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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Nov 07. 2023

아들이 오므라이스가 제일 싫다고 했다

빼빼로 때문에 알게 된 첫째의 진심



사건의 발단은 '빼빼로'였다. 둘째가 간식으로 먹은 빼빼로.


빼빼로는 당연히 2개를 샀다. 첫째 하나, 둘째 하나. 사이좋게 1개씩 먹으라고 샀는데 둘째는 먹었고 첫째는 먹지 못했다. 둘이 간식 먹는 시간대가 달라서 그랬다. 둘째는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간식으로 빼빼로를 먹였다. 첫째는 합기도 다녀와 수영 가기 전이라 빼빼로 대신 '배달시켜 놓은' 오므라이스를 먹였다. 합기도 다녀와서 수영 가기 전에 시간이 여유롭지 않은 편이라 든든하게 먹이고 싶었다. 아이도 배고프니까 맛나게 먹었다. 그렇게 첫째 준다고 사다 놓은 빼빼로는 잊혔고 다른 때 챙겨줘야지 했다.




두 아이 잠들기 전, 아이들이 쫑알쫑알 수다를 했다. 둘째가 말했다.


둘째: "오늘 엄마가 사 준 빼빼로 너무 맛있었어. 아까 엄마한테 화내고 심통 부렸던 거 미안해. "


둘째가 수면부족이라 피곤해서 하루종일 심통을 부렸는데,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엄마도 속상했지만 심통 부린다고 화냈던 건 미안해'라고 얘기하려는 찰나에 첫째가 말했다.


첫째: "빼빼로? 나는? 빼빼로 먹고 싶다~~~!!!"

엄마: 너는 대신 오므라이스 먹었잖아. 수영 가기 전에 든든하게 먹이려고 빼빼로 못줬어.

둘째: "오므라이스? 나는? 오므라이스 먹고 싶다~~~!!!"



아니, 이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오가는 대화가 다 먹는 얘기뿐이다. 수면부족에 아침부터 깨우기 너무 힘들어서 일찍 재우려고 했는데 망했다. 둘째는 낮잠까지 재웠는데도 하루종일 피곤해서 심통 부려서 오늘은 꼭 일찍 재우리라 다짐했었다. 첫째도 같이 피곤했을 텐데, 합기도에 수영에 수학문제까지 풀려서 꼭 일찍 재워야지 다짐했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밥 먹이고 씻고 자려고 누웠더니, 하는 말이 하필;;


빼빼로와 오므라이스를 오가는 실랑이 속에 둘째는 또 그놈의 '심통이'가 올라왔다. 둘째한테 아침부터 심통이가 올라와서 유치원 등원도 겨우 했는데;; 일찍 하원해서 낮잠 재우고 학원 보내다 심통이 올라와서 무지 힘들었는데;; 잘 밤에 오므라이스 때문에 또 심통이가 올라왔다.


엄마: "엄마가 우리 환이 하루종일 심통이 올라와서 힘들었는데, 지금 또 심통 부리는 거야?"

둘째: "오므라이스~~ 오므라이스~~ 지금 먹고 싶다고!!!"

첫째: "환아, 오므라이스 맛없었어. 빼빼로가 훨씬 맛있었겠다. 빼빼로 먹고 싶다~~

       나는 오므라이스가 제일 싫어. "

엄마: 오므라이스가 제일 싫어? 언제부터 싫었어? 아까는 잘 먹었잖아?

첫째: 원래 싫어해. 오므라이스




띠로리. 오므라이스가 제일 싫다고?


오므라이스는 요리도 몇 개 할 줄 모르는 '요리 똥손'인 내가 아이들에게 해줬을 때 반응이 괜찮은 음식이었다. 나만의 필살기?라고 생각했던. 그런데 오므라이스를 원래 싫어했다고? 그럼 지금까지 첫째가 거짓말을 한 건가? 엄마 앞에서는 오므라이스 최고라며 그렇게 칭찬을 해줬는데, 맛없어도 엄마 성의를 봐서 얘기해 준 거였나?


티라도 났어야 알았을 텐데 너무 진심을 듬뿍 담은 것처럼 연기(?)를 잘했기 때문에 잘 알지 못했다.


첫째는 애기 때부터 그렇게 음식을 토할 때마다 목구멍이 잘못되었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둘째 때문에 알았다. 첫째가 맛이 없어서 그렇게 토했다는 것을.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서 맛난 음식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다.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첫째가 오므라이스를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며 오므라이스를 열심히 만들어 줬었다. 그래서 반응도 좋았는데;


은연중에 진심이 툭 튀어나와 버렸다. 첫째의 진심을 알아버렸다.




계속되는 실랑이 끝에 이대로 잠 못 잘 것 같아, 둘째한테 내일 아침에 꼭 오므라이스 해주겠다며 어르고 달랬다. 첫째는 오므라이스는 절대 안 먹겠다고 하여 어제 사다 놓고 먹다 남은 갈비탕을 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침에는 웬만하면 요리를 안 하는 엄마는 머릿속에 하나만 생각한다.


'오므라이스'


아침시간에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할게 많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 요리를 쉽게 뚝딱 못하는 요알못은 그놈의 '오므라이스 만들기'가 중대한 과제다.


다진 대파를 썰고 야채는 볶음밥용 냉동 다진 야채를 이용한다. 마늘햄 한 덩이를 다진야채 크기만 하게 썬다. 프라이팬을 불에 달궈 식용유를 붓고 다진 대파를 볶는다. 파 향이 올라올 때까지(요알못이지만 맛을 내기 위해 파기름은 꼭 한다. 안 그럼 못 먹을 맛이 돼버리므로;;) 기다렸다가 다진 야채와 햄을 넣어 볶는다. 다 볶아졌을 때 밥을 넣고 케첩과 토마토스스, 후추를 넣고 볶는다. 간은 보지 않는다. 대충 맞겠지 싶고. (요알못은 간 따위 보지 않는다. 간 보고 이것저것 넣다가 요리가 망하기 쉬우므로;;)


이제 계란을 2개 푼다. 포크로 계란을 곱게 풀어 사각 프라이팬에 올린다. (요알못은 장비가 중요하다. 오므라이스 만들 때 사각 프라이팬은 필수다. 사각 프라이팬 없으면 볶음밥에 계란 덮기 불가능하므로;;) 계란 위에 볶음밥을 올리고 조심조심 모양을 만든다. 그렇게 해서 접시에 곱게 담는다. 담는 과정에서 밥이 튀어나오고 난리 부르스가 나지만 안 보이게 잘 가린다. 모양이 예쁘진 않지만 계란이 터지진 않았다. 이제 위에 소스를 올려야 한다. 오므라이스 소스 만들 시간은 없고, 데미그라스 소스도 없다. 대충 돈가스 소스와 케첩을 뿌려야겠다고 생각한다. 돈가스 소스를 예쁘게 뿌리고 싶어 이리저리 손을 놀린다. 결국 소스는 울컥 나오다 얇게 나왔다 난리다. 그러다 내 엄지발가락에 소스도 묻힌다. (요리 똥손인 엄마는 요리하다 작은 사고들이 많이 일어 난다) 케첩도 양 조절 실패.


그렇게 완성된 내 오므라이스.


초라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뿌듯하다. 내가 아침에 이걸 해냈어. 하는 이 뿌듯함. 집안일도 잘 못하는 엄마는 매일 해야 할 일을 이렇게 적어놓고 하나씩 도장 깨기 하듯 집안일을 한다. 아침에 집안일을 어느 정도 해야 다른 일도 할 수 있는데, 오늘은 앙증맞게 한 개만 동그라미 쳤다. 그래도 맨날 아침 대충 반찬가게에서 사다 놓은 국에 말아 주다 정성껏 오므라이스 만든 거가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내 마음은 뿌듯한데, 아직 요리실력을 더 늘려야겠다. 빼빼로에서 시작된 실랑이에서 툭 튀어나온 첫째의 진심으로 내 요리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아이들이 모든 음식이 싫어지기 전에 맛난 반찬가게에서 맛있는 음식들도 많다는 것을 알려줘야겠다. 그러다 내 부족한 요리를 한 개씩 집어넣어 모든 음식이 맛없는 건 아니라고 심어줘야겠다.



요알못, 요리똥손 엄마의 요리는 계속됩니다.

집밥여신까진 못해도 엄마요리도 먹을 만은 해.라고 생각될 때까지. 쭈우우욱



p.s 아침부터 분주한 엄마를 보며 첫째가 한마디 한다.

첫째: 엄마가 아침부터 열심히 하네. 환이 좋겠다.

엄마: 엄마가 이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한 입만 먹어봐.

첫째: (한 입 먹고는) 훨씬 나. 음식점에서 먹는 것보다.

엄마: 정말? 고마워. 한번 먹으면 정 없데. 한 입만 더?

첫째: (격하게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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