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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Erika Sep 05. 2023

캐나다에서도 차 없이 잘 삽니다

갖고 싶지만 사고 싶지는 않아


물론 돈도 없지만 말이다. 2023년은 재정적으로 최악의 해다. 내년은 나아지길 바라는 희망에서 감히 올해가 최악이라고 해두고 싶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나는 아직도 자가용 자동차가 없다. 그것도 차 없이는 못 산다는 이 광활한 캐나다에서. 10대 때부터 운전을 하고 다니는 게 일반적인 캐나다에서 차 없이 사는 사람은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들 외엔 사실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자동차는 '발'과 같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중교통이 잘 발달된 토론토에서 주욱 살았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었고 차 없는 삶은 늘 불편했다. 하지만 다음 학기 학비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유학생에겐 오래된 중고차조차도 사치였다.


졸업 후에는 이젠 정말 자동차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가 시간에 도시 외곽 곳곳에 무심하게 펼쳐진 자연경관을 보러 훌쩍 떠날 수 없다는 것도 그렇지만, 장을 볼 때도 바구니 안에 음료나 좀 무거운 과일 하나를 담기가 힘들었다. 직장을 구할 때에도 대중교통으로 편하게 닿지 않는 곳은 고려할 수 없었고 자동차로는 20분이면 되는 길을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가며 1시간 반이 넘어 걸려 가기도 했다. 이제는 정말 사야 할 때라고 굳게 마음을 먹고 중고차 신차 가릴 것 없이 예산과 목적에 맞는 모델들을 신중하게 알아보았다. 딜러쉽 몇 군데를 들러 시승을 하고 견적을 받았다. 아무리 오래된 중고차여도 장 본 짐을 실을 수만 있다면, 출퇴근만 가능하다면 충분했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도 세 평 남짓한 반지하 방값과 생활비를 대기에도 빠듯한 삶이 이어졌다. 첫 취업을 했던 회사에서는 수습기간 동안 당시 온타리오 최저시급을 받았는데, 자동차 할부금은커녕 값비싼 캐나다의 자동차 보험료조차 전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덕분에 몇 달 동안 아주 심각하게, 앞으로 어떻게 재정을 꾸리고 돈을 모을 수 있을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제와 재테크를 매일 공부하기 시작했다.


반지하 방을 빼고 회사 근처 낡은 주택의 2층 방으로 이사를 했다. 방세가 줄었고 15분이면 회사를 걸어갈 수 있어 교통비도 들지 않았다. 생활비를 줄여 만들어지는 자금으로 재테크를 시작했다. 그 사이 회사에서도 급여가 올랐지만 여전히 소비는 극도로 절제했고, 버는 족족 투자하는 데에 매달렸다. 매달 눈에 띄게 자금이 불어나는 재미에 고된 생활의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어느덧 신차를 살 수 있을 만큼 돈이 모였지만, 선뜻 자동차를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간 재테크를 하고 경제공부를 해 오면서 사는 순간 감가상각이 시작되는 자동차에 이렇게 힘들게 모은 내 돈을 쓰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되었다.


대신 집을 사기로 했다. 자동차도 분명 필요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지만, 집을 더 갖고 싶었다. 둘 다 동시에 살 수 있을 만큼의 목돈은 없으니 더 갖고 싶은 집을 먼저 사는 게 맞았다. 주변에 차보다 집을 먼저 산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엔 없었다. 만 서른, 토론토에 혼자 살기 적합한 작은 콘도 유닛을 사고 이사를 했다. 나는 몹시 특이한 케이스로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중이다. 물론 집을 사는 과정은 험난했지만, 주거 안정에 대한 갈망이 워낙 컸기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집을 사고 이직을 한 후, 회사까지는 대중교통으로 약 50분 정도가 걸린다. 자동차가 있었다면 15분-20분이면 갈 수 있었을 테니 아침잠을 30분은 더 잘 수 있다. 하지만 많이 붐비지 않는 아침 버스에서 오디오북을 듣고, 킨들을 읽고, 일기를 쓰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운전이나 트래픽에 신경을 곤두세울 일도 없다. 그러니 아직은 이 시간을 조금 더 즐겨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어찌 되었든 캐나다에서 자동차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평생 이렇게 살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조바심에 무리해서 섣불리 큰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 같다. 자동차값은 그렇다 쳐도 보험금과 주유비를 생각하면 사실 아직 꿈도 못 꾼다. 그래도 이런 이유들로 '못' 사는 게 아니라 '안' 사는 거라고 정신승리를 해야 내가 좀 더 행복하다.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대중교통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이런 시기에는 특히나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직은 아침 출근 버스 안에서 하는 일들을 꽤 좋아하니,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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