다.


 엄마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아빠의 밥을 챙겼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다리로 간신히 버티면서 부엌에서 밥을 하고 반찬을 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부엌에서 마주친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나는 짐을 내려놓는 것도 잊은 채 한동안 서 있었다. 아빠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TV는 저렇게 잘 보면서 엄마의 모습은 안 보이는 건가? 분노의 감정을 넘어 어이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치료를 받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이런 식으로 가다간 엄마가 더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성향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빠에게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아빠가 엄마를 힘들게 한다고.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만들면 우리는 엄마를 일찍 떠나보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직설적인 말에 아빠는 화를 내면서 자리를 피했지만 내가 했던 말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의 말에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그날 이후 아빠는 엄마가 부엌에 있으면 기웃거리며 도와줄 것이 있는지 물었다. 아빠가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이, 엄마가 응급실에 입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며 죄책감을 느꼈던 나처럼 아빠도 그랬나 보다. 사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때 당시 아빠와 나는 엄마가 정말 우리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엄마는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은 후 한 달 정도 입원을 했다. 퇴원 후 집으로 왔을 때 아빠는 엄마의 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 말라서 엄마의 몸은 갈비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앙상해져 있었다. 힘이 없어 옷도 갈아입지 못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아빠는 굳은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아빠는 부엌으로 들어왔다. 아주 서투른 솜씨로 만들어 낸 질척한 토스트와 투박하게 깎은 사과가 아빠의 첫 작품이었다. 차리면서도 민망한지, 머쓱해하며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는 아빠의 모습이 귀여웠다. 솔직히 맛은 참 애매했지만 엄마와 나는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아빠가 부엌에 있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늘어난 시간만큼 요리 실력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나름 고난도의 요리인 냉이 된장국도 끓여낼 정도로. 엄마를 생각하고 이해하는 마음도 늘어난 요리 실력만큼 자라나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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