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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Dec 04. 2023

16살 홈스쿨러의 현실적 고민

경험은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엄마"

"응??"

저녁을 먹고 정리까지 마친 고요한 늦은 저녁 거실에서 독서란 문명의 혜택을 누릴 때 1호가 정적을 깼다. 말수도 별로 없는 1호가 '엄마'라고 부르면서 머리끝까지 쭈뼛쭈뼛한다. 나의 눈치없는 심장은 나대기 시작했고, 침샘은 야식을 본듯 폭발한다. 불러 놓고 말이 없다. 아이가 운을 뗏으니 이번엔 내차례다.

"무슨 일있어? 고민있어?"

"음..."

"뭔데? 너 오늘 무슨일 있었어? 공부가 마음처럼 안돼?"

또 모든 길은 산으로 통하듯 모든 이야기를 공부로 종결하려는 K_MOM의 근성을 아직도 벗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

슬슬 답답해 지면서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아에 대한 지식인 김민준소장의 말을 되새기며 뜨거움을 응대하지 않지 않았다. 일단은 책을 덮었고, 물을 마시러 갔다. 물을 15초간 천천히 들이키며 수만가지의 생각을 돌려본다. 

'오늘 내가 1호에게 짜증나는 말투를 했나? 그랬으면 1호가 지금처럼 맥없이 얘기하지는 않았겠지?" 

자문자답이 완벽히 이루어지면서 오늘 하루의 나의 모습에 칭찬과 동시에 당당하게 2부 리그에 임하기 위해 책상앞으로 의자에 당겨 앉았다.






"1호야, 엄마랑 아빠는 너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러나 이 세상에서 너를 그나마 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엄마아빠니까 듣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줄수는 있을 것 같아. 그것도 아니면 좀 더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을 수도 있고. 모든 문제는 인식을 하는게 중요하고 인식을 했다면 해결은 금방 될 수 있을거야. 너의 고민거리나 생각을 좀 더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좋겠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하고 그 생각에서 고민되는 부부은 뭐니?"

1호의 눈을 응시하지도 않은 채 교과서에서나 볼 듯한 마음읽기를 혼자서 열심히 했다. 엄마 그 말 할 줄 알았다는 식으로 1호가 말로 치고 나왔다.

"엄마가 홈스쿨시작하고 식단짤 때 유튜브로 밥 짓는 영상 많이 봤잖아."

1호의 말에 기억이 소환된다.


당시 4학년 2학년 두 녀석을 데리고 홈스쿨이라고 선포는 했는데 막상 현실은 밥 먹고 살기가 참 어려웠다. 아침을 먹고 돌아서면 점심이고 점심을 먹고 청소기를 돌리면 저녁이고 저녁을 먹고 치우면 넋다운이 되었다. 사정이 그러니 아이들에게 학교급식처럼 다양한 요리, 제철식품을 활용한 요리, 아이들 입맛에 맞는 요리, 먼훗날 우리 홈스쿨을 생각하면 밥스쿨이 생각나 그 따뜻함으로 만만치 않은 세상을 너끈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나는 요리, 온가족이 하나되어 하루의 일상을 나누면서 아픔은 소화시키고 즐거움은 함께 깔깔거리는 요리, 갑자기 소풍이 가고 싶은 날엔 후라이팬과 버너를 들고 동네 놀이터에서 먹는 원팬요리 같은 나의 밥스쿨에 대한 생각은 그야말로 환상이요 기적이 일어나야 되는 현실이었다.

난 아날로그세대이고 여전히 아날로그를 사랑을 지속하고 싶어 도서관에서 보기 좋은 요리책을 섭렵하였으나 요리는 글로 배우는게 아니라는 결론으로 MZ세대 배움의 방식을 따라하기로 했다. 유튜브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한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나에게 유튜브로 집밥퍼레이드를 보면서 식단을 짜기 시작했다. 유튜브로 보기 시작했더니 알고리즘으로 베이킹부터 케이터링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좌충우돌 홈스쿨기행 중 한편의 추억에 깊이 빠져있을 때 1호가 다시 입을 연다.




"엄마, 내가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은 내일 점심 뭐 먹을까이고 요즘 많이 하는 고민은 내일 점심 누가 안 사주나야"

"으....응"

찐웃음이 터졌다. 

올해 우리집 홈스쿨의 커리큘럼 중 하나는 '점심은 각자 해결하기' 다. 요즘은 배달음식앱도 많고 편의점에서 도시락도 세련되게 잘 나와서 장봐서 손질해서 1인분 음식을 장만하는 시간과 노력을 계산한다면 앱이나 1끼도시락과는 비교도 안되겠지만 할 줄 알아서 사 먹는 거랑 할 줄 몰라서 사 먹는 거랑은 받아 들이는 느낌이 다를 거라는 나의 지론이었다. 그렇게 해서 3월부터 처음엔 1주에 1번으로 시작된 점심 해결하기가 9월부터는 주 5일 즉, 평일엔 점심 요리해서 먹기가 쉴새 없이 돌아가다보니 1호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학교를 다녔다면 중3인 나이니 수학성적이 안나와서 생각만큼 등수가 안되서 대학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친구들과 관계가 어려워서가 고민거리였을 텐데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쬐금이라도 느끼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마음도 이해되면서도 짠하다.

1호가 만든 비빔국수용 비빔장과 정확한 시간에 맞춰 삶은 국수면, 온도에 맞춰 굽는 대패삼겹살
1호의 손에 만져져 굽히고 있는 모카번

그래서 본인은 요즘 유튜브로 나의 뒤를 이어 밥짓는 영상을 섭렵하고 있다고 했다. 내일 점심은 대패삼겹살과 비빔국수라고 했고, 이번 주말엔 식빵으로 모카번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집 1호는 젓가락질을 14살에 완성했고 신발끈 리본으로 묶기를 15살 나이에 완성할 만큼 소근육이 느린 아이다. 나이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1호가 손으로 뭔가를 해 낸다는 건 나에게 있어선 기적과 같은 일이다.

앞으로 1호가 살아낼 모든 순간 모든날에 세상은 놀라지 않을지 몰라고 나는 놀랄 많은 기적들이 있을 듯하여 심장 관리를 잘 해야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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