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주말 느긋한 식사를 하며 2호가 말한다.
"엄마는 왜 글에 1호 얘기만 써요?"
생각하며 둘러보니 그렇다. 그래서 오늘은 2호 얘기로 시작 해 볼까한다.
2호는 횟수로 6년의 홈스쿨을 마치고 중2의 나이이지만 당당히 중학교 생활을 즐기고 싶어 중1로 올해 입학했다. 학교 입학을 결정하고 알아보는 시간에 정말 많은 고민이 되었다.
겉으로는 2호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는 듯 했지만 자녀를 중학교 진학은 처음이고 때가 사춘기시점이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는 중2로 편입시켜야 할지 아님 시작하는 마음으로 중1로 입학해야 하는지 학군 내로 보내야 할지 좀 떨어진 곳으로 보내야 할지 어느 것이 2호를 위한 최선일지에 대한 고민으로 잠을 설친 날이 많았고 소도시에서 시작된 학교는 어느 새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있는 대안학교까지 닿아 있었다.
여러 달을 그렇게 보냈지만 최종 결정은 2호가 했다.
그렇게 결정은 했지만 또 다른 고민이 빠졌다. 친구들에게 자기가 언니와 누나라를 사실을 말을 할 것인가 자연스럽게 알게 놔 둘 것인가 담임선생님의 힘을 빌려서 자연을 가장한 인위적 공지를 할것인가 또 한달여를 고민했다.
이런 저런 고민으로만 머리가 무거운 채 그러나 새로 시작하는 환경에 약간은 설레임으로 중학교 입학을 하고 한학기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우리 2호의 중학교 생활을 슬기롭다.
6년만에 간 학교는 2호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다. 앉는 의자도, 책상도, 마시는 우유도, 과목마다 바뀌는 선생님도, 식판에 먹는 급식도 무엇하나 익숙한 것이 없다.
그 중 단연 1위는 공부다. 바라봄홈스쿨에서 가장 취약점이라면 아마 공부였을 것이다. 초등학교라는 특징도 있었지만 공부는 검정고시를 통과할 만큼만 하면 되고 혹시 살다가 대학진학이라는 목표점이 생기거든 그 땐 여러 경로를 통해 죽을듯이 공부해야 한다는게 나의 근본 없는 지론이었다. 대학을 제 나이에 입학하건 30대에 입학하건 정말 하고 싶어 질때 하라고 했다. 그러니 그렇게 공부에 취향 맞춰주며 애걸복걸 하지 않아 바라봄홈스쿨에서는 공부로 인한 갈등은 크게 없었던 듯하다.
그러던 2호가 중학교를 가니 친구들의 공부에 집중을 하며 다정하지만 질투많고 예민한 관찰자가 되어 매일 제비가 먹이를 물어오듯 친구들의 공부법과 과목과 학원과 친구들사이에서 자신만의 성적줄세기를 시작했다.
2호는 중학교를 진학하더니 꿈이 더 확실 해 졌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조금씩 자신의 삶을 맞추기 시작하며 문제집도 사 달라고 하고 학원도 보내 달라고 하고 학교 친구며 교회 친구에게 중1때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선행은 어떻게 하는건지 선행을 해서 지금은 어떠한지 교육신문의 기자처럼 정보수집을 하고 있다. 친구들이 다 못 푼 문제집이나 프린트가 있으면 수거도 한다.
홈스쿨 하는 내내 수학이라는 과목으로 참 힘들어 했다. 혼자서 강의 듣고 머리 싸 매도 하루에 5문제도 못 푼적도 있고 푼 문제 중에서 3문제는 틀린적도 있다. 옆에서 보기 안쓰러웠지만 '수학'이라는 과목을 통해 인생의 외로움과 쓸쓸함, 그러나 포기치 않고 걸어 갔을 때 닿는 기쁨, 뿌듯함, 성취감을 느껴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르쇠'로 일관했던 시간이었다.
며칠 전 2호가 말했다.
"내가 공부를 못 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된다면 내가 보낸 홈스쿨이 너무 허무할 것 같아서 공부 열심히 할거예요."
2호에게서 가능성이 보인다. 물론 그 가능성이 어디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확장될 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2호를 보면 허투루 주변만 두리번거리다 자신의 삶을 보내려는 마음은 보이지 않아서 기특하다.
학교 생활을 하다 자연스레 한살 위인 누나요 언니인 것이 발각되었지만 애들은 애들이다. 별로 게의치 않고 여전히 이름부르며 희희낙낙 놀면서 슬기롭다. 선생님들께도 홈스쿨하다가 온 2호가 처음에 관심이 좀 집중 되었지만 이내 자연스러워졌다. 오히려 2호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과분한 인사를 받아 학교를 방문하기가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일본인들이 자주 키우는 관상어 '코이'가 있다. 이 코이의 삶은 참 특이하다. 작은 어항에서 자라면 5~8cm자라고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15~25cm까지 자란다고 한다. 그리고 강물에 방류하면 90~120cm까지 성장한다고 한다.
각자의 마음엔 씨앗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씨앗만 보이기에 이 씨앗이 나무가 될지 풀이 될지 꽃이 될지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그러나, 삶이란 가능성이 있는 씨앗이라는 믿음과 확신으로 살아가는 거 아닐까 싶다. 주변의 여러 정보를 통해 나라의 우울한 얘기들과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해서도 주변 사람을 향해서도 강물의 분량만큼 자랄 코이를 작은 어항의 코이로 가두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얼만큼 자랄지는 우리로서는 모르는 일이다.
그저 일상에 주어지는 길에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고민하며 살아가다 보면 1년 후, 3년 후, 10년 후 내가 생각지도 못한 '코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