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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 Aug 02. 2023

별 것 아닌 들기름 막국수

간편하고 단순한 들기름 막국수와 보석함 정리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날씨가 요 근래 계속되고 있다. 몰아치듯 쉴 새 없이 비가 쏟아지는가 하면 금세 비구름이 걷히고 찌는 듯한 더위와 타버릴 듯한 햇볕이 쏟아진다. 한국도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점점 사실로 다가오는가 보다. 일기예보조차도 예측하지 못하는 날씨의 급격한 변화가 가끔은 감당하기 버겁다. 특히나 나처럼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에게는 더욱 버겁게 느껴진다. 영원할 것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몸도 마음도 한없이 가라앉고 쨍쨍하게 햇볕이 내리쬐는 날에는 가라앉은 기분이 조금 괜찮아진다.


 날씨의 영향을 받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다. 요동치는 날씨 탓에 엄마의 감정과 몸 상태도 요동을 쳤다. 비가 몰고 오는 습기 탓인지 아니면 어둠 탓인지. 비만 오면 엄마의 상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급격히 나빠졌다.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을 가누지 못하고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매일이 폭염이라도 맑은 날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폭우가 지나가고 오랜만에 맞이한 맑은 날이 반가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벼운 맨손 체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엄마의 상태도 괜찮아 보였다. 


 맑은 날씨까지는 좋지만 더위는 반갑지가 않다. 여름이라 덥다고는 하지만 불 앞에 서서 끼니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할 따름이다. 점심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되도록 불을 쓰지 않고 점심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여름 요리 레시피를 열심히 뒤적였다. 들기름 막국수 레시피가 눈에 들어왔다. 메밀면에 간장과 들기름, 깻잎과 김으로 만들 수 있는, 단순하면서도 간편한 요리였다. 불 앞에서 면을 삶아야 한다는 난관이 있지만 3분쯤이야 견딜만하지 않을까.



 냉동실에 메밀면이 마침 2개가 남아있었다. 남은 2개를 모두 꺼내고 냄비에 물을 올렸다. 물이 끓는 동안 깻잎과 조미김을 적당한 두께로 채 썰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간장 두 스푼에 들기름 네 스푼과 매실청 두 스푼. 만들다 보니 물이 끓어오른다. 끓는 물에 메밀면을 넣고 3분 정도 끓여준 뒤 찬물에 열심히 씻어주고 얼음물에 잠시 담가두었다. 면을 접시에 둥그렇게 쌓아 올리고 깻잎과 조미김, 통깨를 올린 다음 양념장을 뿌려 잘 섞으니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의 들기름 막국수가 완성되었다. 


 식탁에 올려놓은 접시를 타고 고소한 냄새가 집안 가득 퍼졌다. 고소한 냄새를 따라 홀린 듯 엄마가 자리에 앉았다. 사실 엄마는 면을 즐겨 먹는 편이 아니어서 내심 걱정이 됐다. 머릿속의 여러 걱정들이 무색하게 엄마는 한 그릇을 금방 비워냈다. 


"요리가 날이 갈수록 발전하네. 엄청 고소하고 맛있다."


 전보다 훨씬 간단한 요리였는데도 엄마는 만족스러워했다. 아주 간단하고 별 것 아닌 국수 한 그릇일 뿐인데. 젓가락을 타고 엄마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면을 바라보는 눈빛이 나도 모르게 흐뭇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는데 안방에서 별안간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따라 기력이 넘치는 엄마가 무슨 일을 하시나 싶어 안방 쪽을 바라보니, 열린 문틈으로 바닥에 널려있는 엄마의 액세서리들이 보였다.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 해외에서 사 온 팔찌, 반짝거리는 은반지. 엄마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엄마가 가장 잘 나가던 시절에 사둔 비싼 액세서리들이다. 액세서리이자 엄마의 자존심과도 같았던 것들. 이것들을 정리하려는 걸까? 궁금함에 못 이겨 엄마에게 물었다.


"이거 정리하시려고요?"

"응. 가지고 있어 봐야 자리만 차지하니까. 진짜 쓸 것만 남겨야지. 엄마도 이제 단순하게 살려고."


 거침없이 정리하는 엄마의 눈에 미련은 없어 보였다. 미련도 아쉬움도 없는, 홀가분함. 엄마의 눈동자는 홀가분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안방 서랍 깊숙한 곳에 있는 저 보석들이야말로 엄마를 자유롭게 해 준다고 믿고 있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엄마는 항상 쇼핑을 했으니까. 어쩌면 오히려 저 보석들이 엄마의 삶을 옥죄었던 것은 아닐까. 엄마의 정리를 도우며 단순한 삶을 살기로 한 엄마의 결심을 마음으로 응원했다. 단순하면서도 맛있는 들기름 막국수처럼 엄마의 삶도 단순하지만 충만한 것들로 가득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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