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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Jan 02. 2025

남편의 정직한 떡만둣국


 새해가 밝았다. 2025년 한 해의 첫째 날. 매해 1월 1일은 특별하다. 사람들은 바다나 산에 가서 일출을 보며 새해맞이를 하기도 한다. 애초에 그럴 계획이 없던 우리 집은 늦게까지 잠을 잤다. 오늘은 찜질방이 대목인 날이라 충분히 푹 자야 되기 때문이다. 9시 넘어서도 잠이 안 깨서 비몽사몽인데 둘째가 아침부터 엄마를 찾는다. 옛날 장난감 슈퍼 그랑조를 맞추는데 잘 안된다고. 피곤한 몸을 일으켜 열심히 부품을 조립해 본다. 그렇게 조립하면서 이제 슬슬 만들어야지 한다. 새해가 밝았을 때 꼭 만들어 먹어야 하는 음식. '떡만둣국'

 미리 쿠팡에서 재료를 사놨다. 비비고 한우사골곰탕과 떡국떡과 만두. 냄비에 끓여볼까 하는데 찜질방에서 전화가 온다.


직원 : "큰일 났어요. 여탕 들어가는 입구에 커튼이 떨어졌어요."


 커튼이 압축봉으로 되어있어서 다시 끼기만 하면 되는데. 조금 높은 곳이라 못 끼고 있나 보다. 내가 갈 수밖에. 배고플 아이들에게 귤을 주며 얘기했다. 엄마 올 때까지 귤 먹으며 기다리라고.







 얼른 도착해서 사다리를 챙겼다. 가자마자 여탕 입구에 사다리를 펴고 올라가 압축봉을 올리고 돌려댔다. 압축봉에 기다란 커튼이 매달려 있어 무게가 제법 있었다. 최대한 돌려 꽉꽉 끼웠다. 더 안전하고 튼튼하게 하기 위해 압축봉 고정홀더도 사야겠다 생각한다. 빠르게 해결하고는 탕을 둘러본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라 손님이 붐비는 날이다. 손님들이 몰려오기 전 탕에 문제 되는 곳은 없는지 샅샅이 확인한다. 탈의실과 공용실도 구석구석 매의 눈으로 확인한다. 그러는 사이 남편이 전화가 온다.


남편 : "해결했어? 간 김에 기계실 가서 온도 좀 올려줘~."

나 : "그럼 떡만둣국 좀 끓여줘. "

남편 : "할 줄 모르는데."

나 : "쿠팡에서 재료 다 사놨어. 그냥 사골곰탕 국물에 떡 넣고 만두 넣고 끓이면 돼~"





 사실 남편이 나보다 요리를 잘하고 센스가 있어서 걱정하지 않았다. 요리실력은 나보다 좋은데 자주 하지 않는다는 게 단점. 내가 가게에서 일처리 하고 있으니 남편이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기계실에 가서 온도도 올리고 물도 더 틀었다. 폐수에서 머리카락 등을 걸러주는 양파망도 갈았다. 그 외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는데 남편이 전화가 왔다.


남편 : "언제쯤 와? 다 끓였는데~"

나 : "거의 다 해가. 금방 갈게~"


 뭔가 상황이 뒤바뀐 것 같다. 서로 상대방이 자주 하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런 기분이 들면서 '이것도 나쁘지 않네.' 싶다. 특히 요리에 부담감을 많이 가지는 나로서는 이게 더 좋은 것 같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얘기한다.


남편 : "떡만둣국 먹을 만큼 건져 먹어~"

 나 : "애들은 먹었어?"

남편 : "응. 이미 다 먹었어~"


아침부터 이것저것 열일했더니 배고파서 기쁜 마음에 떡만둣국을 푸려는데. 비주얼이 이게 뭐지? 떡만둣국이 너무 정직하다. 국물에 떡과 만두만 있다. 고기 고명이니 계란 지단이니 바라지도 않는데. 국에 그 흔한 파송송도 없다. 하얀 국물에 하얀 떡과 하얀 만두만 있으니 모양새가.




 남편님. 파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안 넣었니. 하기 싫어 죽겠는데 억지로 하느라 이렇게 대충 만들었니? 싶다. 애들이 왜 이렇게 빨리 먹었는지 싱크대 보니 알 수 있다. 먹다가 다 남겼네. 그래도 배가 고프니 한 그릇 푼다. 배추김치, 알타리 김치를 꺼내 떡만둣국과 먹어본다. 다행히 간은 맞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인지 맛은 있다. 그렇게 한 그릇 먹고 배가 안 차서 두 그릇을 맛있게 야무지게 먹는다. 남편이 뭐 이렇게 많이 먹냐며 얘기하는데 싫지 않은 눈치다. 모양과 비주얼은 꽝이지만. 그래도 2025년 새해 첫날에 남편이 끓여준 떡만둣국 먹으며 시작했네.(남편아. 다음에는 정성 한 스푼 넣고 비주얼도 신경 써서 요리 부탁해. 그래도 글감 준 건 고마워^^)


저녁에 다시 애들에게 떡만둣국 주려고 할 때는 후추를 톡톡 뿌리고 파를 잘라 넣는다. 결국 파와 후추만 추가되었다. 파 없이 만둣국 끓인 남편이나 파 넣고 만둣국 끓인 나나. 부창부수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 명 뛰어나지 않아 이렇게 비슷하게 잘 사나 보다. 암튼 가끔은 서로 도우며 서로의 일을 대신하고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싶다.


2025년 1월 1일의 정직한 떡만둣국은 평생 기억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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